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주민 대신 업자 위해 풍력·태양광 조례 개정하나

장흥군, 적잖은 예산 쏟은 ‘경지정리구간’까지 버젓이 태양광 시설 허용

화순군의회가 완화한 풍력발전 이격거리 규정, 주민 조례 청구에도 ‘굳건’

  • 입력 2021.04.11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일 장흥군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유치면 주민. 박은자씨 제공
지난 1일 장흥군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유치면 주민. 박은자씨 제공

 

일부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주민 대신 풍력·태양광 업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장흥군(군수 정종순)은 장흥군 관리계획 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위한 개발행위 허가기준을 당초 ‘경지정리구간에 입지하지 아니할 것’에서 ‘농업진흥지역에 입지하지 아니할 것’으로 바꾸는 게 골자다. 관련해 장흥군은 ‘무분별한 개발로 안락한 정주 환경이 저해되고 산림이 훼손돼, 난개발을 막기 위해 개발행위 허가기준을 명확화했다’고 조례 개정이유를 밝혔다.

해당 조례 개정안은 지난달 18일 군의회 승인을 받았고, 7일 현재 기준 공포만을 앞두고 있다. 난개발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개정안대로라면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다수의 경지정리구간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역 주민에 따르면 장흥군 유치면에는 이미 조례 개정 전부터 경지정리구간에 태양광 발전 사업이 허가됐고 그 과정에서 주민과 적지 않은 갈등까지 빚은 과거가 있다. 이에 지난달 22일부터 유치면 주민들은 군청 앞 1인 시위를 통해 조례 개정 철회 및 근본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중이다.

유치면 덕리 마을 주민 박은자씨는 “유치면의 대체농지는 임야를 농어촌정비법에 의해 경지 정리해 농지로 만든 후 환지한 경우다. 군이 당시 조례를 어기고 2018년 11월 개발행위허가를 내줬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조례 위반 의심 조항들은 전부 태양광 발전이 용이하게끔 개정되고 있다”라며 “지금 조례 개정안 공포만을 앞둔 상황에서 여러 업체가 개발행위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인 걸로 안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하다. 조례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군이 더이상 주민과 상의 없이 마구잡이로 태양광 허가를 내주지 않도록 1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1인 시위를 계속할 생각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장흥군농민회는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장흥군이 밝힌 것과는 달리 조례가 개정되면 태양광 발전 가능지역이 더욱 확장돼 농지투기와 난개발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상위법인 농지법에 위배되는 문제가 있다”면서 “현재 농지는 농업진흥지역과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로 구분되고, 농어촌정비법에 의해 경지정리는 돼 있지만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농지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경지정리구간 입지 불가’에서 ‘농업진흥지역 입지 불가’로 조례를 개정하면 경지정리된 논들에까지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농민회는 또 “농지법 제32조는 농업진흥지역의 이용행위를 농업생산 및 농지개량과 직접 관련된 행위로 제한하면서도 농지법 36조2는 일시 사용허가를 예외로 두고 있는데, 개정안은 상위법인 농지법에 위배된다. 장흥군 담당자 역시 농민회와의 면담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이틀 후 보낸 공문엔 ‘상충’됨을 뒤늦게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에 따르면, 전라남도 내 기초지방자치단체 조례 중 태양광 발전 시설 허용 기준을 ‘농업진흥지역’에 두는 경우는 없다. 강진·곡성·구례·영광·영암·완도·진도·해남·화순군 등은 농업진흥지역보다 포괄적인 범위로 해석될 수 있는 ‘경지정리된 토지나 집단화된 토지, 우량농지’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단서 조항으로 농지법에서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기도 한다.

한편 군의회가 임의로 개정한 화순군 도시계획조례 역시 풍력발전 이격거리 원상 복구 및 재개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화순군(군수 구충곤)은 지난 2019년 8월 풍력발전 이격거리 관련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발전기는 △10호 이상 취락지역으로부터 2,000m 이내 △10호 미만 취락지역으로부터 1,500m 이내에는 입지하지 못하게 규정됐다. 하지만 화순군의회는 지난해 10월 친환경적인 풍력발전 확대를 위해 이격거리를 각각 1,200m와 800m로 완화한 바 있다. 이에 주민들은 조례가 개정된 직후부터 주민 발의 조례 청구 운동을 벌였고, 13개 읍·면 주민 3,336명의 서명을 취합해 지난 1월 풍력발전 이격거리 원상복구를 위한 조례 개정안을 주민 발의했다.

군청에 70일 넘게 계류됐던 주민 청구 조례 개정안은 지난달 16일 군의회에 전달된 상태다. 이후로도 주민들은 의회 앞을 찾아 회기 중 상임위 상정·승인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집회 중인 주민들을 돌려 보낸 군의회는 사실상 청구 조례 개정안 처리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다. 대책위와 주민들은 의회 측으로부터 ‘검토 후 상정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지만 군의회 다음 회기는 빨라야 6월로 예상된다. 풍력발전 업체 측이 이미 군에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한 상태인 만큼 주민들은 빠른 조례 재개정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유치면 주민들은 장흥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박은자씨 제공
지난달 22일부터 유치면 주민들은 장흥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박은자씨 제공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