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부채에 허덕이는 제주 농민들, 필수농자재 지원 시급

전국 최대 규모의 부채·농지담보대출 미상환 급증

육지보다 비싼 생산비에 유통비 부담도 계속 늘어

  • 입력 2023.12.01 08:57
  • 수정 2023.12.03 18:06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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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농업 생산비 폭등과 농가경영 조건 악화 속에서 제주도 농민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제주 농민의 어려움을 덜어내는 대안으로 필수농자재 지원조례는 왜 필요할까. 이를 가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국농민회총연명 제주도연맹(의장 김윤천)이 제주 농민의길(제주도 6개 농민단체 연대체) 소속 농민들이 자리한 가운데 지난달 24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에서 ‘필수농자재 지원조례 관련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김윤천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은 “지금 농자재 가격은 대외적 원인으로 폭등했으므로 국가와 지자체가 함께 책임져 줘야 한다”라며 “농민이 살고 농업이 지속되려면 필수농자재 지원을 위한 법·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토론회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김 의장은 “제주도는 기후위기뿐 아니라 자연재해에 가장 취약하다. 모든 농자재와 생필품도 육지보다 비싼 편이다”라며 “특히 제주의 농업은 3차 산업인 관광과 연계돼 있어 제주의 농업 자산은 곧 관광자원이다. 그러므로 농업을 생산성·상품성·경제성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제주의 중요 자산으로서 지속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제주특별자치도 필수농자재 지원을 위한 정책 제언’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농민 생존권 문제는 국가 식량 생산의 불안정성과 밀접히 연결된다. 특히 식량자급률이 낮고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취약한 상황에 놓이기 쉽다. 농민들이 농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단기적(생산비 증가와 농산물 가격 불안정), 중장기적(기후재난에 대비한 사회 안전망 강화) 대책이 시급하다.”

이어 이 부소장은 제주 농민의 어려움을 △전국 최대 규모의 농가부채와 가파른 증가세 △전국 평균보다 높은 농지담보대출 미상환 건수 증가세 △부채의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농가소득 △주요 작물 생산비 증가 △유통비(항공·해운) 증가라고 짚었다.

지난달 24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에서 전농 제주도연맹 주최로 열린 ‘필수농자재 지원조례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제공
지난달 24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에서 전농 제주도연맹 주최로 열린 ‘필수농자재 지원조례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제공

제주도 농가부채 전국 최대, 가장 큰 원인은 ‘생산비 급등’

2022년 기준 제주도 농가부채는 9,165만4,000원으로 전국 평균(3,502만2,000원)보다 2.6배 많다. 2018~2022년 전국 평균 농가부채는 5.3%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제주도 농가부채는 22.9% 뛰어올랐다. 문제는 같은 기간 제주도 농가소득이 19.8% 오르는 데 그쳐 농가부채 상황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부소장은 “제주 농민들은 이처럼 많은 농가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빚을 갚을 수 있기는커녕 농사와 농가경제를 이어가기 위해 빚을 더 내야만 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제주도 농지담보대출(밭·논·과수원을 담보로 한 가계·농업자금 대출) 미상환 건수도 2021년에 견줘 3.3배 증가했다(2023년 8월 말 기준 662건). 이는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증가세(2.3배 증가해 1만4,101건)보다 더 높은 수치다.

이 같은 농가경영 악화의 주원인은 농업 생산비 급등이다.

이수미 부소장은 농촌진흥청 주요 소득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했을 때, 2019년과 2022년을 비교하면 대다수 작물의 생산비가 3년 전에 비해 많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작게는 3.5%(브로콜리)부터 많게는 131.1%(쪽파)까지 주요 12개 품목의 생산비가 올랐고, 시설작물인 하우스월동감귤, 한라봉, 천혜향 등도 10~30%대의 증가 폭을 보였다. 노지에 견줘 시설원예 농업은 과중한 생산비 부담에 시달리는데, 이를테면 시설감귤의 생산비 가운데 수도·광열비 비중은 총 생산비의 31.9%에 이른다. 시설농업의 특성상 적정기온과 습도 등을 맞추기 위해 많은 생산비가 투입되는 데다 이상기후로 인해 시설 환경 관리 비용이 더 늘고 있어서다.

섬이라 육지까지 도달해야 하는 유통비용 증가도 큰 부담이다. 감귤은 주로 해운과 항공을 통해 운송되는데 감귤의 유통비용률(소비자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49.4%에서 2021년 64.6%로 증가했다.

이수미 부소장은 “이처럼 영농환경은 농민이 아무리 열심히 농사지어도 날씨나 가격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 아울러 농지 구입, 시설 설치, 농기계 구입 등 비용 투자가 많은 농업의 특성상 농민 대부분은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라며 “영농을 시작할 때 농민 대다수는 농협에서 영농자금을 빌리고 비료 등 농자재를 외상으로 구입해 농사를 시작한다. 각종 농자재 비용을 갚고 나서야 수익여부를 따질 수 있지만 지금은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비용이 더 많은 실정이다. 그런데도 다음 농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더 큰 빚을 감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농가경영 안정과 농민 생존권 보장을 위해선 생산비 부담을 줄이는 필수농자재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라며 “필수농자재 지원조례는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안정적으로 덜어주는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농민들은 △지원 대상 품목 및 지원 방식 △기존 지원 정책과 중복으로 오히려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 △지원이 가장 시급한 농업 분야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 보전 등을 논의했다.

김필환 (사)전국농업기술자협회 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 회장은 “유기질비료, 친환경 농자재 등 일부 농자재를 지원하는 기존 사업과 필수농자재 지원조례에 따른 지원이 중복돼 농가에 손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며 “농가마다 상황이 다른 만큼 지원 시기, 대상, 방식 등 조례 내용을 신중하게 구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필환 회장은 “제주도 농가부채의 가장 큰 원인은 전체 5,000ha 이르는 시설인 만큼 시설농가 지원은 꼭 포함돼야 한다. 통계상 생산비가 많이 오르거나 제주의 주작목들, 사룟값 폭등으로 어려움이 큰 축산농가도 고려해야 한다”라며 “가능한 좀 더 많은 농가, 더 어려운 농가들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기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효준 (사)제주친환경농업협회 회장도 “중복지원은 불가하므로 필수농자재 지원조례가 기존 지원을 대체하는 형태가 되면 안 된다. 필수농자재 지원조례로 지금보다 더 지원돼야지 기존에 주던 걸 빼서 다른 이름으로 주는 건 안 된다는 뜻이다”라며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보전 조항도 필요하다. 기후위기로 추가되는 농작업 과정이 생겨나고 있어서다. 이상기후로 인한 병해충 방제 작업이 그 한 예인데 이는 결국 생산비, 노동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게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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