떫은감 주산지 영암 농민들, 일소피해 보장 ‘회피’하는 보험·약관 규탄

피해 규모 6% 초과 시만 피해로 인정하는 단서조항 존재
일소 이후 수일 만에 낙과하는 생리특성 고려 안 해 논란

  • 입력 2023.09.14 19:00
  • 수정 2023.09.17 18:51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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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전남 영암군에서 일소 피해를 입은 떫은감이 땅에 떨어져 있다. 영암군농민회 제공
전남 영암군에서 일소 피해를 입은 떫은감이 땅에 떨어져 있다. 영암군농민회 제공

 

떫은감 주산지인 전라남도 영암군의 농민들이 다시 한번 농작물재해보험 약관 개정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해 유난히 다난했던 이상기후로 이미 착과량이 평년대비 50%가량 크게 줄어든 가운데, 최근에는 일소피해마저 발생했는데 보험의 불합리한 약관과 단서조항으로 보상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서다.

영암군 농민들에 따르면 올해 일소피해로 인한 피해 규모는 전체의 약 20% 이상이다. 봄동상해와 여름 폭우·폭염으로 발생한 피해 50%까지 더하면 평년대비 수확량은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철 영암군농민회장은 “일소피해는 고온으로 인해 과실이 나무에서 빨갛게 익어버린 현상을 말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최근 영암지역에서도 고온이 지속돼 단감을 비롯해 떫은감에서 일소피해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손해사정인이 현장에 나와 상태를 보고도 피해로 인정을 할 수 없다며 보험 보상이 불가하단 얘기를 하고 있다”며 “단감의 경우 일소피해를 인정하고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매년 그랬듯이 떫은감은 보험사에서 약관 핑계를 대며 피해를 보상해주지 않으려 한다. 농민들은 그간 떫은감의 생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실상 일소피해 보상을 못 받게 막아둔 보험약관 단서조항 삭제를 숱하게 요구해왔는데, 지난 2021년 약관 개정에 해당 부분이 반영되지 않은 탓에 올해도 농가가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못 받게 됐다”고 탄식했다.

영암군에서 떫은감 농사를 짓는 농민 A씨 역시 “지역 내에서 단감은 지금 일소피해율이 30% 넘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떫은감 피해율은 2% 남짓밖에 안 된다”라며 “떫은감은 일소피해를 받은 뒤 햇빛에 노출되면 낙과하는 특성이 있다. 농민들이 약관 개선해달라 지속적으로 건의했던 것도 이 부분이다. 피해가 발생하면 바로 떨어져 버리고, 썩어버리니까 피해 신고하고 손해사정인들이 오는 동안 사라져 피해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민 A씨는 “농민들은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연락을 해서 조사 나와달라 얘기를 하는데, 손해사정인의 수가 한정돼 있다 보니 피해 접수 후 조사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이미 피해 과실이 다 땅에 떨어져 더운 날씨에 물러버린 상태니 손해사정인들이 나와 살펴봐야 단감과 다르게 떫은감 일소 피해율은 2~3%밖에 안 나오는 거고, 약관에선 착과수의 6% 이상일 때만 보상을 해준다고 하니 매년 보험과 특약에 가입은 해도 일소피해로 보험금을 받을 수가 없는 거다”라면서 “떫은감 재배하는 사람 중 일소피해로 보험금 탄 사람이 100명 중 한 명이나 있을까 싶다. 국가 예산도 들어가고 지자체 예산도 들어가고 농민들 자부담도 들어가는데, 보험이 재해로 인한 농업피해를 제대로 보상하지도 못할 거면 왜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보험사 주머니 불려주려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떫은감은 농작물재해보험의 과수 4종(사과·배·단감·떫은감)에 해당된다. 농작물재해보험 과수 4종 약관에 따르면 일소피해는 ‘폭염으로 인해 보험 목적에 일소가 발생해 생긴 피해’를 말하는데, 이때의 폭염은 기상청에서 폭염특보(폭염주의보·폭염경보)를 발령한 때 과수원에서 가장 가까운 3개소 기상관측장비가 측정한 낮 최고 기온이 연속 2일 이상 33℃ 이상으로 관측된 경우를 말한다. 아울러 떫은감의 경우 일소피해로 인한 감수과실수를 보험사고 한 건당 적과 후 착과수의 6%를 초과하는 경우만 감수과실수로 인정하기 때문에 일소피해로 인한 ‘누적’ 감수과실수가 적과 후 착과수의 6%를 크게 상회한다 해도, 1회 사고 접수 시 감수과실수가 적과 후 착과수의 6%를 넘지 않는다면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농민들은 “과수원 인접 3개소 기상관측장비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단감이나 다른 과수 4종과 달리 일소피해 이후 낙과하는 떫은감의 생리적 특성을 반영해 약관을 개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편 NH농협손해보험은 지난 2021년에도 떫은감 재배 농민들의 약관 개선 요구를 일부 떠안아 불합리한 단서조항들을 개선한 바 있다. 당시 농민들은 △가입수확량 산출방법 변경 △낙엽피해율 산정 시 경과일수 항목 삭제 △봄동상해 인정률 50→80% 원상복구 △떫은감 일소 피해율 6% 단서 기준 삭제 △표준가격 및 평균과중 변경 등을 요구했으나, NH손보는 농민들의 요구 중 낙엽피해율에 따른 인정피해율만을 개선했다. 아울러 최근 현장을 방문한 NH손보 측은 농민들이 요구한 일소 피해율 6% 단서조항 삭제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뒤, △적과 전 사고 70% 보장 선택 기준 확대 △평년착과수 계산 방식 개선 등의 요구를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남긴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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