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과일 직수입·판매 허용까지, 그야말로 ‘막 나가는’ 정부

농식품부, 지난달 물가안정 현안 간담회서 ‘수입 원활 조치’ 언급
대형마트 관세 인하 물량 별도 배정 비롯해 직수입·판매도 허용
수입 과일 가격 인하 및 시장 판매 활성화 목적 … 농민들 격분

  • 입력 2024.03.01 09:00
  • 수정 2024.03.03 19:18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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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급감이란 본질적 이유를 차치하고, 연일 사과·배 가격 폭등 소식이 언론을 장식하자 ‘소비자물가 안정’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부가 농산물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22일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부처 물가안정 관련 현안 간담회가 개최됐는데 이 자리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까지 300억원을 투입해 사과, 배, 토마토 등 과일류와 오징어 등의 품목에 할인지원을 지속하는 한편 수급 안정을 위한 추가 조치에 즉시 착수하겠다고 밝혀 공분을 사고 있다.

농식품부가 밝힌 수급 안정을 위한 추가 조치는 크게 △대형유통업체(마트) 할당관세 수입·판매 자격 부여 △대형마트 판매 수요 물량 파악을 통한 할당관세 물량 신속 도입 등이다.

할당관세 수입 물량은 일반적으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실수요자 배정 방식으로 유통된다. 이 경우 수입·유통업체를 거쳐 대형마트 등으로 할당관세 물량이 흘러가기 때문에 농식품부는 할당관세 수입·판매 자격을 대형마트에 부여해 대형마트가 수요자 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수입 과일의 마트 판매가격을 낮추고 마트 등 오프라인 시장에서의 수입 과일 판매를 보다 활성화 시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물가안정 관련 현안 간담회 직후인 지난달 23일, 대형마트에 할당관세 수입·판매 자격을 부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가 그간 농산물 수급과 가격안정 대책으로 수입을 지속·확대 추진한 것도 모자라 대형마트에 직수입·판매 자격까지 부여하자 생산자단체 등은 깊은 분노를 표하고 있다. 특히 국산 농산물 생산 안정화가 아닌 수입농산물 가격 경쟁력 제고와 판매 활성화에 주력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단 입장이다.

먼저 권혁정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정책실장은 “국내 과일 생산량이 부족해 가격이 비쌀 경우 수입 과일을, 그것도 단가를 낮춰 대체품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인 것 같다. 이게 일시적인 대책이 될 순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과수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수입산이 국내 과수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상기후 영향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져버린 이 상황을 단기적인 관점에서 그저 과일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대비해선 안 된다. 생산기반이 안정화되도록 장기적인 시각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정책실장은 덧붙여 “3~4월이면 사과 등의 과수가 냉해 또는 동해를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방지해 수정과 결실이 잘되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냉해 방지 시설 관련 농식품부 예산이 20억원 밖에 안 되는데 사실 택도 없다. 지난해와 올해 과일값 폭등했다고 할인쿠폰 지원 등으로 쓴 예산이 500억~600억원은 족히 될 것 같은데 그중 100억원, 200억원만 생산기반 조성에 써도 공급이 안정될 것이다”라며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비해 국내 공급망 안정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눈을 계속 외국으로 돌려선 안 된다. 국내 생산기반시설은 지원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수입으로 농산물 수급을 안정시키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연순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전무 또한 “국산 과일 경쟁력을 높이는 게 아니고, 수입 과일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니 말이 안 나온다. 이상기후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과·배·단감 등의 가격이 높아졌고 정부에서 국민물가 안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을 농민들 대부분이 공감하지만 정부가 물가에만 집중해 국내 과수산업을 쇠퇴시켜선 안 된다”며 “수입과일이 지속적으로 확산되면 국산 과일이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밖에 없고 산업은 붕괴될 것이다. 농가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생산량 감소가 예상된다며 정부에 선제적 대응을 요구해왔다. 정부가 현장 농민들의 요구를 적극 받아들여 기후변화에 따른 신품종 보급·장려 및 냉해 방지 지원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 아울러 생산량이 감소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증가할 경우에 대비해 안정적 수급을 위한 산지 유통 저온저장 시설 확충 등도 절실하다”고 전했다.

한편 농민들은 농식품부의 이번 대형마트 수입과일 직수입·판매 허용 조치가 추후 과수 이외 다른 품목으로도 확대 적용될 여지가 크다고 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사실 정부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냥 막 나가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라며 “이번 대형마트 과일 직수입·판매 허용 조치가 고질적인 수급·수입 문제를 겪고 있는 마늘·양파 등의 채소 품목으로도 확대될까 걱정이 크다. 정부가 앞장서 대형마트 등 대기업의 농산물 수입 물꼬를 터버린 것인데, 이 경우 더욱 싼 가격에 수입농산물이 국내로 반입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내 생산기반은 무너질 게 뻔하다. 농산물 전체의 문제로 번질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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