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당사자’ 목소리 빠진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 입력 2023.03.24 14:14
  • 수정 2023.04.12 02:2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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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22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센터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 기후정의 운동가들이 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오른쪽 상단)의 연설 중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센터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 기후정의 운동가들이 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오른쪽 상단)의 연설 중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석열정부가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논의 과정도 졸속적이었던 데다, 농민·노동자 등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진 채 산업계의 이익 보호 내용으로 가득 찬 기본계획이 나왔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세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직접적 주체인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공동위원장 한덕수·김상협, 탄녹위)는 지난 25일까지 1차 기본계획을 발표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사전에 미리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민간영역과 함께 제대로 된 논의를 거쳐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탄녹위는 기본계획 발표 마감 시점인 3월 25일을 겨우 3일 앞둔 3월 22일에 공청회를 열겠다고 공지하면서 공청회 1주일 전까지 기본계획 초안도 공개하지 않은 데다, 사실상 산업계의 이익만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는 지난 15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탄녹위는) 시민사회를 비롯한 각계각층과의 의사소통, 의견수렴은 철저히 외면했지만 산업계와는 지난달 16일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탄녹위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산업계에 부담이 된다면 산업부문 감축목표를 더 낮추겠다는 방향을 밝혔다”고 탄녹위의 ‘산업계 친화적 태도’를 비판했다.

한편 탄녹위 민간위원 32명의 구성을 보면 전부 교수·연구자 및 산업계 관계자로 구성됐다. 농민단체 또는 노동조합 등 기후위기 직접 당사자인 농민·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의 관계자·전문가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핵발전소 부활, 기업 인센티브 제공, 기후스마트농업 … 이게 최선인가?

지난 2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서울시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센터에서 열린 기본계획 관련 공청회에선 기본계획의 내용이 공개됐다. 논의 과정 및 논의 주체 구성부터 문제가 많았던 만큼, 실제 공개된 기본계획 또한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공감을 얻기 힘든 내용이었다.

기본계획에선 각 부문별 NDC(2030년까지 이 목표에 정한 만큼 배출량을 감축해야 함)의 재조정이 가해졌는데, 가장 주된 온실가스 배출원인 산업부문의 전체 NDC 대비 감축 비중은 11.4%(감축해야 할 이산화탄소 환산량 기준 약 2억3,070만톤)로, 2021년 10월 NDC의 14.5%(약 2억2,260만톤)에서 오히려 비중이 3.1% 줄어들었다.

산업계의 압도적인 탄소 배출량(수정된 NDC 기준 산업계의 탄소 배출량 비중은 약 52.8%)을 감안할 때 전체 NDC 내 비중이 2021년보다 줄어든 것은 탄녹위가 지나치게 산업계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 ‘원자력발전(핵발전) 확대’를 표방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본계획엔 △경북 울진군 신한울 핵발전소 3·4호기의 건설 재개 △운영허가가 만료된 핵발전소의 계속 운영 등 핵발전 확대 관련 내용을 담았다.

농축산업 부문의 경우, NDC 상의 감축량 비중(27.1%, 감축량 1,800만톤)은 2021년과 이번 기본계획의 비중이 동일하다. 추진 방향으로서 ‘저탄소 구조전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농축수산업 실현’을 표방하는 농축수산 부문 감축 방안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농업 확산 △논물 관리(저메탄 논농업 방식 보급 등), 질소비료 감축 등 저탄소 농업기술 적극 보급 △저메탄·저단백 사료 개발·보급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기본계획엔 ‘기후변화 적응대책’으로서 △농장 맞춤형 기상재해 조기경보체계 확대 구축 △기후 적응형 생산기술 개발·보급 등이 농업 관련 내용으로서 담겼는데, 여기서 언급하는 ‘기후 적응형 생산기술’이란 스마트온실·스마트축사 활용을 통한 생산기술이다. 말하자면 ‘기후스마트농업 확산’이 기본계획상 농축산업 부문의 핵심 기조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기후정의 실현’”

지난 22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센터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 기후정의 운동가들이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센터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 기후정의 운동가들이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본계획 논의 과정의 비민주적, 친기업적 문제 및 기본계획 자체의 친핵발전·화석연료 성격을 규탄하며, 체제전환을위한기후정의동맹·기후위기비상행동 등에서 활동하는 기후정의 운동가들은 22일 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기후정의 운동가들은 “비민주적 기본계획, 정당성 없다”, “핵발전으로는 기후위기 못 막는다”, “기후악당 기업, 인센티브 말고 규제”, “기후위기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공청회장 단상에 섰다. 이들은 “산업계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농민·노동자 등 기후위기 당사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기본계획을 반대한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녹색성장’이 아닌 ‘기후정의 실현’임을 다시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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