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농민·도의회·전문가,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 위해 뭉쳤다

위기 속 조속 지원 시급 … 추가 검토 거쳐 오는 11월 도의회 상정

생산비 폭등에 농민들 매년 ‘헛농사’, 지주와 관련 업자만 배 불려

  • 입력 2023.09.22 07:36
  • 수정 2023.09.23 08:06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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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생산비 폭등과 농산물 가격 폭락 시대, 농업의 지속과 농민 소득 보장을 위한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 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전북도의회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전북도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북도연맹,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전라북도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안(조례안)’을 마련했다.

필수농자재값 폭등에 따른 생산비 부담을 줄여, 농가의 경영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현재 6개 품목에서 심의위원회를 통해 품목을 늘리고, 각 시‧군의 특성 품목을 추가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지원 기준은 최근 5년간 최고·최저 가격을 뺀 평균 가격에서 5% 이상 오르면 인상된 금액 전액을 지원한다. 10월 중 최종 검토를 거쳐 오는 11월 오은미 도의원이 전북도의회에 발의한다.

전농 전북도연맹(의장 이대종)은 지난 19일 농협중앙회 전북지역본부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생산비 보장을 통한 농업재생산과 농가소득 보장 방안’, ‘필수농자재 조례 제정의 의미’를 살폈다. 농민은 물론 전북도정과 도의회, 전문 연구진이 함께 논의에 나섰다.

논의에 앞서 이대종 의장은 인사말에서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농업소득 949만원(2022년 기준)은 통계 시작 이래 최대 폭락치이나 전북도엔 아직 명확한 대책이 없다”면서 “이에 우리는 자구책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이번 조례안은 폭등한 생산비를 조금이라도 줄일 방안의 하나다. 도의회와 도정이 협력해 조례 제정과 예산 책정을 빠르게 진행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송미옥 전여농 전북도연합 회장은 “30년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지만 겉모습일 뿐, 농가 상황은 그 전보다 더 많이 팍팍하다. 전엔 그래도 열심히 하면 촌에서도 먹고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농사짓겠다고 하면 다 뜯어말린다”라며 “생산비가 보장되는 현실에서 농사짓는 게 우리 소망이다. 조례가 제정돼 생산비가 우리 통장에 직접 담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이 지난 19일 농협중앙회 전북지역본부에서 ‘생산비 보장을 통한 농업 재생산과 농가소득 보장 방안’ 심포지엄을 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이 지난 19일 농협중앙회 전북지역본부에서 ‘생산비 보장을 통한 농업 재생산과 농가소득 보장 방안’ 심포지엄을 열었다.

첫 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이수미 녀름 부소장은 국내외 정세에 따른 생산비 폭등과 농업소득 하락으로 위기에 놓인 농가 상황을 전했다. 특히 전북도의 농가소득은 지난 10년간(2018년, 2019년 제외)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쌀 재배면적이 큰 전북은 계속된 쌀값 하락으로 농가소득 감소 피해가 컸다.

이를 바탕으로 이 부소장은 정부 농자재지원사업의 역사와 관련 정책의 흐름, 전국의 농자재 지원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전북 14개 시·군의 농자재 관련 사업(2023년 본예산 기준, 모두 250개)과 예산 규모(각 시·군 농업·농촌 예산의 평균 3%대)를 낱낱이 살핀 뒤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을 제시했다. 단기 대책은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 제정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 개선 △농민 조합원 권익을 증진하는 농협 역할 확대다. 중장기 대책은 △비료·사료의 국산화 △경축 순환 농업의 실현 △수입 원재료의 국산화 △농민에게 공정 보상 및 공정가격 도입 등이다.

이번 조례안의 구체 내용은 주영태 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위원장이 발표했다. 주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조례안을 마련하기 위해 농민들은 지난 7~8월 학습과 토론, 관련 사업의 실태와 문제점, 개선방안과 생산비 저감 사례 등을 논의했고, 도의회·전문가와 함께 조례안을 구성했다.

이번 조례안은 모두 19조로 구성돼 있으며, 필수농자재 지원 대상과 방법, 심의위원회 구성, 시·군 협력 및 재원 마련 원칙 등이 담겼다. 전북도정의 검토와 의견 수렴, 현장 요구 등에 맞춰 추가 보완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날 토론에 나선 박형용 정읍시농민회 입암면지회장은 “농사는 농민이 짓는데 여기저기 챙겨가는 사람이 많다. 가게에서 쌀 20kg 한 포대 5만원이면 2만원은 지주, 1만원은 농기계 회사, 1만원은 농자재 회사, 남은 1만원은 농민 몫이 아닌 도정·유통업자 몫이다”라면서 “쌀 20kg 5만원에 쌀농사의 모순이 다 담긴 셈이다. 쌀값이 떨어져도, 태풍·장마·가뭄이어도 지주는 절대 임차료를 안 깎는다. 농기계값, 기름값, 농약값도 안 깎인다. 그러니 쌀값이 떨어지면 농민은 1년간 헛농사, 장사하는 이들 배만 불려준 거다”라고 말했다.

필수농자재 지원 기준과 예산 확보 등에 대한 구체적 제안도 이어졌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개인 이익보다 사회적 이익이 더 큰 방향으로 농자재가 지원돼야 하며 특히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 농자재 지원이 더 필요하다”면서 “공동으로 관리·활용되고, 특수 농자재보단 일반적·보편적인 농자재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신중 전북도 농산유통과장은 △2026년 이후부터 정부 지원 없이 지자체가 도맡게 되는 유기질 비료 지원 사업 △경축순환농업에 얽힌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입장 △행정안전부의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에 따라 농자재 구매가 어려워진 상황 등을 전하며 이에 최선을 다해 대응할 것을 약속하고 현장의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필수농자재 가격 상승 시 필요한 조례의 내용 논의,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 담당 부서와 의원들을 설득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단체들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오은미 도의원은 “농어촌위원회에서 내년도 제정을 목표로 논의를 시작했지만, 그러기엔 갈 길이 멀어 올해 일단 조례를 만들고 내년엔 예산 확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해 내후년부터 실제로 지원하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오 의원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 때 전북도가 긴급 지원금을 책정하는 등 적극 나서는 모습을 농민 현실과 견주면서, “농민은 어려운데도 왜 거들떠보지도 않는 신세인가. 농민을 위한 긴급 재난 지원은 왜 한 번도 고려되지 않는가, 굉장히 서글프고 화가 난다. 인간으로서 차별받고, 더구나 농도라는 전북도마저 그러니 자괴감이 더욱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김관영 도지사가 농민과의 소통과 농정 대전환에 적극 나서도록 의회를 설득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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