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누군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

  • 입력 2019.01.27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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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오랜만에 들른 경로당이 썰렁하다. 지난 가을 이후 일곱분이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그 중 한분이 엊그제 돌아가셨다. 흔한 화투짝도 펼쳐져 있지 않다. 누가 보는건지 마는건지 TV소리만 요란하다.

때가 됐음에도 ‘밥 먹자’ 소리를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 개중에 젊은 분이 끼니를 도맡다시피 했었는데 엊그제 아들집에 가셨다 한다. “오늘 점심은 그냥 라면으로 때웁시다.” 누군가 이야기 하신다. 괜히 멋쩍은 건 나다. “그럼 편히들 쉬세요.”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양지쪽 논두렁에 누군가 앉아있다. 가까이 가보니 냉이를 캐고 계신다. 내일 장에 내다 팔 거리를 장만하고 계신 거다. 설날에 손주들 세뱃돈이나 마련할까 싶어서 나오셨다 한다. 바람도 없고 봄날처럼 따뜻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음력 설 쇠면 여든둘이 된다 하신다. 기어이 냉이 한줌을 쥐어주신다. “정월 보름 안에 먹는 냉잇국은 산삼보다 더 좋은 것이여.” “쉬엄쉬엄 하세요.” 할 말이 이것뿐이다. 결코 쉬지 않으실 것을 알기에….

농민들의 나이 듦이 농촌의 나이 듦으로 표현된다. 삼십년 안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거라는 예측처럼 겨울볕까지 을씨년스럽다. 모처럼 동네한바퀴 마실에 괜히 마음만 심란해진다.

“계셔요?” 우리 동네에서 집을 방문할 때 하는 말이다. 김정숙 할머니댁에 왔다. 평상시 같으면 노인정에 계셨을 텐데 혹시나 해서 집에 와본 것이다. 빼꼼히 문을 열어주신다. 모기만한 소리로 추운데 어서 들어오라 하신다. “나이드니 감기란 놈도 늙은이를 시피보는 건지 영 낫지를 않네.”

우리 동네에서 토종씨앗을 가장 많이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언제 한 번 시간 내서 정리해보자 한 것이 벌써 몇 해가 지나버렸다. “내년에도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랑가 몰르것네. 아직 가실도 다 못했당께.”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마당 한 켠의 콩대가 아직도 그대로다. 기운 차리고 연락 주신다며 감기 옮기 전에 얼른 가라고 하신다. ‘콩대 제가 두들겨 놓고 갈께요’ 하니 두 손 두 발 다 들며 어서가라 하신다. 그래도 그냥 두드려 놓고 올 껄 내내 마음이 무겁다.

집에 오니 엊그제 집들이를 마친 새댁이 놀러왔다. 무슨 농사를 지어야 좋은지? 아이들 학교는 가깝지만 몇 안 되는 면으로 보낼지, 읍으로 보낼지? 늦장가간 남편 친구가 고향 마을에 집을 짓고 온 가족이 내려온 것이다.

희망을 이야기 해야겠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해야겠지? 손 놀린 만큼 대가는 보장받는 곳이라 해야겠지? 옛날과는 달라졌다 해야겠지? 무언가 내게 듣고 싶은 말이 많은 새댁에게 선뜻 할 말이 없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출발, 희망에 부푼 새댁의 꿈을 마음 깊이 응원하며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지 싶다. 그녀의 희망의 노래 멀리멀리 울려 퍼져라. 삼천리 방방골골 수없이 많은 그녀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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