왜 수입농산물 유통단계만 축소하나

  • 입력 2024.03.03 18:00
  • 수정 2024.03.03 19:17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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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농사를 시작하는 들녘에 정부가 ‘대형마트 과일 직수입’ 불씨를 던졌다. 지난달 22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관계부처 물가안정 현안 간담회에서 수입과일 관세 인하 물량을 2만톤 추가하고, 대형마트가 과일 할당관세 물량을 직접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수입과일 가격을 낮춰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다. 이 자리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참석했다.

지난해 기후재난으로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 사과·배 등 국내 과일값이 예년에 비해 높게 형성돼 있다. 설 명절을 기점으로 ‘제수용 사과 1개에 1만원’이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사과값은 고물가의 대명사가 됐다. 그렇다고 사과값이 계속 고점인 것도 아니지만, ‘사과=비싸다’는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사과뿐만 아니라 농산물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언론에선 ‘금’자를 붙여가며 호들갑을 떤다. 실상 농산물값이 가정경제를 위협할 만큼 비싸지도 않고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단지 장바구니 물가라 체감도가 높고 다른 산업군에 비해 저항이 적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다. 정부가 고물가 대책으로 자주 활용하는 게 저가의 수입농산물이다. 국내 과일이 비싸면 수입과일을 사 먹으란 식이다. 당장 값싼 수입과일이 반가울지 모르나, 이 같은 임시방편으로 물가가 안정될 리 없다. 수입농산물이 계속 싸다는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 쌀을 수입하는 가격도 올랐고, 지난해 수입한 양파 가격이 국내 양파 가격을 웃돌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농업 기반이 심각하게 위축되는 문제다.

이번 대형마트 과일 직수입에서 보듯 정부는 수입과일 물량 확대뿐만 아니라 유통단계를 축소해 수입과일 가격을 낮추려 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물가안정 현안 간담회 직후인 지난달 23일 대형마트에 할당관세 물량의 수입판매 자격을 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수입·유통업체를 거쳐 대형마트에 공급되던 수입과일의 유통단계가 줄어 판매가격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입과일 가격을 낮추는 일에 적극적인 농식품부가 국내 과일의 유통단계 축소 문제엔 정작 손을 놓고 있다. 누구를 위한 농식품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농민들의 숙원인 유통단계만 손봐도 국내 농산물 가격안정에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후재난으로 생긴 수확량 감소, 과일값 폭등 문제의 근본 대책은 수입과일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 과수농가가 요구하는 기후대책만 해도 냉해 방지시설 지원, 품종개량 등 챙길 것이 많다. 농업정책이 물가정책의 후순위에 있다고 농식품부가 우리 농촌 현장을 망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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