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 가격 인상분 지원, 결국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나

미량원소 포함된 일부 ‘원예용 복합비료’, 보조서 제외

농협 외 대리점 거래 농민에 대한 대책도 여전히 부실

내년 생산비 급등 ‘파국’ 전망 속 장기 대책 마련 시급

  • 입력 2022.02.27 18:00
  • 수정 2022.02.27 18:41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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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6일 전북 군산시 대야면 접산리 들녘에서 이완구(70)씨가 파릇파릇하게 자란 찰보리순에 질소비료를 살포하고 있다. 이씨는 “올 겨울 날이 따뜻해 보리순이 잘 자랐다”며 “이대로 커준다면 6월 초순에 수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 수급 불안의 여파로 무기질비료 가격이 기존 대비 최대 3배까지 오르자 농민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농협이 가격 인상분의 80%를 지원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북 군산시 대야면  들녘에서 한 농민이 찰보리순에 질소비료를 살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원자재 수급 불안의 여파로 무기질비료(화학비료) 가격이 기존 대비 최대 3배까지 오르자 농민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농협이 가격 인상분의 80%를 지원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최근 현장서는 대책이 미봉책에 그친다는 혹평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원예작물·과수 재배 농가가 사용하는 ‘원예용 복합비료’ 등이 지원 대상서 제외된 데다 그간 농협 외 대리점 등을 통해 비료를 구매한 농민의 경우 인상분 보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농협이 최근 비료 판매업체와 직거래한 농민을 지원 대상에 추가 배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얼마 남지 않은 시일 내 시작될 농민들의 농사 채비를 대응하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실정이다.

이무진 해남군농민회 조직교육위원장은 “시설 농가를 비롯해 원예작물 재배 농가나 과수 재배 농가에서는 칼슘과 마그네슘, 고토, 붕소 등의 미량원소가 포함된 원예용 복합비료 사용이 필연적이다. 해당 복합비료가 토양 산성화를 막고 품질과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 이번 지원 대상서 제외돼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정부는 원예용 복합비료를 일반 복합비료나 유기질비료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행정 편의적 논리를 내세워 지원 비종 확대 등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원예·과수작물의 경우 수도작보다 수급예측이 어려운 탓에 가격 등락이 심하고 미흡한 기계화로 인건비 상승 여파까지 고스란히 떠안고 있어 그나마의 생산량이라도 유지하려면 급등한 비싼 가격의 원예용 복합비료를 살 수밖에 없는 여건에 직면해 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질소(N), 인산(P), 칼리(K) 등 비료 3요소 외에 고토와 붕소, 규산 등을 추가로 함유하고 있는 A사의 원예용 복합비료 20Kg 한 포대는 지난해 8,900원에 판매됐으나 올해 1만4,200원으로 가격이 약 60% 인상됐다. 하지만 보조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60% 인상된 가격을 고스란히 떠안거나, 그동안 토양과 기후 등 재배환경에 맞춰 사용하던 해당 비료 대신 보조 대상에 포함된 다른 제조사의 비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농협 측 관계자는 “지난 2008년과 2009년 비료가격 인상분을 지원했던 당시에도 원예용은 대상이 아니었고, 올해 인상분 보조는 그때의 그 지침을 그대로 준용하고 있다. 사실 지원 대상 대부분이 농가에서 범용으로 사용하는 비료기 때문에 원예작물이나 과수 농가에서도 해당 비료만으로도 충분히 농사지을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농민들은 현재의 영농 여건이 2008~2009년 당시와 달리 크게 변화돼 과수·원예 농가가 수도작 재배 농가의 수를 뛰어넘은 상황이라며 현장 실정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의 입장도 농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미량원소를 포함하는 보조 대상 비종을 사용하거나 그럼에도 부족한 것은 유기질비료 등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다만 농기자재정책팀 관계자는 “원예용 복합비료라는 게 사실 농협이 구분한 분류에 불과하다. 사용량이 많은 대부분의 일반 비료는 회계법인 등의 원가분석을 거친 뒤 최저가입찰로 계통구매 계약 단가를 결정하는 반면, 원예용으로 분류되는 비료들은 업체로 하여금 가격 차별화를 행사할 수 있게끔 수의계약 하는 일부 비종을 일컫는 것일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농협에 따르면 계통구매 중인 전체 비료 물량 중 원예용 복합비료의 비중은 약 30% 정도다.

한편 이밖에 이번 보조사업의 또 다른 한계로 지적된 대리점 구매 물량에 대한 대책 역시 여전히 미덥잖은 상태다. 이무진 위원장은 “지역 농협에서는 일부 제한된 비종만을 취급하는 경향이 있고, 농협과 달리 대리점에서는 현금으로 비료를 구매할 경우 일부 가격 할인을 받을 수 있기에 적지 않은 농민이 대리점 등의 판매업체를 통해 직접 비료를 구입한다. 3년간 농협서 구매한 물량의 95% 한도로 설정한 당초 보조 지침을 변경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당장 3월부터 비료를 구매해야 하는 급박한 현장 상황과 달리 구체적 지침도 없고 대리점을 통해 구매했던 물량조차 아직 조사되고 있지 않아 불안감이 여전한 실정이다”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세금으로 비료가격 인상분 일부를 보조해주는데, 보조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농협을 거쳐야 하는 것 역시 제한적인 처사다”라고 강조했다.

농식품부에서는 “전체의 95% 정도가 농협 계통구매로 비료를 구매하고 대리점 등을 통한 비율은 약 5%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화학비료 사용 저감 기조 등을 내세워 “농협 비료 구매 내역이 없는 농가는 농촌진흥청이 정한 작물별 시비량에 따른 물량을 보조받게 될 것”이라 정리했다.

현장 농민들은 당장 2분기부터 적용될 비료가격 원가 연동제의 상한이 없는 점과 비료가격 인상분 보조가 올해로 한정된다는 점 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많게는 3배까지 뛰어오른 비료값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농협의 보조가 한시적으로 올해까지만 이뤄질 경우 최근의 유류비와 인건비 상승 여파를 차치하더라도 내년 생산비 폭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가 화학비료 사용 저감 대안으로 내세운 유기질비료 역시 지원사업의 권한이 중앙서 지방으로 이양돼 농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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