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가 추진하려는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망 구축사업은 기후위기 시대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태양광·풍력·수소 등 청정에너지 확대는 필수적이며 정부도 보급 목표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부담을 지는 곳은 늘 농촌이다. 에너지 전환의 명분 뒤에서 농촌이 희생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정책을 추진한다면 지속가능성도 정의로운 전환도 이룰 수 없다.
요즘 농촌에서 태양광 패널보다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송전탑과 송전선로다. 재생에너지가 늘수록 전력은 도시로 더 많이, 더 멀리 보내야 하기에 송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그로 인한 경관 훼손, 토지 이용 제한, 전자파 논란, 부지 가치 하락, 주민 간 갈등 등 피해가 다시 농촌에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농촌에서 “우리가 에너지 식민지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송전선로 건설 과정의 불투명성과 일방성이다. 노선이 사실상 확정된 뒤에야 주민에게 알리거나, 형식적인 설명회만 진행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보상 기준은 모호하고 주민 참여 절차는 미비하다. 과거 고압송전선로 갈등이 실제로 벌어졌거나 장기간 지속된 이유도 바로 이 절차적 결여에 있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고 강조하지만, 송전 인프라 부담이 농촌에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는 정책은 충분치 않다. 정작 송전망 계획은 공공성만을 앞세워 농촌의 삶과 공동체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재생에너지 전환이 필요한 만큼 부담과 혜택의 공정한 배분이 따라야 한다. 독일이 재생에너지 확대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발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발전–송전–소비 전 과정에 주민 참여와 이익 공유를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농촌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당장 필요한 대책은 송전탑·송전선로 계획 단계부터 주민 동의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며, 재산권 침해, 경관 훼손 등에 대한 보상 기준을 현실화해야 하고, 지역 이익 공유 제도를 확대해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에 대한 공공 인프라 투자와 에너지 복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태양광 패널 하나 더 설치하기 전에, 송전망 피해로 고통받는 농촌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해법을 마련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