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강호동)가 지난 19일 전체 예산 중 20%를 절감하는 범농협 차원의 고강도 자구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범농협 조직이 자구책을 어찌 실시할지는 두고 봐야 하나, 예산 절감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예측하게 할 ‘징후’ 몇 가지는 이미 엿보이고 있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앞서 3월 6일 농림축산식품부 기자실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당시에도 대대적 구조조정 가능성을 피력한 바 있다. 당시 강 회장은 “농협은 금융 부문의 비상경영 체계를 강화하고, 적자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회장은 그 전부터도 각 농협 계열사에 시설투자 등 ‘불필요한 투자’의 감축을 종용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19일 진행된 범농협 비상경영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계획사업 재조정을 통한 예산 절감 실시 △국내외 출장 자제 △업무상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한 연수 중단 등의 조치를 강화하기로 결정했으며, 향후 각 계열사별 수지개선을 위한 로드맵 설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현재 농협 구조상 ‘적자 계열사’는 대부분 농협경제지주 산하에서 경제사업을 추진하는 계열사들이다. 해당 계열사들은 농축산물의 유통 및 판촉 행위 등을 직접 책임지는 조직들로, 농민조합원과의 연결고리가 농협 산하 금융 계열사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경제사업 담당 계열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제사업 과정의 난항으로 적자 문제를 겪고 있는데, 강 회장으로선 이러한 계열사들이 ‘강도 높은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의 주 대상인 셈이다.
그렇다면 해당 계열사들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던 ‘예산 절감 기조’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 계획일까?
우선 ㈜농협홍삼의 경우, 만성적 적자 문제로 인한 구조조정 가능성이 연초부터 거론됐다. 구조조정 계획 중엔 △농가들로부터 구매하기로 약정했던 잔여 인삼 물량(72억원 어치)의 수매 중단 △농협홍삼 보유 공장의 매각 △인력감축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농협홍삼 측의 계획대로라면, 농협홍삼은 올해 3분기(7~9월)부터 인삼 수매를 중단할 예정이며, 전체 직원의 40%를 감축해 판매·마케팅 중심 조직으로 구조를 조정할 전망이다.
2029년까지 경영구조를 흑자구조로 개선하겠다는 ㈜농협유통 역시 인력구조 개선 및 ‘경영효율화’를 그 방안으로 채택했다. 농협유통 측은 인력구조 개선과 관련해 지난해부터 공공연히 ‘비정규직 확대’를 표방 중이다. 소위 ‘표준인력’을 도입해 전체 직원 중 정규직 비중은 낮추고, 비정규직 비중은 늘리겠다는 입장을 국회 토론회 등 공개석상에서도 서슴없이 밝혔다. 이와 함께, 적자를 기록하는 매장은 폐점하거나 긴축경영(인원 재배치, 비용 절감 등)에 나서도록 유도한다는 게 농협유통 측의 입장이다.
구조조정과 함께 농협 계열사들이 선택하는 또 하나의 방안은 ‘농민 쥐어짜기’다. 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어떻게든 적자를 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농협에서 지출해 온 비용은 줄이고 농민들의 부담을 사실상 가중시킨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최근 ㈜농협사료의 사례다. 농협사료는 이번 달 중 전체 축종 사룟값을 1kg당 15원 인상하고, 다음 달 1일부터 도축해체 수수료를 두당 1만원씩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이에 전국한우협회 측은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한우 1두당 170만원이 넘는 적자를 감당하고 있는 농가에게 사료 가격과 도축비를 동시에 올리겠다는 건 농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결정”이라며 당장 가격 인상 조치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농협중앙회가 범농협 차원에서 20%의 예산을 감축하기로 함에 따라 이상과 같은 기조는 향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농민조합원 및 농협 노동자의 이익에 저해되는 문제는 무엇인지, 농협의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예산임에도 농협 기조를 핑계로 무리하게 예산을 줄이려 하는 사례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