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고 살다보면 다른 어떤 직업군보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가 쉽습니다. 돌아서면 풀이 돋아나고 돌아서면 풀이 자라나서 농민들의 손을 붙잡을라치면 시간이 빛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그런데 또 어떤 것은 변하고 있는데도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습니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와 조금 동떨어진 듯 느껴지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그렇지요. 일련의 변화가 생겨나도 그 변화의 방향이 정주행인지 역주행인지 가늠하는 것조차 유보하고는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최근엔 무엇일까요? 네,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일치 판결입니다
농민운동에 꿈을 품고 농부의 딸이면서도 농사도 모르는 제가, 먼저 내려와 농사지으며 농민운동하는 남편이 있는 이곳 구례에 온 날! 1991년 5월 30일을 기억합니다. 몰랐으니 용감했겠지요. 지금은 어엿하게 큰 딸 셋을 둔 엄마가 되었답니다.30여년이 다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농사짓는 데는 서투름 투성입니다. 다들 씨앗을 심은 후에야 그것을 깨닫곤 늦게 심기 일쑤입니다. 감나무 이파리가 엄지손톱만 해질 땐 호박씨를 넣어야 한다는 옆집 할머니의 말씀에 ‘아~ 이것이구나’ 했습니다.농사는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야
27년째 농사를 하고 있다. 해마다 배우면서 농사를 해도 항상 다음해에 새로운 방법을 농사에 적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변하는 농업은 한 해 한 해 배워가지 않으면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이제는 일할 사람도 없고 농사를 더 짓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27년 동안 일에 지쳐 있을 때 소리 없이 나에게 갱년기가 찾아왔다. 하루에도 더웠다 추웠다를 수도 없이 반복을 했다. 밤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침대 옆에 한쪽에는 선풍기를 한쪽에는 솜이불 두 개를 놓았다. 밤새 양쪽을 오가다 보면 밤을 지새우기
제아무리 철이 늦게 들더라도 꽃 안 피는 2월(음력) 없고 보리 안 피는 3월이 없다더니, 철이 이른 요즘의 남녘은 벌써 꽃들이 만개했습니다. 매화, 산수유를 넘어 진달래, 개나리, 수선화, 벚꽃 등이 피는 것으로 보아 이제 중봄으로 넘어가나 봅니다.꽃 중의 제일은 사람꽃이겠지요. 일전에 드디어 우리 지역에도 여성농민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제일 값진 꽃이 피어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피어날지, 또 이름값을 할 수 있을 지는 시간이 조금 흘러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기대됩니다.다들 아시겠지만 단체를 새로이 만드는 일 중 제일 어려운
코피가 터졌다. 오랜만이다.20여년 꽃 농사를 지었다. 이유인즉슨 쉬워 보여서란다. 결혼 후 자연스레 꽃밭에서 꽃을 따며 보냈었다. 안개, 후리지아, 카네이션, 국화, 칼라 그리고 이어진 양액재배 장미에 수국까지 청춘을 꽃과 함께 지냈던 듯하다.어떻게 살 것인가? 수없이 많은 고민 속에 과감히 양액베드를 걷어내고 친환경 먹을거리 농사를 시작한 게 어언 10년이 되어간다. 지속가능함의 시작이 ‘환금’으로부터 가능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10여년을 이어온 친환경 인증이 작년 말 비산을 증명하지 못해 취소되었다. 학교급식에 생협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기막힌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본 여성에게 일명 물뽕(?)이라는 환각제를 먹여 강제로 성폭력했다는 뉴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얻은 연예인들이 연루된 사건이다 보니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알려진 바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하룻밤의 유흥비로 쓰는 돈도 기가 막히는 액수요, 그들의 쾌락을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한 환각놀음도 하루하루를 힘겨운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로 들립니다.이 역겹고 추악한 현실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
며칠째 해가 뜨는지 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온 세상이 희뿌옇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날들은 없었다. 볕이 드는 돌담 밑에서 빨간 벽돌가루를 고춧가루인양 소꿉놀이 하던 날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그 아지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노란 개나리보다 더 노랗던 3월 봄빛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친구 손잡고 소풍가다가 올려다봤던 우물처럼 깊었던 그 하늘은 어디로 갔을까?가능하면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미세먼지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비닐 밑에서 쳐들고 올라오는 풀이 한시가 급해서 양파 밭에 앉아 ‘실외활동’을 하자니 누구한테 인지도 모르는 부아가
씨감자 주문하신 분들 마을회관에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마을방송이 새벽을 열고 있다. 올해는 씨감자 채종지인 강원지역이 태풍 피해로 수확이 늦어진데다 작황도 좋지 않아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한다. 차를 몰고 회관에 가니 부지런한 울엄니들 벌써 나와 계신다.“20키로 신청했는데 10키로만 주면 어쩌라고.” 예상은 했지만 씨감자를 더 가져가려는 아니 신청한 만큼이라도 줘야지 하며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장님은 단호하게 신청 물량의 절반씩만 드릴 수 있다 한다.“올해부터는 농사를 절대 짓지 않을 거야” 하셨던 하대댁 할머니를 비롯해
2, 3년 전부터 우리 면의 이웃, 강천면에 폐기물 고형연료 열병합발전소를 세운다는 계획이 돌았습니다. 강천면민들을 중심으로 “쓰레기 발전소 허가를 취소하라”며 산업통산자원부, 경기도청, 여주시청 앞 등에서 집회와 시위를 하였고 지난해 12월 31일 여주시장이 강천면 열병합발전소 허가 취소를 공식 선언하면서 일이 마무리되는 듯 했습니다.그러나 선언 이후, 건축허가 취소 후 취해야 하는 이행조치는 없었고 열병합발전소를 추진하는 사업체에서는 경기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고 합니다.우리 마을에도 커다란 비상이 걸렸습니다. 우리 마을 이장이
성질 급한 홍매는 벌써 꽃망울을 터뜨린 지 한참이나 됐고, 다른 꽃나무들도 여차하면 꽃눈을 터뜨릴 기세를 하고서는 낮 기온과 밤 온도를 재고 있습니다.낮 기온이 13도로 올라가면 겨울잠을 자던 사랑스런 마늘의 생육이 다시 시작됩니다. 이때가 되면 온 들판에 농민들이 추비를 하거나 영양제를 주느라 바쁩니다. 우리집도 이때를 기다려 고등어 액비를 희석해서 살포합니다.대관절 고등어 액비란 무엇이던가? 작물들에게 흡수가 잘 되는 친환경 액비로서 다량의 아미노산 성분이 포함된 최고급영양제입니다. 이를 만들려면 장날마다 고등어 몇 마리를 사면
촛불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정말 달라졌을까? 전 세계를 휩쓴 여성들의 ‘미투(Me Too)’ 운동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정말 달라졌을까? 나날이 언론을 장식하는 헤드라인 뉴스는 앞으로 가야할 길이 또 다시 첩첩산중임을 알려주는 것 같아 답답하다.지명은 쓰고 싶지 않다. 부끄럽다. 그런 군 의원과 그런 농협 임직원들을 뽑은 지역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이런 곳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움을 넘어 무기력감을 느낀다.외국까
오랜만에 들른 경로당이 썰렁하다. 지난 가을 이후 일곱분이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그 중 한분이 엊그제 돌아가셨다. 흔한 화투짝도 펼쳐져 있지 않다. 누가 보는건지 마는건지 TV소리만 요란하다.때가 됐음에도 ‘밥 먹자’ 소리를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 개중에 젊은 분이 끼니를 도맡다시피 했었는데 엊그제 아들집에 가셨다 한다. “오늘 점심은 그냥 라면으로 때웁시다.” 누군가 이야기 하신다. 괜히 멋쩍은 건 나다. “그럼 편히들 쉬세요.”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양지쪽 논두렁에 누군가 앉아있다. 가까이 가보니 냉이를 캐고 계
복대2리 마을회관에서 ‘꿍짝꿍짝’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벌써 시작을 했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사님과 참석자들이 활짝 핀 얼굴로 주고받는 노랫말에 힘이 납니다.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김장을 담그고 나면 마을회관에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모이셨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 아침드라마를 다 보시고 점심을 준비합니다.점심을 먹고 나면 몇 분은 쪽잠을 주무시기도 하지만 대여섯 분이 모여 방구석에 있는 닳고 닳은 담요를 방 가운데로 옮기고 화투를 잡으십니다.혹시나 했던 시작은 역시나로 진
아랫녘 끝자락의 들판은 한겨울에도 푸르릅니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시금치나 마늘 등 월동작물이 한여름의 빛깔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나는 남해의 이 겨울이 따뜻해서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단 한 철의 휴식도 안 줘서 싫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노루꼬리만큼 짧은 겨울 해를 안고서 시금치를 캐는 농민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기만 합니다.올해는 어쩐지 시금치 가격이 없습니다. 파종기에 넉넉히 내린 비와 초겨울의 온화한 날씨 때문에 발아율과 초기생장이 좋았던 탓일 것이고, 시금치 발아 후 연이은 폭우가 없었던 탓에 월동작물의 주적 노균병 피
글을 쓴다는 건 이런 것인가 보다. 한 해가 다 가도, 새해가 밝아도 그게 그것이고 그 날이 그 날이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글을 쓴다고 앉아 있으니 지난 한 해가 돌아봐진다. 작년은 내게 어떤 한 해였을까?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친구이다. 집이 가깝다보니 만나는 것이 부담 없어 자주 만날 거리를 만든다.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러서 같이 하기도 하고, 혼자 하기에 지루한 일이 있어도 같이 하고는 했다.요즘처럼 밤이 긴 날에는 노트북으로 영화도 같이 보고 술도 같이 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준비하는 요즈음 마을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총회가 열린다. 마을 이장을 새로 뽑기도 하고, 마을기금의 대부분이 마을 어르신들의 조의금으로 쓰여 졌음을 보고한다. 마을이 초고령화 됐음을 알 수 있다.마을총회는 대부분 마을의 대동계를 겸하고 있다. 두레, 품앗이라는 이름이 아주 오랜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그래도 우리 마을엔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 어릴 적만 해도 두레와 품앗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내 세대가 농촌공동체를 목격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마을총회는 어느새 삼천포로 빠져
아들과 딸, 겨울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여러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 사는 친구와 집을 보러 가곤 했던 아들. 농민대회 참가를 위해 서울로 가려는데 아들도 서울에 집 보러 간다해서 같이 올라왔고 민중대회 끝나고 아들을 만났더니 방 두 개의 집을 계약했다고 합니다.여러 번 허탕을 치다 구한 집이라며 아들과 아들친구는 집의 이 곳 저 곳 사진을 보여주며 좋아했습니다. 아들과 그 친구가 구한 집은 보증금 300에 월세 35만원. 노부부가 일층에 살고 이층을 월세로 놓았는데 집주인들의 인상도 좋아 별 문제 없이
서 푼어치도 못 되는 말재주와 일천한 경험을 갖고서도 아주 가끔 사람들 앞에 나설 때가 있습니다.대부분 여성농민들 앞입니다. 농업현실을 이야기 하고 또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훌륭한지를 말하다 마지막에 희망 비슷한 바람을 살짝 말하고는 마무리를 하는데, 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수십 년 간 비슷한 일을 해온 사람들의 깊은 통찰력에서 나온 혜안과 숱한 생활의 어려움을 감당해온 사람들의 내공을 느낄 때면 부끄러울 수밖에요.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경험이 진실로 사람들 앞에 설 만큼 무르익었나? 또는 여성농민들이 진정으로
1. 농촌에 흔한 그녀 이야기농사짓기 시작한 지는 20년 정도 되었다. 대구에서 장사하다가 형편이 어려워져서 시부모님들이 계시는 이곳으로 왔다. 시골로 오기는 했으나 농사의 ‘농’자도 모르려니와 농사를 지을 생각도 없었고 농사를 짓게 될 줄도 몰랐다고 한다. 남편이 “밥만 해 주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와서 보니 농사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농사규모는 8ha 정도이고 수도작이 주작목이나 양파, 생강, 고추, 배추, 참깨 등 밭작물도 다양하게 한다. 논일은 이른 봄 논에 거름내기부터 가을에 벼 수확까지 남편과 같이 둘이서
아침이다. 안개가 자욱하니 날이 쉬이 환해지지도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꼭 출근해야 할 이유가 없고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집을 떠났으니 따로 밥 달라고 조르는 이도 없다.물론 남편에겐 늘 일찍 일어나는 이가, 배고픈 이가 밥을 알아서 먹는 거라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를 해놓았던 터라 밥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전쟁 같은 추수가 끝난 후의 달콤한 아침. ‘이불 밖은 진짜로 위험해’를 되뇌며 오랜만에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다.해와 함께 시작하는 농사일, 이제는 해가 짧아졌으니 ‘룰루랄라’다. 이전의 농부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