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비상경영’ 기조, 농민·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은

범농협 차원 예산 20% 절감 자구책 시행 밝혀
비정규직 확대 및 농민지원 축소 등 우려 있어

  • 입력 2025.05.23 16:35
  • 수정 2025.05.23 16:36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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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9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3차 범농협 비상경영대책위원회에서 지준섭 농협중앙회 부회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제공
지난 19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3차 범농협 비상경영대책위원회에서 지준섭 농협중앙회 부회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제공

농협중앙회(회장 강호동)가 지난 19일 전체 예산 중 20%를 절감하는 범농협 차원의 고강도 자구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범농협 조직이 자구책을 어찌 실시할지는 두고 봐야 하나, 예산 절감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예측하게 할 ‘징후’ 몇 가지는 이미 엿보이고 있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앞서 3월 6일 농림축산식품부 기자실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당시에도 대대적 구조조정 가능성을 피력한 바 있다. 당시 강 회장은 “농협은 금융 부문의 비상경영 체계를 강화하고, 적자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회장은 그 전부터도 각 농협 계열사에 시설투자 등 ‘불필요한 투자’의 감축을 종용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19일 진행된 범농협 비상경영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계획사업 재조정을 통한 예산 절감 실시 △국내외 출장 자제 △업무상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한 연수 중단 등의 조치를 강화하기로 결정했으며, 향후 각 계열사별 수지개선을 위한 로드맵 설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현재 농협 구조상 ‘적자 계열사’는 대부분 농협경제지주 산하에서 경제사업을 추진하는 계열사들이다. 해당 계열사들은 농축산물의 유통 및 판촉 행위 등을 직접 책임지는 조직들로, 농민조합원과의 연결고리가 농협 산하 금융 계열사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경제사업 담당 계열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제사업 과정의 난항으로 적자 문제를 겪고 있는데, 강 회장으로선 이러한 계열사들이 ‘강도 높은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의 주 대상인 셈이다.

그렇다면 해당 계열사들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던 ‘예산 절감 기조’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 계획일까?

우선 ㈜농협홍삼의 경우, 만성적 적자 문제로 인한 구조조정 가능성이 연초부터 거론됐다. 구조조정 계획 중엔 △농가들로부터 구매하기로 약정했던 잔여 인삼 물량(72억원 어치)의 수매 중단 △농협홍삼 보유 공장의 매각 △인력감축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농협홍삼 측의 계획대로라면, 농협홍삼은 올해 3분기(7~9월)부터 인삼 수매를 중단할 예정이며, 전체 직원의 40%를 감축해 판매·마케팅 중심 조직으로 구조를 조정할 전망이다.

2029년까지 경영구조를 흑자구조로 개선하겠다는 ㈜농협유통 역시 인력구조 개선 및 ‘경영효율화’를 그 방안으로 채택했다. 농협유통 측은 인력구조 개선과 관련해 지난해부터 공공연히 ‘비정규직 확대’를 표방 중이다. 소위 ‘표준인력’을 도입해 전체 직원 중 정규직 비중은 낮추고, 비정규직 비중은 늘리겠다는 입장을 국회 토론회 등 공개석상에서도 서슴없이 밝혔다. 이와 함께, 적자를 기록하는 매장은 폐점하거나 긴축경영(인원 재배치, 비용 절감 등)에 나서도록 유도한다는 게 농협유통 측의 입장이다.

구조조정과 함께 농협 계열사들이 선택하는 또 하나의 방안은 ‘농민 쥐어짜기’다. 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어떻게든 적자를 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농협에서 지출해 온 비용은 줄이고 농민들의 부담을 사실상 가중시킨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최근 ㈜농협사료의 사례다. 농협사료는 이번 달 중 전체 축종 사룟값을 1kg당 15원 인상하고, 다음 달 1일부터 도축해체 수수료를 두당 1만원씩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이에 전국한우협회 측은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한우 1두당 170만원이 넘는 적자를 감당하고 있는 농가에게 사료 가격과 도축비를 동시에 올리겠다는 건 농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결정”이라며 당장 가격 인상 조치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농협중앙회가 범농협 차원에서 20%의 예산을 감축하기로 함에 따라 이상과 같은 기조는 향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농민조합원 및 농협 노동자의 이익에 저해되는 문제는 무엇인지, 농협의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예산임에도 농협 기조를 핑계로 무리하게 예산을 줄이려 하는 사례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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