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윤석열의 농정 공약, 역시나 ‘말’뿐이었다

농정과 예산, ‘직접’·‘확실히’ 챙기겠다던 약속 어디갔나

열악한 농업 대내외 여건 속 후퇴 중인 ‘윤석열표’ 농정

  • 입력 2023.01.01 00:00
  • 수정 2023.01.01 19:32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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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업 정책과 예산을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던 호언장담은 결국 말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 대선후보 농정 비전 발표회에서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 정책과 예산을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던 호언장담은 결국 말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 대선후보 농정 비전 발표회에서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점점 줄어드는 농민의 숫자에 농업계가 지닌 표의 비중이 여타 산업계에 견줘 크지 않아서일까,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도 농업 분야 공약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유력 후보를 대상으로 쉴 새 없이 자행된 일련의 깎아내리기와 자질 논란, 불필요한 정쟁 탓에 대선은 온갖 네거티브로 점철된 채 제대로 된 공약을 챙길만한 여유조차 없이 흘러갔고 그 속에서 농업은 또다시 소외됐다.

결국 대선을 두 달 남짓 남겨둔 지난해 1월 25일에야 여야 후보들을 마지막으로 모든 정당의 농정 공약이 발표됐다. 그 이후 대선 후보들이 모두 모여 ‘농업’에 대해 직접 입을 뗀 건 지난해 2월 4일 열린 ‘선택 2022! 대선 후보 농정 비전 발표회’ 자리였다.

이날 윤석열 당시 후보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힌 농정공약은 크게 10가지로 추려진다. △농민의 안정적 소득 보장을 위한 직불금 예산 5조원 확보 △농지 보전을 통한 식량주권 확보 △기초 식량 비축량 확대와 식량 자급 목표치 달성 △경영비 부담 완화를 위한 비료가격 인상 차액 지원 △농촌 고령화에 대비한 청년농민 3만명 육성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 지원 및 제도 정비 강화 △농촌마을 주치의제도 도입 및 이동형 방문 진료 확대 △저탄소·경축순환·생태농업 지원 확대 및 온실가스 저감 농법 실천 농민 지원 △학교급식과 군급식에 친환경 국산 농축산물 우선 사용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친환경 식품 지원 본격화 △농축산물 생산 유통 시스템 첨단화를 통한 유통 비용 절감 등이다.

이와 더불어 윤석열 당시 후보는 “차기 정부를 맡게 된다면 농업·어업·축산정책과 예산을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호언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직접 농업 정책과 예산을 챙기겠다는 약속은 사실 여느 선거에서든 매번 공염불에 그쳤던 부분이다. 이에 농업계에서도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흘러나온 결코 가볍지 않은 말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역시나 당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비료가격 인상분 지원 예산을 삭감한 것이었다. 약 10가지의 대표 농정공약 중 단기간에 실현할 수 있고, 본인의 입으로 가장 공공연하게 발언했던 공약 중 하나였지만 농민들의 기대를 갈아엎기로 작심이라도 한 듯 첫 추경 예산안에서 비료가격 인상분 지원에 대한 정부 부담을 대폭 축소했다. 추경안에 따르면 윤석열정부는 당초 30%였던 정부 분담을 10%로 줄여 인상분 지원에 소요되는 비용 대부분을 지방자치단체와 특히 농협에 전가시키려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비료가격 인상분 지원 예산은 결국 국회를 거치며 일부 복구됐지만, 발등을 크게 찍힌 농민들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대통령의 모습에 쓴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농지 보전을 통한 식량주권 확보 공약은 대통령이 임명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주축으로 ‘가루쌀’에 치중돼 오히려 현장 농민들의 우려를 확산시키고 있으며, 식량 자급 목표치를 달성하겠다는 구호와 상반되게 윤석열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끈 또한 끝끝내 놓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부터 논의된, 사실상 검역주권 포기와 다름없는 CPTPP 가입 추진을 이어받아 강행함으로써 공약집에 버젓이 담긴 GMO 완전표시제 도입이나 수입농산물 피해 농가 지원 등과 오히려 멀어지는 행보로 농민들을 생존권 사수의 현장에 내몰았다.

아울러 농축산물 생산 유통 시스템 첨단화를 통한 유통 비용 절감은 도매시장 시설 현대화에 그칠 뿐 유통경로 다변화나 도매시장 개혁을 통한 농산물 제값 받기는 여전히 주무부처의 무관심 속 논의조차 원활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정부 이후 2022년에만 벌써 수차례에 걸친 품목별 농산물 가격 폭락 사태가 반복됐으며, 그 속에서 농민들은 지속적으로 오른 농자재값도 건지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농산물 가격을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직불금 예산 5조원 확보’ 역시 구체적인 실현 계획과 방법이 여전히 불분명한 상태다. 내년 예산안에 전략작물직불금 예산이 추가된 것 외에 직불 예산 5조원 확보를 위한 어떠한 것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농민들이 공약 파기를 우려하는 이유다.

이 밖에 저탄소·경축순환·생태농업 지원 확대 및 온실가스 저감 농법 실천 농민 지원 공약은 사실상 관련 분야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관심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인증제 개편이 유일한 성과라면 성과인데, 그마저도 친환경농업계의 지속적인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에 불과하며 현장 농민들이 요구하는 정책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한 건 전무하다시피 하다. 친환경 농축산물 급식 우선 사용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친환경 식품 지원은 과일간식 지원사업 및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중단 등으로 오히려 개악 중인 모습이다.

또 농촌마을 주치의제도 도입은 기존의 보건복지부 방문 진료 사업으로 은근슬쩍 축소·대체하려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성농민 정책 역시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오히려 후퇴했다고 보는 게 맞을 지경인데, 10년 만에 단행한 농림축산식품부 조직 개편 결과만 놓고 봐도 정부의 관심사가 여성농민보다 동물복지에 치중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성농민 맞춤형 농기계 개발·보급과 육아 부담 경감을 위한 자녀 돌봄 서비스 및 영농도우미 제도 확대, 여성농민의 창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던 스스로의 발언과 달리, 지난 2019년 신설돼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시범사업과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 교육’ 등 눈에 띄는 굵직한 성과를 낸 농촌여성정책팀은 이번 조직 개편에서 과로 승격되지 않았다. 게다가 중앙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행에 발을 맞추기라도 하듯 충청남도에선 여성농민들이 힘겹게 쟁취한 행복바우처 사업을 폐지하겠다고 나서 전국 여성농민들의 공분을 샀다.

집권 1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윤석열정부의 농정은 이전 정부의 정책을 의식 없이 답습하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갈수록 악화하는 농업 대내외 여건 속 농업·농촌·농민의 지속 가능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 수립과 이를 위한 실행 방안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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