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농민의길 “우리는 농민 투쟁 담아낼 마지막 그릇”

  • 입력 2023.01.01 00:00
  • 수정 2023.01.04 18:0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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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해 11월 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쟁취! 농민생존권 보장! 전국농민결의대회’에서 전국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쌀값 보장 등을 촉구하며 대통령실로 행진하려다 경찰에게 막히자 나락을 뿌리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1월 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쟁취! 농민생존권 보장! 전국농민결의대회’에서 전국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쌀값 보장 등을 촉구하며 대통령실로 행진하려다 경찰에게 막히자 나락을 뿌리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근 생산물가 상승과 대외적 요인으로 농업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정권교체기를 전후해 한데 뭉치는 듯했던 농업계 시민단체들이 다시 양쪽으로 갈리고 있다. 특히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을 두고는 갑작스런 정부 의견 동조가 잇따르는 풍경까지 보인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정부 시절부터 양곡관리법의 허점을 주장해왔던 ‘농민의길’은 여전히 현장과 농촌의 ‘농심’이 자동시장격리제 도입에 있다며 쌀값 투쟁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농업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동행동을 구성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추진을 반대하는가 하면, 쌀값 폭락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도 함께 목소리를 냈다. 지난 여름엔 각종 생산물가 상승에 따른 경영악화, 농축산물 무관세 수입 등을 이유로 대규모 연합시위가 연이어 벌어졌다.

그러나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문제의식을 담은 목소리는 급속하게 사그라들었다. 한술 더 떠 주요 농민단체 대부분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각종 결정에 대해 적극적인 동의를 표하고 있다. 현재 여야 정쟁의 대표 사례로 떠오른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반응은 그 가운데서도 핵심 사례다.

지난해 12월 중순 들어 더불어민주당이 생산량에 따른 시장격리를 법률상 의무조항으로 바꾸는 개정안 처리를 본격적으로 밀어붙이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개정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가 쏟아져나왔다. 집권 당시 법을 제대로 개정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외면한 채 늦게서야 재개정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의 변화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모르겠다’로 돌아선 농민단체들의 갑작스런 변덕이다.

예컨대 이 제도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농민단체들 가운데 하나인 (사)쌀전업농중앙연합회(쌀전업농)는 지난해 12월 23일 성명을 내고 “이번 시장격리로 인해 (자동시장격리의) 한계가 드러났기에 실질적인 농가소득과 쌀 산업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논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며 그동안의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애초 주장했던 ‘자동적’ 수확기 시장격리는 아직 한 번도 발동한 적이 없어 그 효과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쌀전업농은 지난해 7월 열린 이사회, 9월 열린 전국대회 등 수확기를 앞둔 시점까지만 해도 ‘자동시장격리’를 의무적으로 발동시키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랬던 입장이 단 2~3개월 만에 180도로 뒤바뀐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지금도 이 개정안을 찬성하는 집단은 지난 2018년 문재인정부 당시 당정이 쌀 목표가격 삭제를 시도할 때부터 자동시장격리를 강력히 주장했던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양옥희, 농민의길) 단 하나의 축만이 남은 상태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농민대중조직을 표방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그리고 품목생산자단체인 (사)전국쌀생산자협회는 개정안 발의 이후 현 정부와 여당, 농식품부가 공개적으로 우려와 반대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서울 도심에 수차례씩 나락을 흩뿌려가면서까지 저항했다.

이들은 다른 농민단체들이 설령 노선을 바꾼다 한들, 자신들만큼은 농민의 뜻을 담아낼 마지막 그릇과 같은 존재로 남겠다는 입장이다. 수확기의 선제적 시장격리는 진영과 단체를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쌀 생산 농가들의 염원이었던 만큼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지난해 11월 전국농민대회는 농업계에서 농민의길만이 주최에 참여했으나 1만5,000명이 몰렸다. 농민들, 지역 농촌들은 이제 이 문제와 관련해 믿을 단체가 전농뿐이란 걸 알고 있다”라며 “폭락한 쌀값으로 인한 농촌 현장의 분노는 지금 부글부글하다. 전농과 전여농은 이 분노와 저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하 의장은 “수입개방 문제도 마찬가지다. 품목마다 수입산이 판을 치는데, 수입을 줄이라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수급조절해야 한다는 정부 말에 동조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라고도 덧붙였다.

양옥희 전여농 회장은 “농민단체 대표들을 불러 모으는 각종 정부 행사에서 기념사진이라도 찍는다 하면 ‘달려서 줄서기’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각종 사업이나 예산을 빌미로 말 잘 듣는 이들을 줄 세우는 정부의 오랜 행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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