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느 곳에나 오는 봄, 봄나물 달래

  • 입력 2014.03.30 01:20
  • 수정 2014.03.30 01:21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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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살면서 해마다 봄이 되면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마을에 살지 않는 낯선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으로 큰 배낭을 메고 몰려와 온 산을 뒤지고 다니는 모습이다. 해질 무렵이 되면 등에 매달린 배낭이 버거워 보일만큼 나물을 한 짐씩 지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사실 이 무렵은 농사가 시작되어 마을사람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정작 마을사람들은 마을 근처의 산에서 자라고 나는 나물들을 제대로 한 번 맛보지 못하고 짧아서 안타까운 봄을 그냥 보내기 일쑤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조금 다른 봄의 풍경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마다 농촌에 오는 봄은 같지만 결코 같지 않은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봄이 거기 있다. 돈이 되는 몇 가지 작물만 키우는 지금과는 달리 한 여름이 되면 오십여 가지의 채소가 텃밭에서 자라는 농가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이루고 있는 마을이라서 달랐던 봄이 그 시간들에 갇혀 있다. 농사가 아무리 바빠도 봄이 되면 봄나물이 넉넉히 올라간 밥상을 꼭 한 번은 차려야 하므로 마을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가는 행사를 치르기에 다른 봄이 거기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어느 봄날 나물 캐러 갔던 기억을 오십 년의 세월이 더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직업상 그랬겠지만 외가에서 같이 살고 있던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 계집아이에게 각인된 봄이 거기서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이모들이 이웃의 친구 언니들과 함께 나물 캐러 간다고 했다. 당연히 나도 데리고 가는 줄 알았는데 어린 나는 집에 두고 바구니만 하나씩 들고 산으로 가버렸다. 배신감이나 소외감이란 단어를 알지 못하는 나이였지만 그 느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나의 대책 없는 모험심은 좌절감을 곱씹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이모나 언니들을 찾아 무작정 산으로 간 것이었다. 물론 점심을 먹지 못했고 길을 잃었고 마을에서는 아이들을 찾느라 난리가 났고 마을청년들에 의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우리가 발견되고 집으로 돌아와 호된 야단을 들었었다. 그때까지도 나의 손에는 달래 한 줌이 들려 곤죽이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 달래는 나를 놀리는 소리와 함께 밥상에 올라왔고 나는 그날 이후로 해마다 봄이 되면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날을 기억해내고 달래를 캐다 밥상을 차린다.

논산의 연무읍에 가면 ‘꽃비원’이라는 농장이 있다. 봄이 오면 사과나무와 배나무 꽃들이 바람에 날려 비처럼 쏟아지는 농원을 가지고 싶다는 주인의 어린 시절 염원이 담겨 이름 지어진 농장이란다. 거기 꽃비원에는 요즘 달래수확이 한창이다. 농사를 지을 것 같지 않은 어여쁜 안주인은 풀 속에서 달래를 골라 캐는 일보다 그렇게 캔 달래의 가격을 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꽃비원의 달래는 깔끔하게 손질되어 팔리는 대형마트의 것과는 달리 흙과 함께 오므로 조금 귀찮기는 하나 달래를 다듬는 동안 그 향에 먼저 취하니 좋다. 그렇게 손질한 꽃비원의 달래는 한 줌 다져넣고 양념간장을 만들어 밥을 비비면 입 안에서 봄이 터진다. 달래 한 줌, 부추 한 줌, 한라봉 한 개와 집간장 한 술이 만나면 개나리 같은 상큼한 봄이 식탁 위에서 꽃 필 것이다.

봄은 누구에게나 오고 어디에나 오지만 봄나물 달래 없이 오는 봄은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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