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눈 가린 ‘875원’ 대파, 생산비 무시한 물가대책 우려 확산

물가 점검 차 현장 나선 대통령 앞에 최선의 ‘합리적’ 가격 선보인 농협
유례없는 할인·지원 결과…농산물 가격에 대한 대통령 인식 수준 드러내

  • 입력 2024.03.20 17:28
  • 수정 2024.03.21 13:08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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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영상뉴스 갈무리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영상뉴스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물가 상황을 점검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하겠다며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가운데, 대통령 앞에 등장한 대파 한 단의 가격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온갖 할인·지원이 집약된 대파 한 단 가격을 ‘합리적’이라고 표현한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때 맞춰 할인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앞으로 펼칠 물가대책에 대한 농업계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이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18일부터 농협유통은 대파 한 단(1kg)을 875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대파 한 단의 가격이 875원으로 떨어진 건 정부의 납품단가 지원, 농축산물 할인지원과 18일부터 시작된 농협 자체 할인이 모두 적용된 결과다. 농협유통은 자체 할인을 오는 27일까지 수도권 5개 센터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선 지난 13일까지 대파 한 단을 2760원에 판매했다. 14일부터는 그 가격을 1000원으로 낮췄고 18일에는 자체 할인까지 더해 875원으로 떨어뜨렸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으나, 마침 대통령이 방문한 때부터 유례없는 할인가격으로 대파가 판매되기 시작한 셈이다. 반면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된 대파 한 단의 도매 평균가격은 18일 기준  2544원(상품)이다.

이번 875원 사태는 생산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소비지 물가만을 우선시하는 대통령의 그릇된 인식 수준을 드러냈고, 농업계는 이를 바탕으로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 유통업체에 지원하는 정부의 물가대책이 지속 추진될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 18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유통자본 배불리는 근시안적 물가정책 중단을 촉구했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또한 대통령의 발언을 망언이라 지적하며 지난 20일 근본 대책 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전여농은 “정부는 대형유통업자들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하며 3000~4000원 수준이던 대파 가격을 한시적으로 떨어트려 놓고 있으며, 대통령은 이를 합리적이라고 망언했다. 대통령 말대로 875원이 적당하다면 최소 30~40%의 유통마진을 제하고 농민들이 받는 가격은 260~350원에 불과하다. 대파 한 단을 생산하기 위해 농민들이 기울인 노고와 땀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가”라고 정부와 대통령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농업계가 격분 중인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일 이후 20일 현재까지 매일 논평을 발표 중이다. 20일 논평에선 “‘대파 한 단이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같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물가에 고통받는 국민의 복장을 뒤집어 놓고 있다. 대통령이 방문한 당일에 1000단 한정으로 진행한 눈속임 할인으로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인지, 국민을 상대로 눈가리고 아웅하려 한 것인지 답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대통령이 '합리적'이라고 표현한 875원이 농민 입장에서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편 오늘날 대파 한 단의 생산비는 1800원 이상으로 파악된다. 대파 주산지인 전남 진도의 대파 생산 농민은 “1kg 생산비만 1000원 남짓이고, 수확한 대파를 까고 단 묶어서 망에다 넣는 작업비에 운송비까지 더하면 820원가량이 더 든다”며 “인력이 없어 농민들이 직접 시장에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산지유통인이 중간에 끼는데 이 경우 1kg 한 단 생산비는 2000원 이상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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