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주기적 기억상실

  • 입력 2025.04.06 18:00
  • 수정 2025.04.06 20:35
  • 기자명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지난 3월 초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국제사회가 판단하기에 올해 역시 북한의 식량 사정은 만만치 않을 것처럼 보인다. FAO가 지난달 7일 발표한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보고서에 북한이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45개국 명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FAO가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19년째 등재다. FAO는 “북한 내 식량 소비 수준이 낮고 주민들이 다양한 식품군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가오는 5∼9월 춘궁기에 식량 불안이 여전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농촌진흥청 발표 역시 비슷하다. 2024년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량은 약 478만톤으로 전년 대비 4만톤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쌀 생산량은 215만톤으로 전년 대비 4만톤 증가했고, 밀과 보리가 28만톤으로 전년 대비 6만톤 증가했다. 반면 옥수수는 161만톤으로 전년 대비 9만톤 감소했다. 쌀과 밀, 보리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옥수수, 감자, 고구마, 콩 등의 생산량이 더 많이 줄어 전체적으로 총생산량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식량작물 생산구조의 전환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 눈에 띄는데 정은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식량 작물별 생산량 변화가 “북한이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2021년 단행한 농업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단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북한의 작물별 생산량 정책 변화가 아직 전체 식량 생산량 증대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북한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지난 2월 <노동신문>은 4년 동안 얻은 농업 분야의 주요 성과들을 4회에 걸쳐 소개했다. 북한 당국은 농촌살림집 건설, 과학농사 및 쌀과 밀·보리 중심의 알곡생산 구조 전환, 관개시설 확충 및 농기계화율 제고, 농업근로자의 의식 개조 등을 농촌 진흥을 이끈 핵심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해 말 제8기 제11차 당 전원회의를 통해 2024년 과학농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또 다시 풍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지난 2월 10대 최우수농업군과 30대 최우수농장을 선정해 시상하는 등 알곡 정보당 수확고를 높이기 위한 경쟁 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최우수 농업군과 농장의 선정 기준은 선진 영농법과 기술 도입, 농업정보화, 관개건설, 기계화 비중 등에서 앞선 곳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100%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에도 무리가 있고, 위성사진이나 탈북자들의 증언 등으로 추정한 자료 역시 무조건 신뢰하긴 어렵다. 다만 올해 당 창건 80주년과 내년 제9차 당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민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이 제시한 2025년 민생 관련 주요 정책과제 중 첫 번째가 식량 생산계획 달성이다.

2019년 이후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은 긴장과 갈등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서 북한은 적대와 무관심, 혐오와 조롱 사이를 오가고 있다. 정부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마지막으로 이뤄진 게 2018년 산림 병해충 방제약품 지원(12억원)이다. 민간 차원 지원도 2023년 아동영양 사업(9억원) 이후 끊겼다. 지난 2024년은 29년 만에 대북 인도적 지원이 단 한 푼도 이뤄지지 않은 해가 됐다.

우리는 남북이 분단돼 있다는 것,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만나야 하고 서로 더 알아가야 한다는 것, 평화와 통일을 우리가 아닌 그 누군가가 대신 이뤄줄 수 없다는 것을 주기적으로 잊는 것 같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상황이 그저 남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비정상이 마침내 정상으로 돌아오면 잊어버린 기억도 돌아올 수 있을까.

키워드
#지금북녘은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