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호언과 달리 온라인 시장서도 여전한 ‘규제’와 ‘차별’

  • 입력 2023.09.24 18:00
  • 수정 2023.09.24 20:4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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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기존 오프라인 공영도매시장이 지닌 제한을 철폐하고 유통 주체별 경쟁을 촉진해 농산물 유통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정부 구상이 집약된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이지만, 여전히 발목을 붙잡는 규제가 곳곳에 존재하는 실정이다.

먼저 온라인 도매시장 설립 및 운영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발의된 「농산물 온라인 도매거래 촉진에 관한 법률안」의 경우 판매자로 참여할 시장도매인의 거래 대상을 제한하고 있으며, 도매시장법인과 시장도매인, 중도매인 등 유통 주체별 거래 방법 역시 기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이 정한 방식을 강제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시장도매인의 경우 여전히 농안법의 규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최근 강서시장 내 각종 소송전의 원인이 된 농안법 제37조 제2항이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과 농산물 온라인 도매거래 촉진에 관한 법률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다.

법률안에 따르면 시장도매인은 온라인 도매시장에서도 강서시장 중도매인에겐 물건을 판매할 수 없다. 전국의 모든 구매자에게 물건을 판매할 수 있지만, 강서시장 중도매인만은 예외인 셈이다.

임성찬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장은 “선량한 시장도매인을 범법자로 만드는 농안법 제37조 제2항이 온라인 도매시장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규제를 없애겠다고 만든 온라인 시장에서까지 시장도매인의 거래를 제한하는 조항을 법률안에 담았다는 건 시장도매인을 그대로 말살시키려는 정부 의지가 담긴 거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임 회장은 “농안법 때문에 지금도 시장도매인은 경찰서 끌려가 조사받고 또 재판받으며 벌금까지 내고 있는데, 온라인 시장에서도 또 시장도매인의 자유로운 거래를 막고 있다. 산지와 직접 접촉해 매수거래를 진행하는 시장도매인의 특성상 온라인 도매시장의 개설은 그간 규제에 가로막힌 거래의 흐름을 확대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온라인 도매시장 개설 논의에도 시장도매인은 쏙 빠졌다. 관련 회의에 참석한 기억이 단 한 번뿐이다”라고 밝히며, 농식품부에 농안법 개정과 온라인 도매시장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이처럼 시장도매인은 거래 대상뿐 아니라 거래 방식 역시 제한을 받는다. 시장도매인은 매수거래로만 물건을 판매할 수 있을 예정이며, 도매시장법인과 공판장 등에선 위탁거래로 농산물을 판매할 전망이다.

이에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존 도매시장법인의 경우 출하농 보호를 위해 위탁거래만 허용할 예정이며, 시장도매인의 경우 도입 취지 자체가 매수거래를 허용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 도매시장에서도 매수거래만 가능케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온라인 도매시장 개설·운영과 함께 정부가 농산물 유통 선진화 방안에서 적지 않은 비중으로 강조한 스마트 APC 조성·확대 역시 농협 등 농산물 집하·저장·가공 설비 기반이 마련된 단체 위주로 집중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현재 농식품부 구상으론 일반 영농조합법인이나 소규모 산지 출하인 등이 온라인 도매시장 판매자로 참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모든 영농조합법인이나 산지 출하인, 농민이 APC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고민되는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덧붙여 이 사무총장은 “기존에 저장·유통 시설을 갖추고 있는 대규모 APC 정도면 모를까 설비 지원을 받을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면, 판매자로 온라인 도매시장에 진입하긴 쉽지 않을 여건이다. 때문에 과일 등 APC가 잘 갖춰진 곳이라면 온라인 도매시장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전망이 되지만, 대중성 없는 다수의 품목은 그냥 온라인 시장이 개설되나보다 정도로 인식하는데 그칠 뿐 어떤 걸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감을 못 잡고 있고 이걸 끌고 갈 만큼 역량 있는 주체도 없는 상태다”라며 “이 경우 판매자는 기존 오프라인 도매시장처럼 도매시장법인이나 농협 등 큰 APC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초 구상대로 농식품부가 온라인 도매시장을 운영하려면 판매자를 다변화하고 이를 위해 작은 규모의 지역별 영농조합과 가족농·소농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하는데 늘 그렇듯 규모화된 APC에 지원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또 이 사무총장은 “기존 공영도매시장 유통 주체만으로 새로운 시장을 운영하는 건 의미가 없다. 새로운 수요처 발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공간 제약 없는 시장이 생기는 건 분명한 기회 요건인데 구매자가 여전히 기존 시장 내 중도매인에 그치면 농협 온라인 거래소 꼴밖에 안 되는 거다”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밖에 온라인 도매시장의 구매자인 중도매인 진영에서도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활성화를 위해선 기존 공영도매시장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나용원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산지 APC 등 판매자에 대한 지원은 그래도 윤곽이 잡혀 있는 편인데, 구매자인 중도매인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산지에 접촉해 판매자와 신뢰를 쌓고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를 하더라도 물건을 중도매인 점포가 위치한 오프라인 시장(경매장)에 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 지방 도매시장과 도매시장법인이 이를 허용해줄지가 의문이다”라며 “온라인 도매시장 개설을 바라보는 가락동과 지방 도매시장 중도매인 입장에 차이가 있지만, 물건 반입에 대한 불안감 하나는 비슷하다. 온라인 도매시장 개설자인 농식품부가 직접 나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를 시도할 중도매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거래 물량 반입만 허용돼도 농식품부가 계획한 대로 주체 간 경쟁이 촉진되고 그로 인한 중도매인과 출하자 간 산지 직거래 증가, 농가 소득 증대 모두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가락시장을 포함해 지방 공영도매시장의 개설자들과 온라인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물품의 반입 장소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으며, 수수료 등에 대한 부분도 체크를 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온라인 도매시장의 경우 디지털화된 물류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에 언제 얼만큼의 물량이 반입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 시장 관리가 이전보다 용이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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