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못참겠다’ 전국서 농작물재해보험 개선 요구 빗발

강원 시설재배 농민, 정확한 보상 기준에도 생산자 과실 잡으려 ‘안간힘’ 쓰는 현실 비난

전남 영암 대봉감 농가 “제도 도입 후 16년간 요구했던 품목 특성 반영하라” 재차 촉구

전북 익산선 제도 지적하며 곤포 사일리지 반년 넘게 적재, 개선 방안 토론회 열리기도

  • 입력 2021.08.29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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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민 이재환씨가 폭염 피해로 두 달 넘게 기른 작물을 갈아엎고 어렵사리 재정식한 방울토마토 모종을 살펴보고 있다.
농민 이재환씨가 폭염 피해로 두 달 넘게 기른 작물을 갈아엎고 어렵사리 재정식한 방울토마토 모종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 처음 한반도에 상륙한 제12호 태풍 ‘오마이스’가 그 기세를 채 떨쳐버리기도 전 강원에서 전남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품목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농작물재해보험 개선을 촉구하며 나섰다.

 

보상 기준·피해 원인 명확, “농민 탓하지 마라”

지난달 보름 넘게 33℃ 이상의 폭염이 지속된 강원도 춘천시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농민 이재환(66)씨는 하우스 38동 중 26동을 갈아엎었다. 나머지 12동 또한 수확량이 평년의 20~30%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 24일 만난 이씨는 “올해 특히 폭염 피해가 심각하다. 피해 없는 농가 찾기가 힘들 정도다”라며 “보통 6월 10일경 파종하면 120일 이후부터 수확에 들어가는데 폭염 때문에 정상적인 생육이 이뤄지질 않았다. 생식생장 대신 영양생장만 잔뜩 하는 바람에 도장지가 웃자라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착과 자체가 이뤄지질 않았다”고 호소했다.

원예시설 농작물재해보험 약관에는 △기상청이 발령하는 기상특보 발령지역의 기상특보 관련 재해로 인해 작물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 △농업용 시설물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자연재해로서 작물피해율이 70% 이상 발생해 농업용 시설물 내 전체 작물의 재배를 포기하는 경우 손해를 보상한다고 적혀 있다.

이씨는 “기상청에서 경보를 발령한다는 건 작물에 장해가 발생한다는 의미와 같다. 그래서 보험 약관에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이 담긴 거다”라면서 “얼마 전 손해평가사들이 다녀갔는데, 멀뚱히 큰 키를 보고 피해가 심하지 않다는 말을 하더니 아주 속속들이 특수부대원들마냥 사진을 찍으며 생산자 과실을 잡으려고 안달이 난 모양새였다. 한 사람은 대놓고 ‘피해 그대로 다 잡아도 중앙에서 피해율 너무 높다고 캔슬을 놔버리면 또 나와서 봐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NH농협손해보험(대표이사 최창수, NH손보) 측은 “시설 내부 작물을 표본조사해 피해가 70% 이상일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 시설 자체적인 하자나 관리 부실로 피해가 확대됐을 경우 해당분에 대해선 보험금을 차감하고 있다”라며 “피해율이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피해를 낮출 것을 평가사에게 강요하는 행위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그러한 내용의 가이드라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한편 이씨는 갈아엎은 시설하우스 내 작물을 8월 초 다시 정식한 상태다. 시설하우스에 보온덮개며 가온시설을 설치해 겨울에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씨는 “보온·가온설비를 갖추지 않은 경우 정식을 다시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시기가 이미 꽤 지난 탓에 모종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라면서 “시설원예 품목 농작물재해보험은 1년을 기한으로 계약하는데 이렇게 재해로 작물을 계속 재배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1년짜리 보험에 가입한 의미도 사실 없는 거다. 재배하는 기간에만 보험 가입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보험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 25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에 이어 서울 여의도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을 찾은 영암군 금정면 떫은감 재배 농민들과 최병순 금정농협 조합장이 농업정책보험금융원 관계자 및 NH농협손해보험 담당자들과 면담하고 있다.
지난 25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에 이어 서울 여의도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을 찾은 영암군 금정면 떫은감 재배 농민들과 최병순 금정농협 조합장이 농업정책보험금융원 관계자 및 NH농협손해보험 담당자들과 면담하고 있다.

 

대표이사 다녀가면 뭐하나, “차라리 보험 없애자”

대봉감(떫은감) 재배면적이 전국서 가장 많은 전남 영암군 금정면에서는 농민 대표 8명과 최병순 금정농협 조합장이 지난 25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와 여의도 농업정책보험금융원(원장 민연태, 농금원)을 찾아 각 기관 관계자 및 NH손보 농업보험개발팀 담당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최병순 조합장은 “1910년경 떫은감이 전남 영암군 금정면에 처음 식재된 이래 지난해 봄동상해는 역대급 피해를 야기했다. 금정농협에서 매년 1,200톤의 떫은감을 취급하는데 지난해 물량이 98톤에 불과할 정도였다”라며 “국회의원은 물론 NH농협손해보험 최창수 대표이사까지 현장에 와 피해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험 개선에 대한 약속까지 하고 갔는데, 1년이 지나도록 건의했던 내용에 대한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금정대봉감작목회와 영암군농민회 금정면지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금정면협의회 등 3개 단체가 꾸린 금정면대봉감대책위원회는 지난 한 달 동안 금정면에서 떫은감을 재배하는 농민 930명에게 일일이 서명을 받아 마련한 농작물재해보험 개선 요구안을 농식품부와 농금원, NH손보에 전달했다. 금정면 떫은감 재배 농민들은 △봄동상해 피해 인정률 50%→80% 원상회복 △낙엽피해율 산정시 경과일수 항목 폐지 △극심한 재해 발생 시 이듬해 가입수확량 감소 방지 장치 마련 △시장 현실 반영한 표준가격 산정 △도입 이후 20년 가까이 유지 중인 평균 과중 270g→320g 현실화 △떫은감 포전 내 단감 일부 혼식으로 인한 미보상 적용 금지 등을 촉구했다. 농민들에 따르면 떫은감은 일반 단감과 다르게 낙엽 발생 시 경과일수와 관계 없이 전량 낙과가 이뤄지기 때문에 경과일수를 따지는 의미가 없다. 또 떫은감을 재배 중인 포전에 단감나무가 몇 그루 혼재돼 있어도 떫은감 식재 주수만을 계산해 보험에 가입하는 데다 단감나무가 재해 발생 시 떫은감 피해를 가중시키는 등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혼식을 미보상 적용의 빌미로 삼아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지난 25일 농민들은 농금원 관계자와 NH손보 담당자에게 “저 서명지를 일반 종이떼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농민들의 목숨줄이고 지역의 확고한 민심이 담긴 거다”라며 “농민들이 ‘보험농사’ 짓겠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명백히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달라는 거다. 우리도 보험 혜택 안 보고 봄동상해 방지하기 위해 ha당 3,500만원 이상씩 하는 열상팬도 설치하고 할 노릇 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철 금정면대봉감대책위 총무는 “면 단위에서 한 작목을 650ha나 재배하는 건 지역 생계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최창수 대표이사님은 지난번 현장에까지 찾아와 농가에서 하는 얘기 실컷 들으시고 ‘알겠다’, ‘살펴보겠다’ 대답 아주 잘 하시더니 차 문 닫히는 순간 기억을 다 잃어버렸는지 영 감감무소식이다”라면서 “지난해에도 지금 이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보험 운영할 거면 차라리 없애버리고 보험에 들이는 국고며 지자체 지원, 농민 자부담 전부 한데 모아 농가한테 직불금으로 주자 얘기했는데, 그때 농금원 관계자가 ‘그렇게 하면 우리 직원들 몇 명 전부 다 옷 벗어야 한다’는 답변이나 내놓았다. NH손보랑 농금원 직원 밥 먹여 살리려고 우리가 보험 가입하고, 당당히 보험료 내고도 무슨 죄인처럼 보험금 받겠다고 매년 이 난리를 쳐야 되겠냐”고 호통쳤다.

이에 농금원 관계자와 NH손보 담당자는 “봄동상해의 경우 손해가 너무 커서 민영보험사에서 재보험 가입도 꺼릴 지경이다. 보장률의 경우 지난해 70%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개선했고 낙엽피해 경과일수의 경우 그간 떫은감의 생리적 특성을 뒷받침할 만한 공식자료가 없어 반영을 못했지만 산림청 연구용역 결과를 인용해 조정해볼 예정이다”라며 “시장 현실을 반영한 표준가격 산정과 떫은감 과중 변경 등은 심도 있게 검토해보고 결과를 전달드리도록 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전했다.

익산시농민회는 농작물재해보험 개선을 촉구하며 8개월 가까이 농협중앙회 익산시지부 앞에 곤포 사일리지 16개를 쌓아뒀다. 이를 계기로 지난 25일 전북 익산시 용안면 일원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 개선을 위한 현장 토론회가 열렸다. 익산시농민회 제공
익산시농민회는 농작물재해보험 개선을 촉구하며 8개월 가까이 농협중앙회 익산시지부 앞에 곤포 사일리지 16개를 쌓아뒀다. 이를 계기로 지난 25일 전북 익산시 용안면 일원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 개선을 위한 현장 토론회가 열렸다. 익산시농민회 제공

 

농협 앞 곤포 사일리지 16개, 개선 방안 마련 물꼬 열어

전남 영암군 금정면 대봉감 재배 농민들이 상경길에 오른 날 전북 익산시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 개선을 위한 현장 토론회가 열렸다. 과도한 할증과 보험요율, 사업 시행자 편의만을 위한 제도 개악 등을 비판하며 익산시농민회가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6월까지 약 8개월간 농협중앙회 익산시지부 앞에 곤포 사일리지 16개를 쌓아둔 데 따른 것이다. 농협 익산시지부 측이 협조한 덕에 NH손보 담당자 또한 이날 토론회 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회 주제발표에 나선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팀장은 “농작물재해보험은 민간보험사가 가질 수 있는 다양성 등의 장점을 살리지도 못하고 정책보험이라는 기능에도 충분히 부합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업재해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정부, 지자체의 책임성을 확대하고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농업재해 대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NH손보 담당자는 다발생하는 재해로 인한 적자 손실, 민영재보험사의 참여 저조로 인한 위험 분산 어려움, 2017년 이후부터 발생한 약 1,909억원의 정부 미지급금 등을 토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시설원예작물 재배 농민은 “태풍 등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100m짜리 하우스 비닐을 통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험은 찢어진 부위가 10m면 딱 10m에 대한 것만 보상을 해준다”라며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춘식 익산시농민회 사무국장은 “보험에 가입하고도 지난해 호우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농가가 관내에 많다”라면서 “보험료는 거의 매년 인상되고 재해로 인한 피해는 내 잘못도 아닌데 자부담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로 보험금을 감액하는 등 불합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양 사무국장은 덧붙여 “토론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나 농작물재해보험을 바꾸기 위해 이왕 활동을 시작한 만큼 실제 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활동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농작물재해보험의 횡포를 ‘더이상 못참겠다’며 전국 농민들이 개선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만큼 향후 NH손보와 농금원, 농식품부가 내놓을 답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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