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다시금 살아나는, 농민들의 6년 전 형형한 눈빛

  • 입력 2023.01.01 00:00
  • 수정 2023.01.04 18:0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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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대형트랙터를 앞세우고 전남 해남, 경남 진주에서 각각 출발한 전봉준투쟁단 소속 농민들이 2016년 11월 25일 ‘박근혜 퇴진, 쌀값 보장을 위한 전국농민대회’가 예정된 서울로 출발하기 위해 안성공설운동장을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대형트랙터를 앞세우고 전남 해남, 경남 진주에서 각각 출발한 전봉준투쟁단 소속 농민들이 2016년 11월 25일 ‘박근혜 퇴진, 쌀값 보장을 위한 전국농민대회’가 예정된 서울로 출발하기 위해 안성공설운동장을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정농단을 벌인 대통령을 겨눈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두 시간도 채 남지 않았던 2016년 12월 17일 오후 1시경, 경찰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농민들’은 기어이 국회 정문 앞에 트랙터 두 대를 내려놓았다. 남도 땅끝 전남 해남과 경남 진주에서부터 달려오며 정권 퇴진운동을 주도했던 이 트랙터들은 농민저항의 뜻을 담은 농사용 도구 그 이상의 존재였다.

민중의 총의를 담은 거대한 그릇과도 같았던 이 트랙터들은 경찰이 세운 겹겹의 저지선을 뚫어가며 기어이 국회 코앞까지 도달했다. 압도적인 경찰 병력들로 인해 곧바로 유리창이 깨지고 농민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끌려 나오긴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지길 주저하고 있던 국회의원들에게 국민의 뜻을 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행렬에서 경찰과 부딪혀가며 트랙터를 밀었던 농민들은, 강력한 저항을 이겨내고 그 여정을 결국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국민과 함께 간다’는 확신에서 나왔다고들 회상한다. 농민들이 헌신적으로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까닭엔,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트랙터로 마침내 세상을 갈아엎을 수 있을 거란 강력한 희망이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갑오년의 동학농민운동 이래 그 정신을 계승하는 농민들이 언제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국민의 뜻이 커졌다 한들,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일말의 고민 없이 가장 앞에서 창을 쥐려는 신념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현장노동자들과 더불어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의 판을 벌인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봉에 섰던 트랙터들의 이름은 그래서 ‘전봉준트랙터’였다. 평소 자본과 권력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돌파구를 찾는 농민운동가들이 있었기에, 국정이 퇴행하다 못해 뿌리째 흔들린 위기가 닥쳤음에도 민중은 이를 신속히 바로 잡을 가장 강력한 창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다.

6년 전 전봉준의 이름과 신념을 다시 달고 나선 트랙터는 120년 전 동학농민군과 달리 실제로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내는 성과를 냈지만, 이것이 완벽한 승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농민들이 가장 피부로 느끼는 농정 분야의 변화는 정권교체 당시 일어난 농촌에 번졌던 기대감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수준이었다. 농업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CPTPP 가입추진으로 이어지는 개방농정의 흐름은 계속해서 급물살을 탔고, 쌀 목표가격제도가 사라지고 농업진흥지역에 국가산업단지가 난립하는 등 식량주권을 사수하려는 우리 내적의 노력조차 더욱 희미해졌다.

5년이 흘러 다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농민들이 ‘정권교체’가 아닌 ‘체제교체’를 본격적으로 외친 건 그 때문이다. 실망과 피로감 속에 다시금 주인이 바뀐 정부는 해묵은 농정의 색채를 잇는 것은 물론 박근혜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내는 농민들을 고립시키고, 행동에 나서는 농민들을 탄압하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여느 때라도 스스로 민중의 창이 될 준비가 된 농민들이 여전히 농촌을 지키고 있는 지금, 6년 전 국회를 향해 트랙터를 몰아 끝내 정권을 무너뜨렸던 그들의 눈빛은 그때만큼이나 형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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