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연구해 주세요

  • 입력 2018.12.16 19:51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서 푼어치도 못 되는 말재주와 일천한 경험을 갖고서도 아주 가끔 사람들 앞에 나설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여성농민들 앞입니다. 농업현실을 이야기 하고 또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훌륭한지를 말하다 마지막에 희망 비슷한 바람을 살짝 말하고는 마무리를 하는데, 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수십 년 간 비슷한 일을 해온 사람들의 깊은 통찰력에서 나온 혜안과 숱한 생활의 어려움을 감당해온 사람들의 내공을 느낄 때면 부끄러울 수밖에요.

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경험이 진실로 사람들 앞에 설 만큼 무르익었나? 또는 여성농민들이 진정으로 관심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는 것과 무엇보다 나의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충분히 연구되고 검토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되물음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람들 앞에 서고자 할 때면 여러 준비가 필요한데 이야기의 흐름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여성농업인 광장’ 통계자료에는 여성농민들의 인구추이와 결혼이민여성들에 대한 통계자료가 비교적 상세히 들어있고 5년마다 실시하는 여성농업인 통계자료가 들어 있습니다.

이는 여성농업인육성법에 근거한 3,000명에 대한 표본조사입니다. 물론 이것조차도 감사할 일이다만, 우리의 삶을 돌아볼 자료치고는, 우리가 세상에 기여하는 정도에 견줘서는 턱도 없이 부족한 자료입니다.

여성농민의 근골격질환 유병률은? 농기계사용 비율은? 여성농민 농업기술교육 참석률은? 교육이해도는? 여성농민의 협업 비율은? 여성농민 신용접근도는? 여성농민 조합참여 비율과 만족도는? 여성농민의 정신건상 상태는? 여성농민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지역사회 공헌도는?

잘 모른답니다. 세상이 여성농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나 봅니다. 버젓이 여성농민의 손을 거친 농산물을, 고맙게도 잊지 않고 매일 챙겨먹으면서 말이지요.

공적인 연구에서도 민간차원에서도 제대로 연구되고 있지 않습니다. 100만이 넘는 여성농민들의 삶이 왜 이렇게도 연구되지 않을까요? 참 이상한 일이지요. 뭐 이상할 것도 없이 이것이 여성농민들의 사회적 지위인 셈이지요.

이렇게 세상의 눈길이 미치지 않고 있으니 노령의 여성농민들이 원정 일당벌이로 나서서 몰죽음을 당해도 아무런 사회적 교훈이 없이 끝나버리고, 해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고추를 따다가 픽픽 쓰러져가도 대책이 안 생기는 것이지요.

성과는 세상의 몫이고, 아픔은 개인의 것인 참 인정머리 없는 세상이지요. 여성농민들에게는….

여성농업인육성법과 조례, 여성농업인 육성계획이 현장 여성농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선 때문일 것입니다. 법과 제도와 연구의 시선이 이 땅 여성농민의 손길에 머물 때 비로소 그 이름값을 할 것입니다.

여성농민에 대한 연구, 제대로 합시다. 해야 합니다. 변변한 연구기관 하나 없이, 연구부서도 없이 5년마다 3,000명 표본조사로는 안 됩니다. 여성농민의 삶 깊숙이 들어와서 제대로 된 질문을 뽑아야지요.

그래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강연할 때 자료부족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이유로 여성농민에 대한 다양한 연구자료가 필요합니다. 이미 늦어서 수습이 어렵겠지만 지금이라도 말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