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작물재해보험 자부담율 20%가 농민에게 주는 의미

조경희 전북 김제시농민회장

  • 입력 2021.10.10 18:00
  • 수정 2021.10.13 18:32
  • 기자명 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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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
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

수확을 앞둔 농민들의 마음에 먹구름이 한가득 드리워 있습니다. 여름까지만 해도 풍년을 기대했던 농작물들이 가을장마에 병해충 피해가 번져 한순간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처럼 서둘러 몇 차례 방제를 했어도 피해는 더 커질 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노랗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으니 행정당국에 신고하여 조사도 요구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 시청은 물론 도청과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까지 찾아와 확인하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현장을 방문하여 농민들을 만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언론사는 언론사대로 텔레비전 뉴스와 지면을 통해 보도합니다.

그러나 이미 수확이 시작된 현재까지 농민들의 피해 신고를 받는 것 외에 확인된 대책은 없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나마 농작물재해보험을 들어 놓았으니 농협에 피해를 신고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진짜 농민들의 분통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농협 담당자에게 피해를 신고하면 손해사정인이 와서 그냥 눈으로 봐도 확연한 피해임에도 임의대로 벼 몇 포기를 채취하고 무게를 측정한 뒤 피해율을 산정합니다. 그렇게 산정한 피해율이 끝이 아닙니다. ‘자부담율 20%’라는 이름으로 보상에서 제외합니다.

농민이 자연재해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자부담율이라니 도대체 무슨 근거냐 따져 물으면 자동차나 건축물의 보험도 모두 자부담이 있으니 형평에 맞게 농작물재해보험도 자부담이 있어야 한답니다. 또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세상에 게으른 농부는 있어도 도덕적 해이로 일부러 농사를 망치는 농민은 들어본 일이 없는데 마치 농민을 소위 ‘가짜환자’처럼 보험을 악용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농작물재해보험을 설계한 처음부터 농민을 잠재적 보험사기꾼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어이없고 억울하더라도 그건 그렇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보험’이라는 ‘공통점’만 들어 자동차나 건축물 같은 여타의 보험과 형평을 맞춰야 한다는 해명에 대해선, 그렇다면 그 보험들과의 ‘차이점’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나 건축물을 대상으로 가입한 보험은 이미 가치가 명확하게 드러난 재산상의 손실을 보상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농작물재해보험은 한 해 농사의 결과물, 즉 영업이익의 손실에 대한 보상입니다. 뿐만아니라 다른 보험은 사고의 원인이 대부분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책임을 가릴 수 있지만 농작물 재해는 대부분 천재지변이어서 농민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애당초 성격이 다른 것을 단지 보험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형평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보상에서 제외되는 농작물 재해보험 자부담율 20%가 농민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농업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나머지가 영업이익이며,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영업이익의 비율이 곧 영업이익율입니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일반적으로 농민들의 평균 영업이익율은 20% 수준입니다. 즉 농작물재해보험의 자부담율 20%는 사실상 농민이 한 해 동안 땀 흘려 일해 얻는 영업이익율과 동일합니다.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했어도 단지 적자만 면하게 할 뿐 처음부터 ‘이익’은 포기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농작물 재해보험의 자부담율 20%가 정당하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은 포기하고 단지 적자만 면하게 해주는 보험의 설계가 정말로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들이 보상에서 제외하는 자부담율 20%가 한 해 동안 땀 흘려 일한 농민이 얻는 대가의 전부이자 농민이 농사를 짓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이 잘못된 농작물 재해보험을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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