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젊은 친구

  • 입력 2019.01.06 18:00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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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글을 쓴다는 건 이런 것인가 보다. 한 해가 다 가도, 새해가 밝아도 그게 그것이고 그 날이 그 날이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글을 쓴다고 앉아 있으니 지난 한 해가 돌아봐진다. 작년은 내게 어떤 한 해였을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친구이다. 집이 가깝다보니 만나는 것이 부담 없어 자주 만날 거리를 만든다.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러서 같이 하기도 하고, 혼자 하기에 지루한 일이 있어도 같이 하고는 했다.

요즘처럼 밤이 긴 날에는 노트북으로 영화도 같이 보고 술도 같이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차는 많아도 마을공동체 활동도 같이 하고 소모임도 몇 개 같이 하다 보니 수다 떨 밑천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친구는 작년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우리 마을에 혼자서 살려고 왔다. 보기에는 여리여리 하지만 혼자서 척척 일을 씩씩하게 잘도 처리한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말하는데도 다부지고 강단이 있어 감히 누가 옆에서 말하지 못한다.

참 배울게 많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에 이런 청년여성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고 그런 친구들을 만나다보니 지금까지 농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더 많이, 더 자주 반문하게 됐다. “왜 안 되지?”

그러다보니 여자여서 안 됐던 일을 할 용기도 생겼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동네 아주머니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도 안 계시고 일가친척도 가까이 계시지 않아 결혼준비를 도와주게 됐다.

그 중의 하나는 피로연에서 부조금 받는 일이었다. 나도 지금까지 여자가 부조금 받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왠지 여자가 하면 욕먹을 것 같아 조금 쭈뼛쭈뼛 했으나 그 아주머니가 부탁하기도 하고 여자라서 안 될 것 없다싶어서 하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부조를 전하고 갔는데 이웃마을 부녀회장님이 오시더니 “여자가 부조를 받네”라고 말 하시며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셨다.

여자 혼자서도 씩씩하게 농촌에 내려 온 이런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결혼을 해야만 농민운동을 할 수 있고, 남자가 있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농촌에 내려 온 지 일 년도 채 안 돼 결혼을 했다. 여성농민의 입장에서 여성농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몇 십 년을 활동해 왔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은 한계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속에서 지난 일 년은 여성으로써 여성농민으로써 나날이 배우는 시간들이었다. ‘Me Too’ 운동, 페미니즘 논쟁, 농민수당을 둘러싼 여성농민의 권리문제, 유엔 농민권리선언 속에서 확인된 너무도 당연한 여성농민의 권리 등 여성농민 조직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나날이 깨우쳐 가는 시간들이었다.

봇물처럼 터져버린 여성들의 목소리, 그 중에서 낮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여성농민들의 목소리는 올해도 점점 더 크게 터져 나올 것이다. 아직도 철옹성 같은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도 누구보다도 묵묵히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농업과 지역 사회에 기여해 온 여성농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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