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붙은 농자재지원조례 제정, ‘중·소농 살려야 지역도 산다’

연내 제정 목표로 달리는 전북도의회, ‘첫 도 조례, 포문 열겠다’

경북 농민의길, 막바지 수확기에도 주민조례 동의서명에 집중

  • 입력 2023.11.23 18:45
  • 수정 2023.11.23 18:46
  • 기자명 김수나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생산비 폭등 속에서 농업을 지속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필수농자재지원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전라북도의회는 오은미 도의원(진보당)이 대표 발의한 조례안을 12월 13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추진 중이며, 전라남도의회에서는 오미화 도의원(진보당)이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초부터 지역 농민단체와 연구자, 도 집행부 및 도의회와 논의로 이를 진행해 왔다.

경상북도는 농민들(경북도 7개 농민단체 연합인 ‘경북 농민의길’)이 직접 나서 주민조례(발안)청구를 진행 중이다. 막바지 사과 수확과 마늘 파종 등으로 바쁘지만 12월부터 시군농민회를 중심으로 각종 모임과 마을을 돌며 서명운동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러나 조례안이 도의회 문턱을 무사히 넘고, 제정되더라도 제대로 집행될지 안심하긴 어렵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정부의 대규모 감세 기조로 내년도 지방교부세 예산안(2023년도 본예산보다 11.3% 줄어든 66조8,000억원)이 줄어드는 등 지자체 재정 여건에 빨간 불이 들어와서다.

오미화 의원은 “지난 3월부터 농민단체와 진보당 농민당이 함께 논의하고 지난달 도의회 5분 발언, 지난 14일 농민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어 조례안 제정을 촉구하며 꾸준히 준비했다”라며 “그러나 내년 예산안이 많이 축소돼 도 집행부는 새로운 사업이라면 일단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예산을 신청해도 되돌아오는 일이 많아 최종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오은미 의원도 “도가 예산을 많이 부담스러워해 절충했다. 처음엔 조례 제정 자체를 보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도의회에서도 이번에 반드시 통과시키자는 의지가 있어 절충안으로 진행하고 있다”라며 “도에서 좀 양보하고 의회 상임위도 구체적 수치를 명시하는 게 부담되니 그걸 빼고 통과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라고 전했다.

`전북도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안'의 애초 지원 기준은 “지원 대상 필수농자재의 가격이 최근 5년 동안 최고·최저 가격을 제외한 평균 가격의 5% 이상 폭등할 경우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한 인상된 금액의 전부 지원”이었으나, 심의를 앞두고 ‘5%’와 ‘전부’라는 규정이 빠졌다.

오은미 의원은 “조례안이 통과돼도 계속 조율하고 촉구해 나가야 하는 문제고, 지원 품목이나 금액은 티에프(TF)에서 먼저 조율하고 심의위원회가 의결하도록 했으므로 제정 뒤 협의해 나가면 된다”라며 “여러 변수로 쉽지 않지만, 도 조례로는 처음이라 포문을 열어야 한다. 어떻게든 해내겠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필수농자재지원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4일 경남 함양군 유림면 들녘에서 농민들이 양파를 심기 전 밭에 비닐을 씌우고 있다. 한승호 기자
몇몇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필수농자재지원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4일 경남 함양군 유림면 들녘에서 농민들이 양파를 심기 전 밭에 비닐을 씌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에 대해 ‘문제는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디에 쓰느냐다’, ‘중·소농가에 대한 직접 지원은 결국 지역소멸을 막는 길’이란 지적이 나왔다.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은 “20~30년간 중앙정부와 지자체 농정 예산 대부분은 농업의 규모화에 투입됐고, 최근 예산 삭감 속에서도 스마트팜, 푸드테크 같은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라며 “그러나 그렇게 예산을 썼어도 실제 농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농민 수는 오히려 더 줄고 있다. 이제는 지원 정책의 방향 자체를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농민수당이나 농산물 가격 보장, 농자재값 상승분 차액 보전 등 농정 예산을 개별 농민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향이다. 윤 의장은 “예산이 없다 하지 말고 예산을 제대로 써야 하는 것이다. 예산은 만들기 나름이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소농 지원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연 1조원 규모로 2022~2031년까지 지자체에 지원된다. 인구감소지역(89개)과 관심지역(18개), 이를 관할하는 지역 등에 매년 배분된다. 2023년 전남의 배분 금액은 505억원. 윤 의장은 “(도에) 지방소멸기금을 어디에 쓰는지 물으니, 시군별로 각자 알아서 쓴다더라. 그러지 말고 중·소농을 보호하는 데 쓰면 지방소멸도 막을 수 있다”라며 “전남도 시군 3분의 2가 20년 안에 없어진다고 하잖나.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이 전환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군별로 움직이는 충남, 현장 의견 수렴하는 제주

한편 충청남도의 경우 시군농민회를 중심으로 조례 제정이 진행되고 있다.

농민회가 있는 10개 시군 가운데 공주시는 조례 제정을 마쳤고, 예산군·당진시농민회는 주민조례 청구로 동의서명 단계에 있다. 아산시농민회는 의원발의로 가닥을 잡고 김희영 아산시의회 의장과 내용을 논의 중이며 보령시는 조장현 시의원이 조례안을 추진하고 있다. 논산시는 시의회에서 발의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부여군은 농민회가 조례안을 준비해 군정과 조율하거나 주민조례 청구로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해 두 곳 모두 조속한 추진은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도 농민들도 조례 제정을 위한 밑그림에 들어간다. 전농 제주도연맹은 제주 농민의길(6개 농민단체 연합)이 참여하는 두 차례 토론회를 진행해 현장의 요구를 모은 뒤 올해 안에 조례안을 만들 계획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