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누가 농촌을 지키는가?

  • 입력 2018.12.09 17:02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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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1. 농촌에 흔한 그녀 이야기

농사짓기 시작한 지는 20년 정도 되었다. 대구에서 장사하다가 형편이 어려워져서 시부모님들이 계시는 이곳으로 왔다. 시골로 오기는 했으나 농사의 ‘농’자도 모르려니와 농사를 지을 생각도 없었고 농사를 짓게 될 줄도 몰랐다고 한다. 남편이 “밥만 해 주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서 보니 농사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농사규모는 8ha 정도이고 수도작이 주작목이나 양파, 생강, 고추, 배추, 참깨 등 밭작물도 다양하게 한다. 논일은 이른 봄 논에 거름내기부터 가을에 벼 수확까지 남편과 같이 둘이서 일을 한다. 밭농사는 전적으로 그녀와 시어머니의 일이다. 시어머니는 남자는 밭일을 못 한다고 생각한다.

비료를 뿌릴 때는 그녀가 비료 실은 차를 운전하고 남편은 기계로 비료를 뿌린다. 모 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를 차에 실어서 나르는 일은 그녀 몫이고 이앙기로 심는 것은 남편이 한다. 무논에서 모를 건져 차에 싣는 일은 만만찮다. 이앙기까지 모를 나르는 것도 만만찮다.

차라리 이앙기에 앉아서 모를 심는 일이 더 수월해 보이기도 한다. 더러더러 품이 필요할 때는놉을 하기도 한다. 놉을 구하는 일, 놉을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는 일, 새참과 식사 준비는 당연히 그녀 몫이다.

도여농 간부, 공동체 사무장, 면지회 총무. 그녀가 여성농민회에서 가진 직책이다. 매주 화요일은 꾸러미 때문에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면지회 총무는 이런저런 여성농민회 활동에 회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또한 소고기, 새우젓 등 그녀한테는 한 푼도 남지 않는 단체의 기금 마련을 위한 판매도 그녀 일 중의 하나이다.

20여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그녀는 제일 젊고, 차 운전을 하니 동네 할머니들을 시내로 태워 주거나 심부름을 해야 할 일이 많다. 아침부터 그녀 집은 동네 사람들의 방문으로 북적인다.

2. 농촌에 흔한 할머니 이야기

팔십이 넘었지만 아직 정정하시다. “이제는 농사도 못 짓겠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지만 호미 들고 바삐 다니시는걸 보면 50대인 우리보다 더 팔팔하신 것 같다. 400여 평 정도 되는 밭에는 갖가지 채소와 잡곡들이 자라고 있다.

집에서 먹는 것은 거의 다 농사를 짓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 작물은 서너 차례 돌아간다. 양파 3단, 마늘 5접까지 심어 놓았으니 올해일은 다 하셨다.

동네일과 지역일을 하는 남편 뒷바라지한 이야기는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 아니 들어보면 뒷바라지가 아니라 남편보다 더 앞장서서 하신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

재봉틀로 동네아이들 옷 만들어 입힌 이야기, 농민회 만들던 당시 청년들 밥 해 먹인 이야기, 하루가 멀다 하고 오는 손님 대접한 이야기, 그런 와중에도 시할머니, 시어머니 봉양한 이야기, 바쁜 남편을 대신해 농사지은 이야기 등등 소설이 따로 없다.

요즘은 후배 여성농민들한테 자신이 평생 농사지은 토종씨앗을 갈무리하고 남겨주시느라 바쁘시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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