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난 김에 개발이나 하자? 산불지원 특별법 결국 ‘역풍’

환경단체들 “여야 합작 난개발 특례법” 강력 규탄
국무회의 의결 앞두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요구

  • 입력 2025.10.02 16:5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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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전국 80여개 환경·종교·농민단체가 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산불지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80여개 환경·종교·농민단체가 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산불지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국회가 내놓은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산불지원 특별법)」이 결국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재난을 기회삼아 폭넓은 산림 개발을 허용하는 법안 내용에 시민단체들은 그야말로 아연실색한 모습이다.

2일 오전, 중앙과 지역 단위의 80여개 환경·종교·농민단체가 용산 대통령실 앞에 모여 산불지원 특별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산불지원 특별법은 일부 피해주민 지원 조항도 담고 있지만, 절반 이상의 내용을 개발 특례에 할애해 난개발을 유도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자회견에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활동가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대표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여야가 합작해 이렇게 악법을 만든 사례가 없었다”고 참담해했다. 법안은 입법 회의 내내 개발을 주장한 국민의힘, 그리고 이를 용인한 더불어민주당의 협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히 끔찍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이용해 산지개발을 맘대로 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넣었다. 망가진 숲을 복원해도 모자랄 판에 이 기회에 산림을 개발이나 하자는 합의가 국회에서 전혀 제동 없이 이뤄졌다”며 “산불은 앞으로 계속, 더욱 크게 나타날 것이다. 그 때마다 특별법에 난개발 특혜를 끼워 넣는다면 전국의 산림은 모두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개탄했다.

민영권 산청난개발대책위 대표는 “산불 난 곳에 골프장·휴양시설을 만들면 그곳에 터잡고 있는 사람들은 쫓겨나야 한다. 주민 피해복구는 뒷전이고 토목업자 배불리는 사업에만 집중하는 게 지금의 특별법”이라고 비판했으며, 정은아 경남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피해 주민들 의견을 들어보긴 하고 만든 법인가. 산불지원 특별법은 피해주민의 바람대로 집과 일상을 되찾고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산청과 경남 주민들은 개발이익이 아니라 산과 숲, 공동체를 되살리고 싶어 한다”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공동성명문에서 이번 특별법을 ‘재난 자본주의의 전형’이라 규정했다. ‘산불이 나야 개발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만듦으로써 앞으로 산불 진화가 소극적으로 이뤄지거나 산주·자본가들이 산불을 반기는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 국회는 피해 주민을 위로하고 지원해야 할 책무를 저버렸다. 특별법은 피해 지원이 아니라 숲을 두 번 죽이고 갈등을 키우는 길이 되고 있다. 불가능했던 산지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주민 지원을 선심 쓰듯 끼워넣는 식의 특별법은 꼼수 법안이며 ‘개발 특례법’일 뿐”이라며 국회를 강하게 규탄했다.

법안은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에 이송된 상태다. 법안을 이송받은 정부는 15일 이내(공휴일 제외)에 국무회의에서 공포 여부를 의결하기 때문에 오는 14일 정기 국무회의 의안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단체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와 국회의 법안 재설계, 정부의 성의 있는 피해주민 지원 의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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