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혼란·우려 상상 이상…논콩 정책이 나아갈 방향은

논콩 생산기반 마련 위해 투입된 투자비용 ‘상당’
관련 지원 정책 향방에 청년농 불안감 날로 커져
단순 소비 확대 넘어 자급률 고려한 대책 찾아야

  • 입력 2025.09.07 18:00
  • 수정 2025.09.07 20:24
  • 기자명 장수지·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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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김수나 기자]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서 논콩 농사를 시작한 청년농민 윤지웅씨가 지난 1일 논을 둘러보며 풀을 매고 있다. 벼가 자라는 옆 논으로 인해 윤씨의 논 가장자리엔 배수로가 깊게 만들어져 있다. 한승호 기자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서 논콩 농사를 시작한 청년농민 윤지웅씨가 지난 1일 논을 둘러보며 풀을 매고 있다. 벼가 자라는 옆 논으로 인해 윤씨의 논 가장자리엔 배수로가 깊게 만들어져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는 지난 2023년 전략작물재배직불금을 앞세워 농민들로 하여금 논에 벼 대신 논콩 또는 가루쌀을 심게 장려했다. 하지만 부실한 소비 대책에 기반한 생산 확대 정책은 재고 증가로 자연히 이어졌고, 날로 쌓여가는 콩 재고를 해결하지 못하자 최근 논콩 재배를 감축하겠다는 등의 뉘앙스를 풍겨 농민들을 불안에 몰아넣고 있다.

정부가 정책을 역행하는 것은 단순한 말 한두 마디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당장 논콩 등 타작물 재배 확대 정책을 축소할 경우, 농민들은 논콩 재배를 위해 들인 투자비용을 회수할 방법이 없는 데다 당초 타작물을 장려하기 위해 얼기설기 엮어 놓은 정책 지원과 보조사업 등의 방향 또한 뒤바뀔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장 농민들의 중장기 영농계획에, 특히 청년농민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 관점 없이 도입·시행된 정책의 폐해는 결과적으로 모든 농민의 몫이 되는 것이다.

논을 밭으로, 이젠 다시 논으로?

논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지만 논콩 재배를 위해선 논 가장자리를 아주 깊게 파는 등의 배수 작업이 필수다. 지난 1일 찾은 전북 김제시 죽산면의 논콩 재배지에선 실제로 논둑 안쪽의 가장자리가 깊게는 1m 이상 패여 있었다. 김제시의 경우 벼가 심겼던 너른 들판이 대부분 논콩으로 뒤바뀐 상태라 가장자리를 깊이 파내는 등의 배수 작업을 하지 않은 논도 있었지만, 인접한 논에서 콩이 아닌 벼를 재배하는 대부분의 경우 옆 논에 계속 물이 차 있고 그 물이 콩을 재배 중인 논으로 넘어오기도 해 논둑을 높이거나 논 가장자리에 배수로를 파두는 등의 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조경희 김제시농민회 교육위원장은 “굴삭기를 동원할 수밖에 없고, 하루 빌리는 데 비용만 70만원인데 하루에 기껏 1200평짜리 2~3필지 정도밖에 작업을 못 한다. 게다가 콩 파종 전 로터리 작업을 하다 보면 흙에 묻히고 결국 2년에 한 번씩은 배수작업을 해줘야 하는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논의 형상을 유지한다지만, 이를 당장 논으로 다시 활용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논콩 재배 확대 정책이 역행할 경우 논 가장자리를 다시 메우는 등의 비용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고, 몇 년간 물을 대지 않은 논에 다시 벼를 심는 것 또한 농민에겐 위험일 수밖에 없다. 현장 농민들에 따르면 논콩 재배는 ‘잡초와의 전쟁’이라 불릴 만큼 제초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인다. 특히 피 등의 화본과 잡초를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사용하는데 콩 재배를 위해 화본과 잡초용 제초제를 수년 간 사용했을 경우 이후 해당 논에 벼를 제대로 재배하기 어려운 여지가 있다. 벼가 화본과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밝음 김제시농민회 정책실장은 “논에 콩을 7~8년 정도 키우며 화본과 제초제를 사용하다 보면 농약이 토양에 축적돼 나중에 벼를 심어도 잘 안 된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수억원대 비용, 결국 농민 몫 되나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발맞춰 본격적으로 논콩을 재배하려 한 농민들은 농기계 구입 등에 이미 큰돈을 투자한 상태로, 논콩 재배가 더이상 정부에 의해 장려되지 않을 경우 농민들은 농기계 구입 비용을 상환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농기계 구입은 비용 상환을 위해 대행작업까지 해야 할 만큼 큰 부담이 뒤따라서다.

기존에 트랙터를 소유하고 있더라도 파종을 하려면 수천만원대 작업기를 구매해야 하며, 수확을 위해선 범용 콤바인이 필요하다. 범용 콤바인의 경우 작업 효율을 위해 4조식을 주로 활용하는데, 기계값만 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본격적인 논콩 수확을 위해 기존 벼 재배용 농기계를 모두 처분하고 새 기계를 구입했다는 최재호 김제시농민회 조직위원장은 “작목을 콩으로 아예 전환하려고 기계를 모두 구입했다. 3조식 범용 콤바인이 1억원대, 밭작업에 용이한 높은 마력의 트랙터가 1억원 이상, 피복이랑 파종이 동시에 되는 작업기가 수천만원이다”라며 “직불금이랑 논콩 수매가격 등 따져서 수지타산이 맞겠다는 계산 아래 논콩용 기계를 구입했는데 정부에선 단 3년 만에 논콩 재배를 줄이겠단 얘기가 흘러나오니 기가 막힌다. 지금 다시 수그러들긴 했지만 언제 또다시 말이 바뀔까 싶어 현장이 아주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서 농사짓는 최재호씨가 논콩으로 작목을 전환하며 구입한 1억원 대의 범용 콤바인을 가리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서 농사짓는 최재호씨가 논콩으로 작목을 전환하며 구입한 1억원 대의 범용 콤바인을 가리키고 있다. 한승호 기자

흔들리는 정부 정책, 혼란한 ‘청년농’

정부는 논콩과 가루쌀 등 타작물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적지 않은 정책들을 엮어냈다. 일례로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을 활용해 농지 임차 시 타작물 재배를 의무화하거나, 타작물을 재배할 경우 농지 임차료를 대거 할인해 주는 식이다. 기반이 없는 청년농민 입장에선 농지 마련을 위해 농지은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현재 정부의 타작물 정책과 청년농민의 상황은 깊숙이 연결돼 있는 상태다.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부터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서 본격적으로 논콩을 재배 중인 청년농민 윤지웅씨는 흔들리는 정부 정책에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현재 농지은행을 통해 임차받은 공공비축·매입비축 논에서 콩을 재배 중이다. 전략작물직불제를 비롯해 논콩 전량 수매, 타작물 재배 시 농지은행 임차료 감면 혜택 등의 정책 사업이라면 콩 농사로 수입을 최대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다.

윤씨는 “요즘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다. 솔직히 뉴스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다”라며 “타작물을 재배할 경우 농지은행 임차료가 시중의 8분의 1 수준밖에 안 되기도 하고, 죽산면의 경우 오랫동안 논콩을 심어 왔던 지역이라 벼와 콩이 섞여 있는 들판보다 영농 여건이 좋아 논콩 재배만을 보고 이곳서 농사에 뛰어든 건데 직불금이 줄어든다거나 정부 정책이 논콩 재배를 더이상 확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 농지은행 임차료 감면 등의 혜택이 사라진다면 솔직히 영농을 지속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타작물 정책이 다른 정책과 서로 엮여 있는 만큼 논콩 재배가 감축된다면 기대이익이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 그 부분이 걱정이다”라고 털어놨다.

지난 6월 11일 전북 김제시 죽산면 신흥리 들녘에서 한 농민이 트랙터에 파종기를 연결해 콩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월 11일 전북 김제시 죽산면 신흥리 들녘에서 한 농민이 트랙터에 파종기를 연결해 콩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미 엎질러진 물, 대안은 있나

정부가 단 3년 만에 논콩 확대 추진을 주춤한 가장 큰 이유는 소비 부진과 이에 따른 재고다. 이에 정부는 소비 확대를 위한 신규 수요 창출 방안을 논의해 보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선 논콩 소비와 자급률 제고에 가장 걸림돌은 수입산 콩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에 수입 물량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비해 생산·비축량을 지속 늘려 콩 자급률뿐 아니라 전체 식량자급률 제고까지 이어가야 한다는 게 농민들의 진단이다.

황양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의장은 “정부가 과잉생산이라 지적하는 근본 이유는 누구나 알다시피 수입 콩 때문이다. 콩뿐 아니라 곡물 대부분이 처한 현실(2023년 기준 곡물자급률 19.5%)이다”라며 “곡물을 계속 수입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결국 국산이 재고로 남게 되는 상황이니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과잉생산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요 곡물의 수급을 수입에 기대면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할 수 없고, 유전자조작(GMO) 문제 등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로 국민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의장은 “기후변화로 세계적으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는 추세다. 식량위기가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 5년 이상의 식량이 비축돼야 안전한 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국내산이 없으면 수입하면 된다’라고까지 말한다”라며 “수입이라고 해서 무제한 들여올 수도 없으며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정부가 너무 안이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황 의장은 오락가락하는 농업정책에 쓴소리를 이어갔는데, “쌀 재배면적을 줄이겠다며 콩을 심으랬다가 이제 와 콩 면적을 줄이겠다고 했다가 농민들이 항의하니깐 바로 콩 비축을 늘린다고 하고 도대체 알 수가 없다”라며 “정책이 오락가락하니 농민들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정말 혼란스럽다. 정부가 바뀌니 손바닥 뒤집듯 정책과 소신을 뒤바꾸는 송미령 장관이 이를 주도하는 것 아닌가”라며 장관 인사부터 엇박자가 된 이재명정부의 농정을 우려했다.

논콩 재배면적 감축 움직임이 일단은 진화된 모양새지만, 현장 농민들은 농업정책이 언제 또 어떻게 표변할지 알 수 없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데다 정부에서 수요 확대 등 관련 대안조차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아 농정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무너졌음을 역력히 드러냈다. 아울러 그저 선언에 그치는, 또 다른 예산을 투입해 가공·식품업체 등에 수입산과 국산 콩값의 차액을 지원해주는 등의 한계적 대안에서 벗어나 자급률 제고에 기반한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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