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파산 위기” 농민들, 전국농민대회서 대정부 투쟁 선포

16일 여의도서 전국농민대회 개최
쌀값 보장 및 생산비 폭등 대책 촉구
국회·국민의힘 당사 앞서 나락 쏟기도

  • 입력 2022.11.20 18:00
  • 수정 2022.11.20 19:15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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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폭등한 농업생산비 및 농가부채 해결 촉구! TRQ-CPTPP 저지! 전국농민대회’에서 전국에서 상경한 1만5,000여명의 농민들이 ‘쌀값 보장 윤석열 심판’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폭등한 농업생산비 및 농가부채 해결 촉구! TRQ-CPTPP 저지! 전국농민대회’에서 전국에서 상경한 1만5,000여명의 농민들이 ‘쌀값 보장 윤석열 심판’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대회를 마친 농민들이 볏가마를 짊어지고 국회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설치한 철제 가림막에 막히자 가림막 너머로 나락을 뿌리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대회를 마친 농민들이 볏가마를 짊어지고 국회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설치한 철제 가림막에 막히자 가림막 너머로 나락을 뿌리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쌀은 安保이다’, ‘농자천하지대본’ 등이 적힌 깃발을 들고 국민의힘 당사로 행진한 농민들이 쌀값 대책 등을 촉구하며 국민의힘 의원들을 규탄하고 있다. 윤병구 기자
‘쌀은 安保이다’, ‘농자천하지대본’ 등이 적힌 깃발을 들고 국민의힘 당사로 행진한 농민들이 쌀값 대책 등을 촉구하며 국민의힘 의원들을 규탄하고 있다. 윤병구 기자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표시로 수확을 앞둔 논을 갈아엎던 농민들이 다시 아스팔트 위에 모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대규모 농민대회가 열린 지난 16일, ‘내년에도 농사짓게 해달라’는 농민들의 외침이 서울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양옥희, 농민의길)·식량주권사수-CPTPP가입저지 범국민운동본부·전국먹거리연대는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윤석열정부 농정규탄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정부에 폭등한 농업생산비 대책과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촉구했다. 주최 측 추산 1만5,000여명의 참가자는 무대 단상 앞 2개 차로를 가득 메웠다.

대회 장소로 진입하는 입구와 그 맞은편에 각 1대씩 진열된 트랙터에는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하라’, ‘내년에도 농사짓고 싶다’라고 적힌 깃발이 휘날리고, 단상 앞에는 40kg 볏가마 42개가 쌓여 있었다.

“쌀값 안정? 동의 못 해”

본대회가 시작되기 전 일부 농민들은 꽹과리와 장구, 징을 치며 흥을 돋웠다. 이른 아침부터 지역에서 상경하느라 식사를 못 한 농민들은 곳곳에 둘러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전북 군산에서 35년째 쌀농사를 짓는 이봉효(64)씨는 “정부에서 쌀을 격리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쌀값은 작년에 비해 15% 정도 떨어진 상태”라며 “쌀이 남아돌더라도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촌경제가 돌아가게끔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2021년산 쌀의 경우에는 정부가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시장격리를 해서 내 발등 내가 찍은 꼴이 됐다”고 말했다.

전남 화순에서 쌀농사를 짓는 김영순씨도 쌀값이 안정되고 있다는 정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며 공공비축미 45만톤에 더해 2021년산 쌀 8만톤과 2022년산 쌀 37만톤에 대한 시장격리 매입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김영순씨는 “지금 현장에는 쌀 20kg 기준 작년에 7만원 하던 게 5만원으로 떨어졌다”며 “쌀값이 안정됐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생산비 반영한 쌀값 보장 촉구

사회를 맡은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무총장이 대회 시작을 알리자 ‘쌀값 보장’이라고 적힌 빨간 머리띠를 두른 참가자들이 ‘생산비폭등 대책수립’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였다. 이날 대회에는 농민단체뿐 아니라 노동조합, 정당, 소비자단체 등도 참여해 한목소리를 냈다.

대회사에 나선 양옥희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지금 윤석열정부의 농업에 대한 입장은 취임 이후 꾸준히 증명됐다”며 “농민들은 계속해서 현재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짚어왔지만, (정부는) 단 한 번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농업예산이 2.7% 올랐다고 자랑하듯 발표했으나, 이 정부의 농정에는 폭락한 쌀값에 대한 대책도 없고 폭등한 생산비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까지 치솟는 현황에 농민들의 파산은 말 그대로 예견된 미래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옥희 상임대표는 “문제는 쌀뿐만이 아니다”라며 “마늘이며 양파며 주요 농산물들의 사정은 모두 매한가지”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현실에도 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며 “이는 농업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미 파산을 앞둔 농민과 우리 농업을 완전히 소멸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상임대표는 “오늘 농민들은 농업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입장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갈아엎지 못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나섰다”며 “오늘이 바로 본격적인 저항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정부가 ‘밥상 물가’를 핑계로 농산물 가격을 때려잡고 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하원오 의장은 “‘밥상 물가’ 핑계 대며 농산물 가격 때려잡는 것이 윤석열정부의 유일한 일이었다”며 “비료값·농자재값·면세유값·인건비 폭등에는 무관심·무대책으로 일관하던 정부가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호들갑을 떨더니, 저율관세할당(TRQ)으로 쌀 40만8,000톤, 마늘·양파·배추 등 농산물을 수입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폭으로 폭락할 때까지 무대책으로 일관하더니, 기껏 내놓은 것이 시장격리였다. 쌀값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다음에 시장격리를 시행하니 효과가 있을 리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그렇게 해 놓고는 양곡관리법이 문제라고 개정하자고 하니 ‘양곡공산화법’, ‘사회주의 협동농장법’이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현행 양곡관리법은 수확기에 쌀 초과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수확기 가격이 평년 대비 5% 이상 떨어지면 정부가 쌀을 시장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요건을 충족하면 의무적으로 격리하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지난달 19일 여당의 반대 속에 야당 주도로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장 60일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하면 효력이 발생한다.

하 의장은 “농업·농민 무시도 모자라 색깔론 공세까지 나선 정부를 이제는 더 두고 볼 수 없다”며 쌀값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농산물 무관세·저관세 수입 중단, 생산비 폭등 대책과 농가 부채 해결 대책 수립, CPTPP 가입 추진 중단 등을 촉구했다.

김명기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은 “양곡관리 수급 안정에 관한 규정을 보면 쌀값이 폭락할 때는 정부가 자율적으로 시장격리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쌀값이 1%씩 3번 단 3%만 올라도 정부 쌀을 방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시 말해 쌀이 24% 이상 폭락할 땐 시장격리가 의무가 아니지만, 단 3%만 올라도 정부가 가지고 있는 쌀을 방출하는 것은 의무인 기막힌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명기 회장은 “‘다시 쌀값이 바닥을 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정책을 펼치면 나락은 절대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되지 않는다”며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이 있는 것처럼 농민들 쌀값도 생산비를 반영한 공정가격이 있어야 한다”며 “쌀 최저가격제를 전면화하고 쌀 자급률 100%를 명시하는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동자·소비자·정당 ‘연대 약속’

이날 대회에는 양동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조완석 전국먹거리연대 대표,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가 연대 발언에 나섰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물가는 폭등하는데 윤석열정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억압하고 있다”며 “쌀값보장·농산물값 보장·양곡관리법 개정·여성농민 복지 확장을 위한 투쟁은 노동자와 민중을 살리는 투쟁이다.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조완석 전국먹거리연대 대표는 “갈수록 심해지는 기상이변 속에 농자재 가격과 인건비는 계속 오르지만, 이번 쌀값 폭락 사태에서 보듯이 농산물 가격은 농업이 당면한 현실을 전혀 반영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위기의 파국적 결과가 식량위기로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는 계속되고 있고, 경제 위기와 양극화 확대로 먹거리에 대한 기본권 자체를 위협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어떤 정권에서도) 농업·농민의 문제만큼은 근본적인 것을 전혀 해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가능한 농업과 건강한 먹을거리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기본”이라며 “농업과 먹거리는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의 틀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로 다뤄져야 하며 어떤 장벽과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기본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민과 농업의 희생을 전제로 한 성장 논리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 중 주목할 것은 우리 소비자와 시민들이 위기 상황을 경험하면서 식량자급과 건강한 먹거리,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가치를 점점 더 인식하고 관심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정치권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내달 3일 열리는 전국민중대회에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김재하 공동대표는 “농민을 위한 각종 법과 제도, 예산 모든 것은 국회의원들이 정하고 대통령이 결정한다”며 “우리는 반농민 정책을 일관하고, 농민 요구를 외면하는 윤석열정부를 몰아내야 한다. 정권 퇴진에는 노동자와 농민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정당 대표들의 윤석열정부 규탄 발언도 이어졌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년 예산이 600조원이 넘는데, 우리 쌀과 농산물을 제대로 거둬들이는 데는 1조원도 쓰지 못해 수천년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린 농민들을 길바닥에 다시 나앉게 만드느냐”고 정부를 비판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는 대신 시장격리로 쌀값만은 지키겠다고 하더니 최저가 입찰제로 농민들의 뒤통수를 쳤다”며 “쌀 수급 대책의 칼자루를 기획재정부 장관이 쥐고 있고, 쌀 시장격리 매입가 기준이 없는 한 허울뿐인 양곡관리법 개정은 변죽만 울린다.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으로 정부 수매곡 가격 결정에 농민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개 농정 요구안 발표

이날 대회를 주최한 단체들은 결의문에서 “윤석열정권 임기 6개월 동안 우리 농업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며 △쌀 한 가마(80kg) 24만원 보장 △쌀 최저가격제 법제화하는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농가 긴급생활지원금 500만원 지급 △임산부 친환경 꾸러미사업·초등과일 급식지원사업 본예산 반영 △농어업 인력 지원 특별법 제정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하는 농민기본법 제정 △시장격리곡 수매 품종 제한 폐지 등을 비롯한 11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국회와 국민의힘 당사를 향해 두 개 조로 나눠 행진했다. 국민의힘 당사로 향한 참가자들은 2개 차로를 차지한 채 트랙터 2대와 볏가마를 실은 방송차량 1대를 앞세우고 행진했다. 국민의힘 당사 입구 앞에 다다르자 방호벽과 철제 가림막 뒤로 경찰이 늘어서 있었다. 농민들은 방송차량에 싣고 온 40kg짜리 볏가마를 어깨에 짊어진 채 ‘나락 반납 투쟁’을 펼쳤다. 경찰의 저지에 일부 농민들은 볏가마를 찢어 나락을 아스팔트와 가림막 너머로 쏟아내며 “쌀값 보장”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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