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과 머저리

  • 입력 2014.03.30 19:43
  • 수정 2014.03.30 19:45
  • 기자명 한도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자를 모독하고자 하는 말이 아님을 밝힌다. 이미 오래전 동명의 영화가 검열에 걸려 ‘시발점’이란 제목으로 제작 된 적이 있다. ‘시발점’도 육두문자를 강조하기위해 점을 넣었을 뿐인데 관계당국은 검열을 통과 시켰다고 한다.

‘병신과 머저리’는 장흥 출신으로 2008년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이 1966년에 쓴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사회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고 갈등관계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드러내려했다. 이청준은 우리사회의 갈등의 근원에 대한 사색으로 일관된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20세 근방에서 읽은 ‘불알 깐 마을의 밤’은 강남 AID아파트 부근에 살았던 필자를 포복절도하게도 했지만, 우리사회의 빗나간 구조에 대한 인식을 깨우치게 했다.

‘병신과 머저리’는 6·25동란의 경험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의사인 형의 고통과 아픔을 알지 못하는 동생이 화자로 등장한다. 전쟁을 직접겪고 병신이 된 형. 그것이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상관없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아야 할 정도의 고통임을, 전쟁을 겪지 못한 동생은 이해 할 수 없어 형의 상처와 고통의 주변만 맴돌 뿐이다. 형의 신음소리에 함께 하거나 상처를 닦아주지 못한다. 그래서 화자인 동생은 머저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다가오는 6월까지 쌀 개방과 관련한 의견을 정리하고 WTO에 제출 하겠다고 한다. 의견은 이미 정리 된 것으로 보인다. 개방이다. 관세를 높이 먹이겠다고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될 일 도 아니지 않는가. 삼척동자도 알고 있듯이 FTA, TPP가 정부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어떻게든 TPP에 승차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쌀의 고율관세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개방농정은 농민들을 병신으로 만들어 놨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리하면 안된다고 소리쳤으나 ‘가물치 콧구멍’ 격이다. 피 흘려 죽고, 감옥 가고, 벌금 물고 해도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 메아리가 돼 버렸다. 차츰 농민들이 박물관의 밀랍인형이 돼가는 상황이다. 그런 상처와 아픔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냥 산업화로 축소된 농업일 뿐이라고 둘러댄다.

국민들이 나서서 농업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국민 누가 나서서 농업을 농민을 지킨단 말인가. 직접 상처를 핥아보지 못한 머저리들로서는 언감생심 상상이나 하겠는가.

농민과 국민으로 대별되는 병신과 머저리는 그냥 쓴 웃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병신과 머저리들의 종착점이 어디인가를 보면 답이 나온다. 강대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약소국이 살아남을 길은 자신의 배알을 지키는 일이다. 배알까지 모두 빼주겠다는 자세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이미 병신 된 농업·농민이라고는 하지만 국민들만 머저리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아도 끝내 병신과 머저리가 되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