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하다보면 도토리를 산에서 줍지 말라는 펼침막을 심심찮게 본다. 다람쥐 등 도토리를 먹이로 삼는 짐승들이 굶게 된다는 이유다. 그러나 도토리는 다람쥐나 먹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도토리국수나 도토리묵이 여러 형태로 요리돼 참살이(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웬만한 도토리 음식 전문점은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이것은 중년들의 음식에 대한 향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고 알려진 덕이 더 크다. 민가주변에는 도토리가 열리는 갈참나무, 상수리나무들이 자라 도토리로 죽을 쑤어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식물로 이용했다. 도토리가 많이 열리는 해는 필시 흉년이 든다고 했다. 흉년에 먹을 것이 귀하니 도토리라도 먹으라고 그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잎이 피지 않은 봄의 숲은 황량함이 겨울의 숲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무줄기 끝에서 나뭇잎이 하나 둘 피어나면 숲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서 푸른빛을 가진 새순은 희망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느껴진다. 겨우내 암흑의 땅속에서 간직했던 기운을 온몸으로 밀어 올려 자신이 살아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봄에 나무들의 새순을 따서 먹으면 추운 겨울을 지내고 지칠 대로 지친 인체가 그 나무들의 기운을 얻어 우리도 나무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그것이 두릅의 순이라면 또 다른 설렘이 되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왜냐하면 나무로서의 두릅나무는 참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여리고 가는 잔가지를 달고 그 가지 끝에 물을 올리고 마침내 새순으로 봄을 터뜨린다.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띤 과자는 처음 본 것이었지만 알록달록한 고무 같은 과자에 설탕을 뿌린 젤리는 언젠가 한 번 맛본 것이었다. 장에 갔던 할아버지가 종이 봉지에 담아왔던 젤리는 신기하도록 달고 맛있었다. 그렇게 단 맛이 나는 것은 조청뿐이었다. 겨우내 할아버지 방 시렁 위에 놓여 있던 단지에서 할아버지는 가끔씩 선택을 불러 한 숟가락씩 떠서 맛을 보여주곤 했다. 잘게 썰어 넣은 무가 씹히는 조청은 시골에서 고 당분을 섭취하는 유일한 음식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 삼촌이 주머니에 넣어 와서 준 미루꾸라는 것, 미국에서 온 과자라는 미루꾸는 꼭 한 번 먹어보았는데 그 또한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먹어 봐. 사실 서울에서도 먹기 힘든 거긴 해. 순옥이가 과자 공장에 다니는 바람에 심심찮게
그때처럼 나라는 여기저기 썩어 문드러져 있다. 그 때문이다. 세월호가,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처참하게 우리 앞에 울부짖고 있다. 누구도 어디에도 착착 손발이 들어맞는 시스템이 없다. 단장(斷腸)이 따로 없다. 실종자 가족도, 유가족도, 국민 모두도 애간장이 녹아버렸다. 1894년 음력 3월 25일 무장기포. 전봉준과 손화중 그리고 김개남과의 연합군이 백산에서 창의문을 전국에 띄웠다. 썩어 문드러진 나라를 바로 잡고 외세의 침탈을 막아내고자 농민군이 나선 것이다. 사실 썩은 것의 본질은 돈(자본)이었다. 1876년 개항과 함께 무역이 시작되었고 조선의 수출품 중 절반은 쌀이었다. 조선이 먹을 양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다. 땅을 차지한 지주들과 관리들은 쌀을 수출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그 수익으로
요즈음에는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치아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학령기가 되지 않은 꼬마 환자들이 처음 또는 오랜만에 내원하여 충치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들은 우리 아이 치아가 썩지는 않았는지, 썩었으면 몇 개나 썩었는지 근심스러운 얼굴로 쳐다봅니다. 마침내 제가 구강검진을 끝내고 “하나도 썩지 않았네요” 하면 너무너무 좋아 하십니다. 하지만 “썩은 이가 있네요” 하면 울상을 지으면서 “단 것도 안 먹이고 이도 잘 닦아 주고 했는데 왜 썩었을까?” 하시며 실망스러워 하십니다.단 것을 먹이지 않고 이를 잘 닦으면 과연 이가 썩지 않을까요?입 안에는 여러 가지 세균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몇몇 세균들은 당분을 섭취하고 그 대사산물로 산(酸)을 만들어 내는데 이 산성분이 석회질이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석탄을 찍어서 만든 연탄이라는 게 나와서 그것으로 난방과 음식을 해결한다는 거였다. 더 없이 편하다며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저씨는 한 집에 연탄을 때는 방이 둘씩이나 있다는 게 은근히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한규 방은 아저씨 말대로 외풍이 세서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날림으로 벽돌을 찍어 세운 집이었다. 하지만 시골집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추운 날이면 윗목에 놓아둔 자리끼가 얼기도 했다. 방은 덩치 큰 한규와 둘이 들어서자 남은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작았다. “정형은 생일이 어떻게 되우?” 방에 앉자마자 한규가 물었다. 이불을 깔아놓은 아랫목은 따뜻했다. “구월 생입니다.” “그래요? 나도 구월 십육일인데, 이거 참.” “
들국화라는 그룹의 노래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세계로 가는 기차,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 노래제목을 이어 붙여 문장을 만드는 말놀이 따위를 하면서 낄낄거리고 다녔었다.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꽃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장미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가진 꽃 들국화를 좋아한다고 떠들었었다. 강원도 산간에서 살던 더 어린 시절에는 들국화 어린잎을 뜯어다 나물을 해서 먹고 살았었는데 서울 생활을 하느라 잊고 있었던 꽃이 들국화였으니 가을 야산에 주변의 나무나 풀들과 어울린 들국화 무더기를 기억해내고 했던 말이었다. 아마도 그래서일 게다. 해마다 찾아오는 이른 가을에 지리산 자락을 한 구비 돌면 만나고 또 한 구비 돌면 늘 보이던 연보
필자가 평택농민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쯤의 일로 기억 한다. 한 친구가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무슨 뜻을 품었는지는 모르지만 농사를 짓겠노라고 은행을 그만 두었다. 그때만 해도 귀농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말릴 수밖에 없었다. 다들 우르르꽝, 우르과이 라운드로 시끄럽고 우리 농업이 개방의 높은 파고에 노출돼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보란 듯이 논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쌀농사 하는데 여느 농민들과 달랐다. 유기농 농사를 고집하며 일본에서 무슨 효소를 들여와 농사에 적용하며 이웃에게도 권하며 유기농 쌀 생산에 몰두했다. 그뿐이 아니다. 쌀을 도정해서는 ‘우렁각시’ 라는 이름의 상표를 등록하고는 유기농 쌀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비싼
현대 의학의 지속적인 발달과 경제적 조건의 개선으로 인해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층의 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수명의 연장은 단순한 시간의 연장이 아니다. 개개인에게는 각 인체기관의 건강유지로 삶의 질에 많은 부분 영향을 받는다. 그 입구에 치아의 건강이 위치한다.우리의 영구치는 만 6세에 처음 나기 시작하여 10대 중반이면 사랑니를 제외한 모든 치아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이 영구치를 사용하게 되는데 젊었을 때부터 구강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치아우식증이나 치주염 등 각종 치과질환으로 인하여 치아를 잃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치아를 잃게 되면 식사를 원활하게 할 수 없어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임플란트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브릿지나 틀
며칠 전 주걱턱인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데리고 오신 학부형이 “우리아들이 부정교합인데 어떻게 하나요?”하며 치료를 부탁하셨습니다. 실제로 많은 부모님들이 “부정교합은 주걱턱이다”라고 혼동하고 계십니다.부정교합은 위 아래 치아들이 올바르게 맞물리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치아가 가지런하게 배열되지 못한 것, 덧니가 난 것, 윗니가 튀어나온 것, 주걱턱 등 수없이 많은 경우를 모두 부정교합이라고 하며, 지난번 지면을 통해 교정학적 부정교합의 분류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 드렸습니다.부정교합환자는 치아의 배열과 맞물림 상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보기 좋은 외모를 갖지 못하며 효율적인 저작을 할 수 없게 되고, 정확한 발음에도 지장을 주며, 치아를 청결하게 유지하는데 어려움
기와를 얹은 기역 자 집은 꽤나 오래되어 보였다. 그것도 시골집처럼 제대로 된 들보와 서까래가 얹힌 집이 아니었다. 어딘지 조잡해 보이는 벽과 쪽마루, 작은 방 세 칸이 서로 붙듯이 몰린 집이었다. 마당에서 잠깐 첫 인사를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전깃불이 들어와 있었다. 시골에는 면소재지에만 전기가 들어왔을 뿐, 선택의 동네는 아직 등잔불 아니면 호롱이었다. 천정에 매달린 눈부신 백열등에서 뜨거운 열기가 쏟아질 것만 같은데 방안 공기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웠다. “자, 다들 앉자. 우리 식구들한테는 내가 선택이 늬 얘기를 많이 해놔서 다들 낯설지 않을 거다. 야가 늬하고 동갑인 우리 아들 한규다. 앞으로 한 방에서 지내게 될 거니까, 좋은 친구가 되도록 해라. 글고
봄에 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 춘곤증을 이기는 데는 봄의 양기를 듬뿍 가지고 있는 봄나물만한 것이 없다. 대부분의 봄나물들은 떨어진 입맛을 살려줄 뿐 아니라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겨우내 부족했던 신선한 채소의 영양소들을 공급할 수 있으니 이 봄에 꼭 필요한 식재료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봄나물을 잘못 섭취할 경우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고 실제로 독성이 있는 산야초를 나물로 잘못 알고 섭취하여 사망에 이르는 사고가 나기도 하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해마다 봄이 되면 사고가 생기는 나물 중에 원추리가 있다. 나물로든 된장국으로든 한두 번 밥상에 올리지 않고 봄을 보낸다면 서운한 나물이라서 사고가 더욱 잦게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식약처에서는 봄나물의 올바른 조리법을 제시하고 있
마늘·양파 주산지 농민들이 지난주 국회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소품으로 가져온 마늘과 양파를 경찰이 빼앗아 갔는데 이를 두고 농민들이 빈정거렸다. “그래 제발 마늘 먹고 사람 좀 돼라” 경찰은 집회를 보장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우리나라 경찰은 집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이동수단인 버스로 철벽을 쌓고 그 안에 농민들을 가두어 버리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늘은 단군신화에 등장할 만큼 우리민족과 오랜 역사를 같이한다. 삼국사기에도 입추 후에 마늘밭에 풍농제를 올렸다는 기록으로 봐서 이미 식용과 약용으로 재배했을 거라는 짐작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양념에 마늘이 들어간다. 한국전쟁당시 미국인들이 부산에 발을 들여 놓고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똥
필자가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치과 그리고 치과의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많은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아픈 이를 빼지 않고 치료하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이가 많이 흔들리거나 충치가 너무 심하게 이환되어 잇몸 속 뼈 부위까지 충치가 진행된 경우 자연 치아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치아를 살리기 힘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따라서, 치아상실의 원인이 되는 질환을 초기에 발견하고 이를 조기에 치료하여 자연치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치아를 가능한 보존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치아는 씹고, 말하고, 자신있게 웃게 해주는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기능을 하는 치아 중 어금니가 빠지게 되면 음식물을 잘 씹지 못하게되고 인접한 치아가 기울어지거나 마주보고 있던 치아
“가자, 늬 배 고프지?” 몹시도 찬바람이 부는 저녁이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불쑥하게 솟은 건물들이 새삼 낯설기만 했다. 마음속으로는 그깟 서울이 대수냐고 다짐을 하다가도 여기서 살 생각을 하면 아득해지는 기분이 되곤 했다. 가방을 바싹 당겨 안고 선택은 앞서 가는 신정호 씨를 바투 뒤따랐다. 마르고 큰 키의 신정호 씨를 무슨 호칭으로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전에 불렀던 대로 아저씨라고 부르면 될까. “날씨 한 번 되우 춥다, 그지? 근데 잠깐만 여기서 기다렸다 가자. 집에도 다 왔다.” 한참을 걷다가 그가 멈춰선 곳은 꽤 큰 건물 앞이었다. 큰길가 모퉁이에 자리 잡은 건물 꼭대기에 세로로 ‘해태제과’라는 간판이 한 글자씩 걸려 있었다. “여기가 과자 맨드는
계속 미루던 영화를 보았다. 내용을 알고 보는 영화이고 사람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놈의 멍게 때문에 긴장이 되었다. 사람도 아닌 것이 주연까지는 아니고 거의 조연 같은 느낌으로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아직 공부 중인 딸아이가 취직을 한다면 친정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맛난 밥상 차려놓고 다 같이 둘러앉아 축하를 해줄 텐데 그때 멍게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때 분명 딸아이 아빠는 소주잔 기울이며 좋아라 할 터인데 나는 멍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내가 멍게를 처음 만난 것은 바다에 대한 추억 하나 제대로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로는 서울의 끝자락이라 할 정릉시장의
조선후기에 양인이 부담하는 軍役(군역)을 布(포)로 대신해 국가재정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양인이 군역을 피하기 위해 幼學(유학) 신분으로 위장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로써 남은 양인의 부담이 무거워졌고 이는 중요한 민생과제로 떠올랐다. 영조대왕은 均役(균역)을 실시하기 위한 방편을 고민했다. 그러나 양반들은 자신에게 군역이 부과되는 것을 반대했다. 세금을 물리는 논밭(田結)에 군역을 물리는 結布(결포)제와 사람에게 물리는 포 대신에 가호단위로 포를 물리자는 戶布(호포)제가 있는데 이는 양자 모두 양반들에게도 군역을 물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민이 길어지면서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대왕 26년에 충청감사 홍계희가 결포를 상소하고 호조판서 박문수가 포 보다는 錢(전)으로 거두
독자를 모독하고자 하는 말이 아님을 밝힌다. 이미 오래전 동명의 영화가 검열에 걸려 ‘시발점’이란 제목으로 제작 된 적이 있다. ‘시발점’도 육두문자를 강조하기위해 점을 넣었을 뿐인데 관계당국은 검열을 통과 시켰다고 한다. ‘병신과 머저리’는 장흥 출신으로 2008년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이 1966년에 쓴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사회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고 갈등관계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드러내려했다. 이청준은 우리사회의 갈등의 근원에 대한 사색으로 일관된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20세 근방에서 읽은 ‘불알 깐 마을의 밤’은 강남 AID아파트 부근에 살았던 필자를 포복절도하게도 했지만, 우리사회의 빗나간 구조에 대한 인식을 깨우치게 했다. ‘병신과 머저리’는 6·2
임상호는 옆에서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전국 곳곳에 집이 있다는 말은 농담이겠지만 서울에 따로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에게는 딴 세상 같은 소리였다. 그렇게 부자 친구를 둔 김재열이 얼핏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은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빌붙듯이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신세였다. 선택은 그들과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불안이 쉼 없이 피어올랐다. 마침내 서울역에 기차가 서고 선택과 두 사람은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짧은 겨울해가 이울기 시작하는 다섯 시 무렵이었다. 나가는 사람과 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온통 북새통이라 선택을 마중 나온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같이 오게 돼서 심심찮게 잘 왔습니다. 시험들 잘 치시고 꼭 합격하길 바랍니다.”
지리산에 살면서 해마다 봄이 되면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마을에 살지 않는 낯선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으로 큰 배낭을 메고 몰려와 온 산을 뒤지고 다니는 모습이다. 해질 무렵이 되면 등에 매달린 배낭이 버거워 보일만큼 나물을 한 짐씩 지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사실 이 무렵은 농사가 시작되어 마을사람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정작 마을사람들은 마을 근처의 산에서 자라고 나는 나물들을 제대로 한 번 맛보지 못하고 짧아서 안타까운 봄을 그냥 보내기 일쑤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조금 다른 봄의 풍경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마다 농촌에 오는 봄은 같지만 결코 같지 않은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봄이 거기 있다. 돈이 되는 몇 가지 작물만 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