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국정 퇴행의 시대 - 농업을, 나라를 농민 손으로

  • 입력 2023.01.01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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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나고 자라 평생 농사의 외길을 걸어온 삶,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손톱은 갈라지고 주름은 도드라진 농민의 검붉은 손. 불의의 사고로 왼손 마디마디가 절단되는 아픔을 겪은 농민 김학도(66)씨가 두 손 가득 지난해 추수한 쌀을 담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삼대째, 대대로 쌀과 잡곡 농사를 지어온 그는 새해를 앞두고 당부하듯 말했다. “(윤석열정부는) 틀렸어. 아무것도 몰라. 이대로 두면 다 망가져.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돼.” 한승호 기자
나고 자라 평생 농사의 외길을 걸어온 삶,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손톱은 갈라지고 주름은 도드라진 농민의 검붉은 손. 불의의 사고로 왼손 마디마디가 절단되는 아픔을 겪은 농민 김학도(66)씨가 두 손 가득 지난해 추수한 쌀을 담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삼대째, 대대로 쌀과 잡곡 농사를 지어온 그는 새해를 앞두고 당부하듯 말했다. “(윤석열정부는) 틀렸어. 아무것도 몰라. 이대로 두면 다 망가져.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돼.” 한승호 기자

대통령 취임 후 대략 6개월 정도를 ‘허니문’에 비유한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지층의 뜨거운 열기를 존중하며 비지지층 국민과 언론, 야당 세력까지 비판보다 앞으로의 국정에 대한 격려와 협조를 보내는 기간이다.

윤석열정부엔 이 허니문 기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부터 무리한 집무실 이전으로 국민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를 선사하더니 편향적 인사와 연이은 실수·실언으로 지지층의 마음마저 돌려세웠다. 최근 간신히 반등세를 보이는 지지율 역시 성숙하지 못한 ‘혐오’의 정서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일각에선 국정 공백을 넘어 퇴행을 지적하고 있다. 노동·여성 분야에선 이미 명백한 시대 역행이 벌어지고 있고 통일·안보마저 흔들리고 있다. ‘선택적’이라고 비판받던 소통과 화합은 이제 아예 자취를 감췄으며 국민 안전과 생명의 가치는 2014년 4월 이전으로 회귀했다. “이번 정부에선 각자도생”. 대통령 취임 두 달이 지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국민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말이다.

정부의 무관심과 공감능력 결여는 사회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경제적 관점으로 보나 사회적 관점으로 보나 농민들은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약자 중 하나다. 농업공약은 하나하나 파기 내지 역행의 수순을 밟고 있고 ‘물가 안정’의 기치 아래 농민들은 억눌리고 또 억눌려왔다. 어떤 정권에서든 농업은 소외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지난 7개월 농민들의 삶은 한층 더 외롭고 고달팠다. 새해를 맞는 농민들의 얼굴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그러나, 농민들은 약자인 동시에 강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주체역량이 크고 민주의식이 투철한 이들이 바로 농민들이다. 삶의 터전인 땅에 애착이 남달라서일 수도 있고, 제도나 정치보다 자연의 섭리를 좇아 살아가는 삶의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오랜 세월 정책에서 소외돼 이미 ‘각자도생’에 이골이 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면 농민이 한다. 농가 재난지원금, 쌀값 대책, 여성농민 권익 신장, 농민기본소득과 최저가격 보장.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정부가 해줬어야 할 일들을, 각 지역마다 농민들이 직접 일어나 하나 둘 이뤄가고 있다. 진보적 전문가들과 손잡고 아예 농업·농촌·농민의 가치를 법률에 박아넣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한층 바빠진 농민들의 행보는 이 정부의 농업정책이 얼마나 빈틈투성이인지를 방증한다.

어디 농업정책뿐이겠는가. 역사적으로 농민들은 자기 삶의 문제를 넘어 나라의 위기 상황에 누구보다 앞에 나서 분골쇄신했다. 두 갑자 전 갑오년의 농민군은 끝내 일제의 총칼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그 서슬퍼런 정신이 오늘에까지 한 점의 소실 없이 이어지고 있음은 불과 6년 전에 증명된 바 있다. 국정농단 시대를 끝내는 투쟁의 최선봉에 섰던 농민들은 지금 다시 ‘국정퇴행’ 시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경직된 남북 관계 속에서 통일농업으로 평화의 불씨를 지켜가는 이들 또한 농민들이다.

‘초보 대통령’이 마침내 국정에 익숙해지고 농민들의 삶에 관심이 생겨 선정을 펴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다행이겠지만, 지난 7개월 정부의 모습은 마냥 신뢰하고 기다리기엔 위험부담이 커 보이는 게 사실이다.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힘, 정부의 실정을 질책하고 보완해낼 수 있는 힘. 2023년을 살아갈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어느 때보다 주체적 역량이 절실히 요구되며, 언제나처럼 그 선두엔 농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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