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으로 첫발 뗀 ‘농어촌기본소득’, 지속할 수 있으려면①

‘국정과제 농어촌기본소득 사업, 지속가능한 정책 방향은?’ 토론회 – 발제, 좌장

  • 입력 2025.10.26 18:00
  • 수정 2025.10.26 20:10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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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장수지 기자]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소멸위험지역부터 시행한다는 애초 공약과 달리 사업 지역을 한정하면서 벌써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란 우려가 나온다. 군 대상인 현 방안대로라면 도농복합시의 대다수 면이 제외되고 지방정부의 과도한 재정 부담 문제도 남아 있어 사업이 지속될 수 있겠나란 지적도 이어진다. 물론 시범사업이나마 시작됐으니 민관이 협력해 본사업으로 안착시킨다면 위기의 농어촌에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란 기대감도 공존한다. 이 사업이 용두사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떤 점을 더 챙겨야 할까. 지난 2021년부터 관련 운동을 이끌어 온 이들이 지난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정과제 농어촌기본소득 사업, 지속가능한 정책 방향은?’을 주제로 한 토론에 나섰다. 이날 토론회는 신정훈·이개호·임미애 국회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주최하고, 본지와 지역재단이 주관했다. 정리 김수나·장수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21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과제 농어촌기본소득 사업 지속가능한 정책 방향은?’ 토론회에서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과제 농어촌기본소득 사업 지속가능한 정책 방향은?’ 토론회에서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농어촌기본소득’ 사업, 이대로면 지역위기 소방수 역할 못 해

발제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
발제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정부의 농어촌기본소득(기본소득) 사업은 시범사업부터 잘못됐다.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본사업이 어렵다고 본다. 지난 2021년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진행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개벽 대행진’에서 행복한 농산어촌으로 전환하기 위한 5가지 방략 중 가장 열렬히 지지받은 것이 ‘농어촌주민수당’이다. 인구 3000명 이하 면 지역 모든 주민에게 월 30만원 지급을 시작으로 5000명 이상 면 지역으로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기본소득은 단지 농어촌 주민을 돕는 것이 아니라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라는 이들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간의 SOC(사회기반시설)·대자본·중앙정부 중심의 농어촌 개발이 지역에 별 도움이 안 됐고, 오히려 농지와 지역 환경·문화를 파괴한 면도 있으니 주민 행복을 높이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자는 취지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사업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먼저 가장 큰 문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시범사업 대상 지역을 공모로 선정해 지역 간 불필요한 갈등과 경쟁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공모방식은 대단히 잘못됐으며, 지역 선정은 도별 단순 추첨 방식으로 해야 했다. 인구감소지역 89개 시군구 중 69개 군만 신청 대상이며, 이 가운데 49개 군만 공모에 참여했다. 그렇다면 ‘20개 군은 왜 신청하지 못했나’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결국 지방정부의 재정 여건·단체장 성향·행정력 등 지역 간 편차에 따라 신청 여부가 확연히 달랐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란 문제다. 신청한 49개 군도 선정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아마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울며 겨자 먹기로 했을 공산이 크다. 시범사업을 거쳐 앞으로 69개 군에 전면 시행될 사업이므로 이번에 신청하지 못한 지역들의 문제를 놓쳐선 안 된다.

인구감소지역 89개 지역 중 도농복합시가 관할하는 면 지역이 빠지면서 매우 심각한 형평성 문제가 생겼다. 예를 들어 상주시(인구감소지역)는 17개 면 가운데 14개 면이 인구 3000명 이하로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역(화남면 792명, 중동면 1292명)이지만, 시라서 지급 지역이 아니다. 이는 전체 54개 도농복합시의 문제이기도 하다. 면 단위, 전액 국비로 지급해야 형평성 문제는 물론 적어도 지역 내 갈등과 정치적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지급 금액이 15만원인 점도 아쉽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어려운 생계에 보태라는 게 아닌 지역에 새로운 변화와 활력을 불러오려는 취지이므로 최소 30만원은 돼야 한다. 인구 3000명 이하 면(전국 711개) 주민 약 139만명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려면 연간 약 5조원이 필요하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월 15만원씩 69개군 272만명에게 지급하려는 본사업 예산은 연간 4조9000억원 규모이므로 이 사업은 재정문제가 아닌 지급 대상을 선택하는 문제다.

아울러 열악한 지방재정을 고려해야 한다. 인구소멸지역에는 재정자립도가 10%가 안 되는 곳이 많다. 사실상 지방재정은 중앙정부가 내려보낸 지방교부세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라 지방교부세에서 기본소득 예산을 다시 빼내게 하지 말고 처음부터 국비로 지급해야 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 1조원, 지역상생발전기금 4400억원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하고, 정부 부담액 약 2조원(4조9000억원의 40%)까지 더하면 3조4000억원 정도는 마련된다. 여기에 비효율적으로 낭비된 농어촌 지역개발 비용을 구조조정해 보태면 면 단위 주민에게 월 30만원 지급하는 재원은 마련할 수 있으며 차차 재원을 늘려가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기본수당이란 명칭은 보수·진보를 넘어 매우 논쟁적인 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고 지역 지킴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는 주민수당이 합당하다. 현금과 상품권을 혼합해 지급하고 사용 지역도 군 단위로 확대해야 사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기존 농민수당과 주민수당의 중복 지급 문제, 수당 일부를 지역 공동체 기금으로 쓰도록 하는 방안, 군 단위에선 운영하기 어려운 지역재원 창출형(기본소득 사업은 일반형·지역재원창출형으로 구분됨)과 별개 운영, 민간거버넌스 구축도 더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인구감소, 지역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면 단위 정책으로 우선해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

시범사업 정책 효능감 높일 공론의 장, 계속 마련돼야

좌장 허헌중 (재)지역재단 이사장.
좌장 허헌중 (재)지역재단 이사장.

열악한 여건에서도 소멸 위험이 큰 농어촌지역에 남아 지역 지킴이 역할을 해온 해당 지역주민의 공익적 기여 행위에 대한 보상이자, 소비지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체감 가능한 정책수단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정리한 농어촌기본소득의 정의다. 아주 잘 정리된 것 같다.

시범사업의 첫발은 뗐지만, 12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급금액, 방식, 추진체계 등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비타당성 면제 이후 기획재정부가 조세연구원을 통해 지난 9월 적정성 연구를 시작한 상태다. 집행 예산 적정성 검토 결과 농어촌기본소득 사업예산을 축소하는 결론이 날지 더 확대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재 수준의 규모와 방식으론 애초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오는 11월 말 연구가 마무리될 예정인데 그 결과가 아주 중요할 것 같다. 정책 효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국비 예산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검토가 진행되면 좋겠다.

아울러 이 사업은 농식품부뿐만 아니라 범부처 사업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농어촌지역에 쏟아붓는 범부처의 온갖 예산과 정책을 되짚어 보고 논의를 진행해 진정으로 농어촌을 살릴 정책수단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많은 것도 아니다. 오늘 토론회가 시작이란 생각으로 시범사업이 진행되더라도 정책 효능감을 높이고 지역 주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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