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의 담화는 현재 북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판단, 규정하고 있는지 다시금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남북관계의 장애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보여줬다. 담화 말미에 담긴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재명정부와 ‘실종된 평화의 복귀, 무너진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과제를 안고 취임한 정동영 신임 통일부 장관이 곧바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북은 이번 담화를 통해 ‘조한관계’라는 생소한 용어까지 사용하며 기존 남북관계의 복원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제 한반도에는 남북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만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조한관계’를 인정하고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라는 메시지다.
쉽지 않다. 7월 30일 현재 우리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가 제시할 계산서의 금액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동시에 우리 기업과 농촌에 최대한 피해가 덜 갈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연기 혹은 중단이라는 카드를 섣불리 내밀게 되면 추후 상황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현재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연이은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을 고무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북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연계할 생각이 전혀 없다. 국내 보수 세력의 반발도 충분히 예상된다. 다시 친북, 종북 논란이 터져 나올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이럴 때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남북 민간교류 복원이다. 정부는 지난 시기 단절됐던 민간 차원 남북교류협력의 재개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대북 접촉신고 절차를 간소화하고 적극 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소속 67개 민간단체가 환영 입장을 밝히며 당장 시급한 이산가족상봉과 기후위기 공동대응을 위해 남북 당국 모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남북의 기후위기 공동대응을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농업 분야의 협력이다. 5년 전 김정은 위원장 지시로 기존의 옥수수 대신 밀 재배를 급속히 확대하기 시작한 북은 최근 밀 재배면적이 약 3만여정보(9000만평) 늘어났으며 2021년 대비 3배 이상의 수확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북이 밀 재배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은 밀이 가뭄에 강하고 장마철 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의 기후 조건에 유리해 다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북은 밀 재배 확대 정책 초기 밀 종자를 원활히 수급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후 중국, 러시아 등에서 종자를 수입했지만, 현재는 생산량 증대를 위해 자체적인 품종 개량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의 밀 자급률은 2%대에 머물고 있지만 그동안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품종을 개발해왔다. 지금도 기후위기에 적응할 품종 개량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 모두에게 필요한 밀을 접점으로 다시 농업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 가는 것은 어떨까. 남북 당국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밀이 곧 평화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