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촌이 읍·면 자치권 공동 요구해야

  • 입력 2025.03.02 18:00
  • 수정 2025.03.02 18:49
  • 기자명 하승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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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이 지난 2월 25일로 종결됐다. 이제 남은 것은 선고뿐이다. 선고 결과에 대해 언론들이 이런저런 예측 보도를 하고 있지만, 의미 없는 보도라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막판에 임기 단축까지 시사하면서 파면을 모면하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의미 없는 시도이다.

헌법재판관들로서는 윤석열을 파면시키지 않을 방법이 없다. 윤석열을 파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든 ‘헌법상의 요건과 절차를 어기고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된다’는 선례를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다.

다가오는 조기 대선, 농촌의 공동 요구는?

윤석열이 파면되면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된다. ‘조기 대선에서 과연 농업과 농촌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논의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최근에 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다. 농업, 농촌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정책들이 논의될 수 있을까?

내란이라고 하는 워낙 큰 사태 직후에 치러지는 총선인 데다가 선거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 또한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지자들이 최대한 결집을 해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정책이 논의될 공간 자체가 매우 협소한 선거가 되기 쉽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시기에 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대선이라고 하는 큰 정치적 계기에서 아무런 정책이 논의되지 않으면, 대선 이후에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농업 분야와 관련해서는 농민들의 소득보장,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피해에 대한 대책, 농지보전, 청년농민들에 대한 올바른 지원방안 등 논의돼야 할 주제들이 많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가 강행하고 있는 벼 재배면적 감축 같은 현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농업 분야와는 별개로 농촌과 관련해서도 논의가 돼야 한다. 농업과 농촌은 연결돼 있지만, 구분되는 측면이 있다. 농촌 정책은 농촌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농촌의 공간을 보전하며, 농촌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등 별도로 논의가 필요한 분야이다. 지금 전국의 농촌들이 부딪히고 있는 인구감소와 인구유출, 고령화, 교육·의료·교통 등 생활기반의 축소, 난개발과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한번 박탈당한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읍·면 자치권 확보 없이는 농촌이 부딪히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가기는 어렵다. 농촌이 미래가 없으면, 대한민국도 미래가 없다. 그런 절박함이 모이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전남 화순군의 한 면 소재지 풍경. 한승호 기자
한번 박탈당한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읍·면 자치권 확보 없이는 농촌이 부딪히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가기는 어렵다. 농촌이 미래가 없으면, 대한민국도 미래가 없다. 그런 절박함이 모이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전남 화순군의 한 면 소재지 풍경. 한승호 기자

읍·면 자치 기반으로 농촌의 삶 개선해 나가야

농촌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은 읍·면의 자치권이다. 특히 면(面) 지역의 경우에는 자치권 없이 지역을 활성화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읍 지역은 그래도 면 지역으로부터 인구를 흡수해서 인구가 유지되는 곳도 있고,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그 정도가 덜하다. 그런데 전국의 면 지역은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해 왔고, 그 결과 주민들의 삶의 기반이 축소·악화되고 있다. 면 지역 인구감소의 주된 원인은 인구유출이다. 사망으로 인한 자연감소도 있지만, 그것은 어느 지역이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가 유출되고,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가 적은 것이다. 그리고 인구감소의 결과 병원이 없어지고, 학교가 없어지고, 버스가 다니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가게와 식당조차도 없어지고 있다.

1980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3743만명이던 시절에 면 지역 인구는 1146만명이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가 면 지역에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2023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5177만명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면 지역 인구는 453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면 지역에 사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면 지역이 위축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면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치권이 없기 때문이다. 면장은 군수·시장에 의해 임명되는 공무원들이 짧은 기간 머무르는 자리이고, 면사무소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면은 군의 하부행정조직에 불과하고, 자치권이 없다. 면사무소의 예산은 1년에 몇억 정도 규모이고 대부분 경상적으로 사용되는 돈이다. 면에서 벌어지는 사업도 예산권은 군청에서 갖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각 면의 실정에 맞게 인구감소에 대한 대책도 세우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대책도 세워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주민자치회로 전환한 지역의 경우에는 주민자치회에서 면 단위 발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돼 있지만, 계획을 수립해 본들 예산과 권한은 모두 군청에서 갖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면 지역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것은 면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구감소와 지역침체를 겪고 있는 읍 지역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중앙정부나 군청에서 하향식으로 계획을 짜고 사업을 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런 식의 사업으로는 건물을 짓고 공사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을 불러들이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어렵다.

읍·면 자치권 확보의 현실적 방안 찾아야

1961년 5월 16일 이전에는 읍·면이 기초지방자치단체였다. 그런데 5.16 직후 읍·면 자치가 중단됐다. 그리고 그 후 6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 당장 읍·면 단위를 기초지방자치단체로 부활시키기는 어렵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여전히 농촌지역의 경우에 읍·면 정도가 기초 지방자치의 단위로 돼 있지만, 우리의 경우 64년의 단절을 단박에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는 읍·면 자치권 확보의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꼭 한 가지 방안일 필요는 없다.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고, 각 읍·면의 실정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지역은 주민자치회와 이장단협의회가 근린의회같은 역할을 하면서, 면사무소와 협력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지역은 면장을 직선이나 주민 추천으로 뽑고 임기를 보장해서, 면장이 주민자치회나 이장단협의회 등의 조직과 소통하면서 자치를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읍·면 자치가 실질적인 의미가 있으려면, 주민자치회의 권한과 역할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주민자치회로의 전환이 지지부진한 지역의 경우에는 전환을 촉진할 필요도 있다. 읍·면의 권한도 점진적으로 늘리고, 읍·면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중요한 경제주체인 농협, 신협 등과도 협력하는 모델도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 발을 딛고 ‘한국형 읍·면 자치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모델들을 만들고 지역 실정에 맞게 시도를 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한다. 일반법인 지방자치법을 통해 보장하는 것이 어렵다면, 특별법인 ‘지방분권균형발전법’을 통해서 읍·면 단위에서 다양한 자치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을 조기 대선에서 정책으로 논의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영남이든 호남이든, 충청, 강원, 제주, 경기든 필요한 일이다. 전국의 농촌지역이 공동으로 요구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읍·면 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

지난 2월 9일 읍·면 자치권 확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충남 홍성에서 모여서 집담회를 했다. 그리고 ‘읍·면 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을 결성해서 조기 대선과 2026년 지방선거라는 계기를 맞아 읍·면 자치권 확보를 위한 운동을 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공동행동은 읍·면 단위에서 활동하는 주민조직들, 읍·면 자치권 확보에 동의하는 단체와 재단, 지역언론,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추진을 위한 공동사무국은 마을학회 일소공도,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지역재단, 공익법률센터 농본, 한국마을연합, 주민자치회 법제화 전국 네트워크가 맡기로 했다.

앞으로 한국형 읍·면 자치 모델을 모색하기 위한 학습과 토론도 해 나가고,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활동도 해 나갈 예정이다. 국가 차원의 법제도가 개선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지방자치 차원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갈 예정이다. 주민자치회 전환 확대, 읍·면장 주민추천제, 읍·면 발전계획 수립 및 자율예산 확보 등은 지금의 법제도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한번 박탈당한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읍·면 자치권 확보가 없이는 농촌이 부딪히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가기는 어렵다. 농촌이 미래가 없으면, 대한민국도 미래가 없다. 그런 절박함이 모이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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