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 농민 손으로 만든다

경북 농민의 길, 주민발안 제정 선포 나서 … 9월부터 서명 시작

생산비 급증·무차별 수입·농작물 재해까지, 농가 경영 지원 시급

  • 입력 2023.09.01 08:50
  • 수정 2023.09.01 08:51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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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경상북도(지사 이철우) 농민들이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 제정에 직접 나섰다. 올봄 냉해와 장마철 집중호우로 경북 주산품인 과수 등 농작물이 ‘수확할 게 없을’ 만큼 큰 피해를 봤고, 최근 3년간 농업생산비가 폭등해 ‘남는 게 없는 농사’가 이어졌지만, 도정이 손 놓고 있어서다.

주민조례(발안) 청구(지역에 필요한 조례를 주민이 직접 제정·개정·폐지)를 활용해, 도내 농민과 도시민의 동의를 끌어낼 계획으로, 경북 지역 7개 농민단체 연합인 ‘경북 농민의 길(상임대표 김태현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이 추진하고 있다. 관련 조례안은 지난달 23일 도의회에 청구 신청됐으며, 청구 절차에 따라 빠르면 9월 초부터 청구인 서명이 시작된다.

경북 농민의 길은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시 경상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봄부터 시작된 냉해, 우박, 집중호우는 크나큰 농작물 재해를 몰고 왔다. 수확할 것이 없을 지경이다. 농업생산비도 계속 오르고 있다. 농업경영비가 농업 총수입에서 72.6%를 차지했다. 농사지어 남는 게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청구의 배경을 밝혔다.

이번 조례안은 농가에 필수농자재를 지원해 영농 부담을 완화, 농업의 지속을 보장하고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농업경영체 등록 농가에 비료·농약·비닐·사료 등 구입을 지원하되, 면적에 상관없이 농가당 정액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농업이 지속되려면 농민의 존재가 핵심’이기에 면적과 품목으로 농민을 나누지 않겠다는 큰 원칙에 따른 것이다. 아울러 경북은 고령 농민이 많고 대부분 3,000평 이하를 일구는 소규모 농가(고령농인 경우 보통 300~600평)라는 지역 특성을 반영했다. 대규모 영농이나 벼농사 중심 지역이라면 면적 기준에 따른 지원 폭이 커지므로 의견차가 클 수 있다.

경북 농민의 길이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시 경상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 주민발안 제정’을 선포하고, ‘농가경영 안정 지원’을 촉구했다.
경북 농민의 길이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시 경상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 주민발안 제정’을 선포하고, ‘농가경영 안정 지원’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시면 전농 경북도연맹 사무처장은 “지금 농민의 가장 어려움은 정부의 농산물 무차별 수입, 자연재해에 따른 농작물 피해, 급등한 농업생산비”라며 “(이는) 농민 생존권이 걸린 심각한 문제로, 지자체의 농업생산비 의무 지원 조례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도와 도의회가 나서지 않으면 농민과 주민이 직접 하겠다는 선포의 자리다”라고 밝혔다.

김태현 상임대표는 “봄 냉해와 여름 폭우로 주 작물인 사과는 딸 게 없다. 우리는 이미 2월부터 도와 도의회에 대안을 촉구했음에도 여전히 무엇을 하겠단 이야기가 없다. 이유는 예산이 없다는 거다. 내년엔 더 없다고 한다. 가장 무능한 행정가들의 말이다”라며 “그래서 우리 스스로 조례안을 발의해 책임 있게 경북 농업을 지켜나가려 한다. 모두 함께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김형중 영양군농민회 회장은 “농업은 공공의 영역이다. 공무원만 공무를 수행하는 게 아니다. 농민들이야말로 이 나라 최고 공무원이며 필수농자재 지원은 행정의 의무다”라며 “마을 곳곳 찾아다니며 서명받아 의회에 당당히 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조례 제정과 농가경영 안정 지원을 위한 농민들의 촉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5월엔 15일 동안 경북도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고, 이에 앞서 3~4월엔 농가경영안정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모두 4,656명의 서명도 받아냈다.

이날 자연재해에 따른 농작물 피해 보전 대책 요구도 이어졌다.

20대부터 18년째 사과 농사를 지어온 심상국 청송군농민회 정책실장은 냉해와 폭우로 사과 착과량이 평년 대비 40%(농작물재해보험 착과율 조사)에 그친 상황을 전했다. 그는 “60%는 날아갔다. 7월 긴 장마로 탄저병까지 겹쳐 40%에서 더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농민들은 국가 정책 보험인 재해보험에 기대고 있으나 피해를 온전히 보전받지 못할뿐더러, 그나마 보험에 가입할 여건이 안 되는 이들은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냉해 조사를 했으나 돌아온 건 농약 한두 번 칠 수 있는 농약대 정도다. 정부는 농민의 생존권이 보장되도록 농업재해보상법을 제정하고, 걱정 없이 농사짓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번 조례안 청구가 성사되려면 경북도민 1만5,067명(총 청구권자의 150분의 1)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만 18세 이상으로 경북도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주민(선거권이 없는 자는 제외)이면 누구나 서명에 참여할 수 있다. ‘주민e직접’ 홈페이지에서 전자서명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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