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의 문 열어준 거창군 성인 문해교육

인터뷰 l 김광선 거창군 인구교육과 평생학습담당 주사

  • 입력 2023.04.23 18:00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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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거창군 시내 등하굣길엔 교복 입은 할머니들이 보인다. 주민들은 처음엔 할머니들이 ‘퍼포먼스’를 하는 줄 알았단다. 하지만 이들은 시내 한 고교에 다니는 진짜 학생들이다. 지난해 거창군에선 전국 처음으로 성인 문해 과정에서 중등 학력을 취득한 13명 모두 일반 고교에 진학했다. 17년간의 성인 문해교육 성과를 바탕으로 학력인정과정까지 운영해 이뤄낸 성과다. 실제로 거창군 20세 이상 인구의 28%(1만5,000여명)가 초중등 학력을 갖지 못한 상태다. 성인 문해교육은 물론 학력 취득의 기회까지 제공하는데 앞장서는 거창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광선 거창군 인구교육과 평생학습담당 주사
김광선 거창군 인구교육과 평생학습담당 주사

성인 문해교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3년 거창군이 경남도에서 처음으로 평생학습도시로 지정(교육부)되면서 시작했다. 당시 꽃꽂이·노래교실 정도밖에 없었고, 농촌 지역이라 고령자가 많고 비문해율이 매우 높았다. 야학 등에서 일부 문해교육이나 검정고시 과정이 있었지만, 지자체 교육은 없었다. 글을 알아야만 평생교육도 가능하고 일반 사회생활도 할 수 있다. 하다 보니 문해교육은 교육을 넘어 인권과도 연결되는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현재까지의 성과는 어떤가?

2008년 이전엔 30개 교실부터 시작해 2015년엔 38개까지 진행됐다. 꾸준한 사업 결과 현재 비문해가 많이 해소됐고, 인구 자연 감소로 교실이 줄었다(지난해 24개). 인원은 650명까지 이르다 현재는 200명대다. 2015년엔 초등학력, 2019년도엔 경남도 최초로 중등학력 인정 교실도 시작했다. 도 교육청과의 협업으로 40개 교실에서 577명이 참여, 127명이 학력을 취득했다. 지난해 중학 과정을 마친 졸업생 13명이 배출됐고, 모두 같은 학교(일반계 고교)에 입학했다. 개별적인 진학은 많지만 이런 사례는 거창군이 전국 최초다.

일반 고교까지 진학하게 된 과정은?

이분들 가운데는 무학에서 시작한 분들도 7명이다. 자신의 이름도 못 쓰다가 찾아가는 교실 5~6년 다니고, 초중등 학력인정교실을 거쳐 고등학교까지 가신 거다. 올해 2학년에 올라가셨는데, 여섯 분이 올해부터 등록금이 무료가 된 경남도립거창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동복지, 사회복지, 뷰티과가 목표란다. 학교에서 지원한 뷰티 동아리에 드신 어머니들은 신났다. 올해는 문해교실 졸업생 10명과 일반 만학도 5명이 입학했다. 평균 나이가 74세고 연령층은 57~87세까지다.

어려움은 없었나?

시작한 뒤 4~5년 지나서도 군의회에선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이래 많은 돈을 들여야 되나’란 말도 나오고 부정적 인식이 강해 예산 편성 때 항상 힘들었다. 하지만「거창군 성인 문해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도 만들었고, ‘한글 깨친 게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다, 인생이 바뀌었다’라는 후기가 편지글과 시화로 전해지면서 그간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글을 몰랐다는 걸 창피해하고 못 배운 걸 한으로 여겨 슬퍼했지만, 지금은 졸업할 때 축제 분위기로 축하하고 진학도 한다. 문해교육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는 분위기는 이젠 없다.

성인 문해교육의 가장 큰 의미는?

보건복지 영역에서 노인 프로그램은 많지만, 문해교육은 제일 기본 중 기본이다. 글을 모르면 자기표현을 할 수 없고 다른 프로그램 참여도 어렵다. 마을회관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교실 초창기엔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되게 기가 죽어 있었다. 마을회관을 교실로 쓰겠다 할 때 이장님들이 뭐라 하면 주눅 들고 어려워했다. 한글을 모르면 마을에서 큰소리를 칠 수 없는 구조다. 지금은 전보다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하신다. 깨치고 좀 더 당당해지고 자존감이 올라간 것이 큰 변화이자 중요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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