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농업결산] 양곡관리법 거부에서 시작된 농민들의 ‘대통령 거부’ 선언

기후재해에 공안탄압까지 덮쳐 터져 나온 ‘윤석열정권 퇴진’ 요구

농민 생존권·지속 가능 농업 위해 필수농자재지원조례 제정 나서

  • 입력 2023.12.24 18:00
  • 수정 2023.12.27 17:03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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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 8월 23일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주최로 열린 ‘농업말살 농민말살 윤석열정권 퇴진! 2023 전국여성농민대회’에 모인 1,000여명의 여성농민들이 하얀 상복을 입고 농업·농민 말살 정책을 펴는 윤석열정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월 23일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주최로 열린 ‘농업말살 농민말살 윤석열정권 퇴진! 2023 전국여성농민대회’에 모인 1,000여명의 여성농민들이 하얀 상복을 입고 농업·농민 말살 정책을 펴는 윤석열정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양곡관리법 개정 반대를 분명히 밝히면서 농민들은 올해를 대통령 규탄으로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합동 업무보고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 주는 식”, “무제한 수매”라며 ‘농민과 농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주요 농민단체들은 ‘대통령의 농정 무지’, ‘주식인 쌀에 대한 국가 책임을 저버린 대통령’이라고 규탄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여야 대치 속에서 결국 애초 법안보다 정부의 쌀 의무 매입 조건이 대폭 완화된 채 겨우 국회 문턱을 넘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고된 가운데 전국 쌀 농가들은 ‘결사투쟁’을 선언했지만 끝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거부권 1호 법안’이 됐다. 이후 농민들은 정부가 발표한 후속 대책인 ‘쌀값 20만원 보장’을 규탄하며 ‘대통령 거부’를 선언했다.

농민들이 ‘누더기’라 부른 양곡관리법 개정안조차 좌초되자,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점으로 농민운동 진영에선 ‘윤석열정권 퇴진’ 목소리가 전면에 등장했다. 농민뿐 아니라 각계에서도 윤석열정권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 73개에 이르는 노동자·농민·시민사회단체가 지난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정부 1년에 ‘민주주의·경제·외교·한반도평화·노동존중·친환경·서민정책·식량주권·성평등·언론자유’ 부문에서 “낙제”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봄부터 가을까지 냉해·우박·폭염·폭우가 이어져 농민들은 한시름 놓을 날이 없었다. 특히 여름 폭우로 전북의 논콩, 충남의 시설작물 피해가 극심했고 이는 농업재해 보상 요구로 이어졌다. 정부가 권장한 논콩의 최대 재배지인 전라북도에 덮친 수해로 논콩 재배 농가의 피해가 커지자, 쌀 문제 등 농정 전반과 재해보상 정책에 대한 현장 농민의 비판도 거세졌다. 지난달 28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도별·품목별 전략작물직불제 참여 실적’에 따르면, 2023년 전국에서 논콩은 모두 1만8,631ha가 재배됐고 그 가운데 전북도의 재배 규모는 58%인 1만853ha에 이른다. 지난 8월 기준 전북도에 따른 논콩 침수피해 규모는 9,935ha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피해 지원 기준 대폭 상향, 실질적 회복 지원’을 공언하며, ‘직접 지원을 통한 복구’, ‘신속하고 충분한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피해 규모 파악 및 지원금 산정 등 행정 절차가 길어지면서 일부 지역에선 지원금 집행이 수해 100일이 넘도록 지체돼 재난지원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됐다. 아울러 실제 피해 규모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재해보험제도의 피해 산정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도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물가관리를 농산물 수입으로 일관해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농민들은 소비자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정부가 지속해서 진행한 저율관세할당(TRQ) 등을 통한 주요 농산물 수입으로 국산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농산물 가격으론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농민들의 토로는 실제로 2022년 농업소득 948만5,000원(지난 5월 발표된 통계청 ‘2022년 농가경제조사’)이란 지표로 드러났다. 농업소득만으론 농가 살림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은 전체 농가의 73.5%에 달하는 소농(경지규모 1ha 미만)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다. 이에 각종 농민 집회에선 “농민들 피눈물로 밥상 차린다”는 절규와 함께 윤석열정권을 향한 “농업포기, 농민말살”이란 규탄이 이어졌다.

농민 생존권 투쟁 활동을 해온 농민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하고 간첩 혐의로 구속·재판하는 등 지난해 말부터 지난 11월까지 1년간 공안탄압까지 덮쳐 올해 농민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이 역시 대통령을 향한 규탄이 정권 퇴진 요구로 이어진 원인이 됐다.

농민들은 올 한 해 ‘농민 생존권 사수’와 ‘공안탄압 규탄’을 외치는 한편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장치로 필수농자재지원조례 제정 운동에도 나섰다. 경북·전북·전남·충북·충남에서 의원 발의나 주민조례청구를 통해 조례 제정이 진행되고 있다. 기초단체로는 지난 10월 충남 공주시, 광역단체로는 지난 12월 전북도에서 가장 처음 조례가 제정되면서 농민들의 짐을 덜어내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향한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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