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에 분개한 농민들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차 결의대회’라는 이름의 규탄집회를 열었다. 대표자들은 이재명 대통령 면담과 장관 유임 철회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들어갔고, 5일 내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2차 결의대회’로 투쟁을 본격화하겠다는 각오다.
이번 집회는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좀처럼 농민 집회가 열리지 않는 농번기의 한가운데, 더욱이 30도의 염천이 달군 아스팔트 위에 농민이 모였다. 농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27일. 정권 ‘허니문 기간’이 무색한 상황이다. 특히 송미령 장관 유임 결정으로부터 단 일주일 만에 기획된 초고속 집회인데 그럼에도 인원이 700여명이나 집결했다.
집회 주체인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소속단체 대표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끊임없이 지적했던 이 인사의 부당성을 농민들 앞에서 다시 호소했다. 송미령 장관 재임 동안 벌어진 농가경제 악화 실태, 그가 보여 온 농민폄하·농업압박 행태, 현 정부 정책기조와의 괴리, 12.3 계엄내란 방조 혐의 등이 다시 하나하나 도마에 올랐다. 집회에 함께한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송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정책법안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변질시키려 한다며 최근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올라온 농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칠었다. 유영준 광양시농민회장은 “이런 꼴을 보려고 윤석열을 파면시켰나. 농사짓다가 그렇게 힘들게 겨우내 싸웠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농민을 무시하고 있다”고 분개했으며, 노병남 영광군농민회장은 “이 대통령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 죽은 자의 명예를 더럽히고 산 자의 생명을 끊고 있다. 국가가 농민을 버리면 농업이 국가를 버린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분노는 농민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날 (전)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이 집회 1시간 전 기자회견을 열어 송 장관 유임 철회를 촉구했으며, 한국진보연대·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빈민해방실천연대 등의 시민단체가 집회에서 연대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에 배신감을 드러냈다. 진보당·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들도 집회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농민들은 용산 삼각지교차로 일대에서 본집회를 벌인 뒤 대통령실 앞까지 약 400m를 이동해 집회를 이어 갔는데, 이 자리에선 일반 시민들의 규탄발언도 줄을 이었다. 시민 이범석씨는 “송미령 장관이 정말 책임을 지겠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12.3 계엄내란 때로 돌아가 그 자리에서 사직하든지, 아니면 당장 이 자리에서 사직하고 나와야 한다”고 일갈했고, 무지개 머리띠를 한 한 시민은 “이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6개월 광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취임 한 달만에 잊어버리고 송 장관을 임명할 수 있나”라고 탄식했다.
대학생 안유미씨는 “이미 신뢰를 잃은 장관이 대체 뭘 할 수 있나”라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농업과 농민의 삶을 지키고 먹거리가 중요함을 아는 장관과 대통령이다. 더 이상 농업을 망치는 정책은 없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집회를 마무리한 뒤 농민 대표자들은 대통령실 행정관에게 ‘이재명 대통령 면담’ 및 ‘장관 유임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고 그 자리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오는 7월 4일까지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다음주 전국농민 ‘2차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만약 요구가 수용된다면 바로 농성을 중단한다는 계획이다.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12.3 계엄내란 이후, 지난 3월 8일 구속된 윤석열이 걸어나온다는 소식에 광화문 농성장에서 단식을 결의했던 게 생각난다. 그때의 그 결심으로 다시 한번 결의한다. 먹거리주권·식량주권을 위해 이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물러섬 없이 투쟁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