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당근의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기준이 품목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제주 농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당근은 원체 발아가 까다롭고 민감한 작물이지만 일단 발아한 뒤엔 재해에 강한 편이라 파종 직후부터 발아까지의 위험 보장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보험 가입 기준이 ‘파종 직후부터’에서 ‘파종 후 출현율 50% 이상’으로 바뀌면서 보험의 보장성이 사실상 없는 셈이 돼버려서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는 품목별 형평성을 고려해 그간 출현율과 관계없이 파종 직후부터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당근을 포함해 밭작물 13개 품목의 가입 기준을 바꿨다. 아울러 앞으로 출현율을 80% 이상으로 상향하는 계획까지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본격적인 당근 파종기를 맞아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의장 김만호, 제주도연맹) 구좌읍농민회가 25일 성명을 내어 △당근 재해보험의 가입 기준 원상복구(파종 직후 가입) △기후재해 반영한 보장 기준 현실화 △출현율 80% 상향 시도 즉각 증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구좌읍농민회는 성명에서 “파종 직후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거나, 싹이 나오더라도 무더위가 겹치면 새싹이 그대로 말라 죽는다. 이는 농민의 과실이 아닌 명백한 기후재해다”라며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장하라고 만든 보험이 현실은 외면한 채 농민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작년 가뭄과 폭염 속에서도 많은 농가가 파종했지만, 출현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보험 가입조차 못한 농가들이 생겨났다”라며 “기후와 싸우는 것도 벅찬데, 보험제도까지 농민을 짓누르는 현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고 규탄했다.
지난해엔 심한 가뭄으로 2~3번이나 재파종한 농가들이 많았는데, 가입 기준이 바뀌지 않았다면 경작불능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겠지만, 가입 기준이 변경되면서 대부분 농가가 재파종 보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근농가들은 “발아됐으면 굳이 왜 보험에 가입하나. 이후엔 피해도 별로 없는데”라는 반응이다.
당근은 비 소식이 있어야 파종할 수 있어 현재 구좌읍 당근농가들은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직 파종에 나서지 못한 상태다. 전국적 폭우 직후 극한 폭염이 다시 시작돼 섣불리 파종하기도 더 어려운 상황이다.
현승용 구좌읍농민회 사무국장은 “비 예보가 있대도 불볕더위다 보니 비가 살짝만 내리고 말면 발아하더라도 오히려 죽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파종 시점을 잡는 게 항상 쉽지 않다”라며 “파종한대도 비가 오지 않으면 2~3주까지도 발아하지 않아 당근농가들은 재파·삼파(2~3번 재파종)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파종 직후에서 발아까지 기간을 보장하지 않는 건 현장 상황에 전혀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즉 변경된 가입 기준으로는 감자, 무, 콩처럼 파종 직후 적은 수분만으로도 발아가 가능한 작물과는 다른 당근의 생육 특성과 가뭄과 폭염이 더 심화하는 상황을 보장할 수 없어 재해보험의 본래 목적마저 훼손했다는 취지다.
보험 가입 기준을 파종 직후부터로 회복함과 동시에 보상 기준도 개선해야 한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현 사무국장은 “발아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를 신고하면 경작불능으로 피해율이 60%다. 그런데 일정 정도 키우다 태풍 피해를 봐도 경작불능이다. 생산비는 이미 더 투입됐는데도 보상은 똑같은 거다”라며 “발아하지 못한 때와 발아된 이후의 피해율(보상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게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출현율 80% 상향 계획도 문제다. 구좌읍 당근농가들이 주로 쓰는 당근 품종 ‘드림7’의 공식 발아율은 75%다. 그럼에도 보험 가입 기준을 80%로 일괄 상향하는 것은 당근농가들이 보험 가입을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게 농민들의 지적이다. 현 사무국장은 “종자회사에서 75%를 보장한다는데, 그럼 80%를 농민들이 만들어 내라는 꼴이냐”라고 되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