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12회

  • 입력 2014.03.30 01:25
  • 수정 2014.03.30 01:26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상호는 옆에서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전국 곳곳에 집이 있다는 말은 농담이겠지만 서울에 따로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에게는 딴 세상 같은 소리였다. 그렇게 부자 친구를 둔 김재열이 얼핏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은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빌붙듯이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신세였다. 선택은 그들과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불안이 쉼 없이 피어올랐다.

마침내 서울역에 기차가 서고 선택과 두 사람은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짧은 겨울해가 이울기 시작하는 다섯 시 무렵이었다. 나가는 사람과 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온통 북새통이라 선택을 마중 나온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같이 오게 돼서 심심찮게 잘 왔습니다. 시험들 잘 치시고 꼭 합격하길 바랍니다.”

“정형께서도 꼭 합격하십시오. 근데 마중 나오기로 한 분은?”  “글쎄요, 사람이 많아서 잘 못 찾겠는데,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좀 기다려봐야지요.”

“혹시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도 같이 기다리겠습니다. 우리는 바쁠 게 없으니까.”

임상호가 특유의 선한 웃음을 지으며 들었던 가방을 대합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만약에 신정호라는 아버지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하는 수 없이 명륜동인가에 있다는 임상호의 집에서 신세를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남의 코를 예사로 베어간다는 서울에서 혼자 갈 곳도 없고 여관 신세를 질 돈도 없었다. 대합실이 휑하게 사람들이 빠져나가도록 선택이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거 참, 처음 만난 두 형씨한테 자칫하면 큰 신세를 질 판이네요.”

선택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면 아버지 친구의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학교를 다니는 것도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뭔 걱정입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시험 치면 되지요. 내가 알기로 중앙고등학교도 가까이 있으니까 잘 되었지요.”

남의 속도 모르고 김재열이 가방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대합실을 나오자 서울역 앞은 바람이 거세게 불고 손수레들이 짐 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왔으니 시발택시라도 한번 타볼까?”

임상호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큼직한 미군 지프 같은 차가 서 있었다.

“부자 친구 덕에 말로만 들은 시발택시를 타 볼까나. 비싸기도 하다던데.”  “저게 그래도 우리 기술로 만든 자동차라고 안 합니까? 지난번 박람회 때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하더만요.”

선택으로서는 보기는커녕 듣기도 처음이었다.

“우리 기술은 무슨? 자동차 내장은 다 미국 것이고 겉에 껍데기만 도라무통 펴가지고 만든 거라더만.”

그 때였다. 한 중년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선택이네가 선 곳으로 다가왔다. 선택은 그가 아버지의 친구인 신정호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언젠가 집에 왔을 때의 모습이 금세 떠올랐던 것이다. 키가 크고 마른데다가 광대뼈가 불거진 거무튀튀한 얼굴 그대로였다. 눈만은 크고 맑아서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선택이지? 미안타. 시간 맞춰서 온다는 게 우짜다가 늦어버렸다. 이친구들은 누고?”

그의 말투는 지역을 종잡을 수 없는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기차에서 만난 학생들입니다. 동무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상호와 김재열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럼 우리는 가보겠습니다. 정형, 나중에 또 서울에서 만나도록 하지요.”  넓은 서울에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선택도 그러마고 둘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때는 김재열과 나중에 기막힌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