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13회

  • 입력 2014.04.06 21:0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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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늬 배 고프지?”

몹시도 찬바람이 부는 저녁이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불쑥하게 솟은 건물들이 새삼 낯설기만 했다. 마음속으로는 그깟 서울이 대수냐고 다짐을 하다가도 여기서 살 생각을 하면 아득해지는 기분이 되곤 했다. 가방을 바싹 당겨 안고 선택은 앞서 가는 신정호 씨를 바투 뒤따랐다. 마르고 큰 키의 신정호 씨를 무슨 호칭으로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전에 불렀던 대로 아저씨라고 부르면 될까.

“날씨 한 번 되우 춥다, 그지? 근데 잠깐만 여기서 기다렸다 가자. 집에도 다 왔다.”

한참을 걷다가 그가 멈춰선 곳은 꽤 큰 건물 앞이었다. 큰길가 모퉁이에 자리 잡은 건물 꼭대기에 세로로 ‘해태제과’라는 간판이 한 글자씩 걸려 있었다.

“여기가 과자 맨드는 공장인데 우리 딸이 댕긴다. 마침 끝날 시간이어서 나오믄 같이 가려고 그런다. 어디, 서울 바람이 맵지?”

“괜찮습니다. 아저씨가 더 추워 뵈는데요. 근데 여기 동네 이름은 뭐라고 합니까?”

선택은 씩씩하게 말을 받았다.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여기? 여긴 남영동이라는 동넨데 들어봤나?”


들어봤을 리가 없었다. 선택이 고개를 젓자 아저씨가 담배를 꺼내 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너 아까 오면서 용산고등학교 봤지? 거기로 갔으믄 집에서 가깝고 좋을낀데. 하긴 늬 시험 본다는 경복고만은 못하다더만. 나야 잘 모르지만. 하여간 시험은 붙을 자신 있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서울 애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는지도 모르겠고 자신은 없습니다.”

“뭐, 학교에서 어련히 추천해줬겠나. 부럽다. 이따 보믄 알겄지만 집에 늬하고 동갑내기 아가 하나 있다. 갸도 공부는 한다고 했는데 너같이 좋은 고등학교 시험 볼 실력은 안 된다고 한다.”

“그래요? 그럼 어느 고등학교로 가려고 하는데요?”

잠깐 사이에 친밀감이 생긴 것인지, 삼촌이나 할아버지를 대하듯이 말끝이 조금 짧아졌다.

“여기 집 가까운데 경성전기고등학교엘 가겠다구 헌다.”

선택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학교였다. 그때 건물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개가 젊거나 어린 여자들이었다. 갈래머리에 스웨터 비슷한 옷을 똑같이 입은 여자들이 수십 명도 넘게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순옥아, 아부지 여기 있다.”

아저씨가 꽤 어두워진 속에서도 누군가를 용케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무리 중에 있던 여자 하나가 냉큼 뛰어왔다.

“아부지 뭣하러 기다리고 있어요? 어련히 잘 갈까봐.”

“지나가는 길이니까 같이 갈려고 그랬지. 여기 인사해라. 오늘 온다고 했지? 정선택이라고 시골에서 올라온 수재다. 선택아, 앞으로 우리 순옥이 많이 좀 갈켜줘라.”

그녀가 고개를 까딱하고는 몸을 돌렸다.

“얼른 가요. 되게도 춥네.”

“쟤가 부끄러운가 보네. 그래 집에 가서 정식으로 보자.”

아저씨의 집은 남영동 네거리에서 뒷골목으로 칠팔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낮은 지붕을 얹은 집들이 연이어 붙은 어두운 골목 어귀를 지나 낮은 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작고 낡은 기와집이었다. 시골집에 비하면 반도 되지 않을 듯싶었다. 선택은 저도 모르게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들어가자. 한규야, 얼른 밥상 채려라.”

대문에 들어서며 선택은 앞치마에 손을 훔치며 나오는 어머니 또래의 여자를 보았다. 묻지 않아도 순옥이 달려가는 품새로 아저씨의 부인, 그러니까 선택이 가장 잘 보여야 할 이 집의 안주인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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