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은 농민이 농협 문제에 대응할 때도 적용된다. 특히 농협 조직이 농민의 돈을 어떤 식으로 쓰고 있고, 앞으론 어떻게 쓰려 하는지 농민조합원 스스로 잘 점검하는 것은 향후 농민조합원의 권익 향상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하원오, 전농) 협동조합개혁위원회(협개위)는 지난 12~13일 세종시 홍익대 국제연수원에서 2025년 농협예산 대비교육을 진행했다. 이용희 전농 협개위원장이 전농 회원과 지역농협 대의원, 이·감사 및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교육은 △지역농축협의 예산 활용 방식 △예산 편성 및 활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농민들도 놓칠 법한, 농민이 되찾아야 할 각종 권리 등을 대대적으로 알림으로써, 농민이 각 지역농축협 조합원으로서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가게 만들자는 취지로 열렸다.
다가오는 2025년, 현장 농민들은 농협의 예산 편성·활용 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1박 2일 교육 동안 이용희 위원장이 ‘족집게’로 집어준 내용을 중심으로 농협의 내년도 예산 편성 계획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살펴보자.
경제사업 이행기준, 어느 정도로 설정했나
매년 지역농협들은 전체 매출액 중 일정 수준 이상은 경제사업을 통해 거둘 것을 명시하는 ‘경제사업 이행기준’을 마련한다. 2025년도 경제사업 이행기준은 올해 9월 말의 입지유형별 경제사업 이행기준(목표량)을 참고해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를 따져서 정해진다. 농촌 지역농협 대상 경제사업 이행기준 목표량은 전체 매출액의 최소 39.5% 이상이다.
이용희 위원장은 “농협중앙회에선 경제사업 이행기준을 최소한 60.5% 이상은 잡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1111개 지역 농축협 중 경제사업 이행기준이 60% 미만인 조합이 지난해 기준 360군데였다”며 “그나마 도시 지역농협은 마트·주유소를 보유했기에 이행기준을 높게 설정하는 편이나, 농촌 지역농협의 경우 마트 매출을 키우기 어려우니만큼 조합원의 농산물을 잘 팔 수 있도록 구조개선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업무용 부동산 투자비율 준수해야
때로는 부동산 등의 영역에 과도한 투자를 감행해 지역농협을 파산 위기로 몰고 가는 사례도 눈에 띈다. 이를 막을 조치 중 하나로, 농민조합원들은 지역농협이 투자비율을 준수하며 투자를 진행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농협 재무기준」에서 정한 바에 따르면, 업무용 부동산 투자비율은 지역농협 자기자본의 100% 이내여야 한다. 일정규모 이상의 업무용 부동산 투자 시엔 농협중앙회의 사전 심사 및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참고로, 농협중앙회와 금융감독원(금감원)에서 권장하는 비율은 자기자본의 65% 이내다.
일부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과도한 업무용 부동산 투자를 감행하면서 이사회에선 “중앙회 승인을 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만큼, 어느 정도의 업무용 부동산 투자가 이뤄졌는지 살필 필요성이 제기된다.
농협 자금차입 한도 관리 철저히 해야
지역농협이 자금차입을 통해 부동산 등에 고정투자를 진행할 시, 농협중앙회가 정한 ‘농축협 자금차입한도‘를 넘어서는 건 아닌지, 특히 경우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등의 승인을 제대로 받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정한 차입금별 배정기준에 따르면, 지역농협이 자기자본의 5배를 초과하는 사업자금(신용사업, 신용 외 사업 막론)을 빌릴 시 농식품부 장관 승인을, 자기자본의 3~5배에 달하는 신용사업자금을 빌릴 시 농협중앙회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역농협 예산총회 시 차입금과 관련해선 이상과 같은 부분, 특히 지역농협이 차입금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 꼭 확인하라는 게 이 위원장의 당부다. 이상의 내용은 원래 농협 예산 편성지침에 별도로 담기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매년 차입 과정에서의 각종 부실 발생, 농식품부·농협중앙회로부터의 제대로 된 승인을 받지 않는 문제 등이 발생함에 따라 2025년도 편성지침엔 추가됐다.
대손충당금 과다적립 여부 따져야
사업 과정의 손실을 메꾸기 위해 각 지역농협에서 적립하는 금액인 대손충당금. 지역농협들이 이 대손충당금을 과도하게 적립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도 상시적으로 제기된다.
금감원에서 각 금융기관별 자산건전성 상태에 따라 권고하는 대손충당금 적립율은 △정상 1% △요주의 10% △고정 20% △회수의문 55% △추정손실 100%다. 지역농협별로 이 기준을 초과하며 대손충당금을 과다적립함으로써 농민조합원에게 돌아가야 할 출자금이나 이용고 배당금이 못 돌아가는 상황이 없게끔, 지역농협마다 대손충당금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적립 중인지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출하장려금·직접취급장려금, 꼭 받자
도매시장법인들이 농산물 출하자에게 지급하는 출하장려금. 최근 전남 광양 농민들이 광양농협을 대상으로 ‘출하장려금 환수 투쟁’을 전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일부 지역농협은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출하장려금을 자신들의 수익으로 포함시켜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위원장은 “농민조합원들은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하는 과정에서 위탁수수료를 낸다. 농민은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면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만큼, 출하장려금은 농협이 가져갈 게 아니라 농민이 가져야 하는 돈이 맞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민이 지역농협으로부터 비료 등 농자재를 수급할 시, 농민이 조합 창고에서 직접 농자재를 인수해 가면 판매가격을 1포당 300원씩 깎아주는데, 이 보전금액을 '직접취급장려금'이라고 한다. 농민이 직접 농자재를 가져갈 시 직접취급장려금도 놓치지 말고 챙겨야 한다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우리 농협의 판관비 비중은 얼마
지역농협의 매출총이익 중 판매비와 관리비(판관비)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판관비 영역엔 인건비와 복리후생비, 임차료와 접대비 등이 포함된다.
이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기업은 보통 55% 이하로 판관비 비율을 유지하고, 최악의 경우라도 70% 이하여야 정상이다. 참고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도산했던 대우그룹의 경우 도산 전 판관비 비율이 73%였다.
문제는 지역농협의 판관비 비율은 일반기업들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전체 농축협 매출총이익 중 판관비 편성비율은 2021년 81.5%, 2022년 78.8%, 지난해 80.8%였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농협이 안 망하는 건 “그만큼 농협이 농민들에게 빨대를 꽂고 있기 때문(착취한다는 뜻)”이라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또는 규정상 맞지 않게 지급되는 판관비 명목의 비용이 없는지 잘 점검해야 한다. 특히 복리후생비와 관련해, 일선 농협 중엔 봄·가을 체육행사나 5월 1일 ‘근로자의 날’ 행사, 지역농협 창립기념행사 등이 있을 시 행사비 집행 외에 직원 개개인에게 현금을 성과급마냥 지급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이런 사례가 없는지 잘 감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교육지원사업비, 적절하게 신청하자
교육지원사업비는 지역농협이 농민조합원을 위한 영농지도 및 교육, 문화·복지 사업 등의 목적으로 쓸 돈을 뜻한다. 농협중앙회는 각 조합별 경영여건을 고려해 각 연도 말 예상 매출총이익 증가율 범위 이내로 교육지원사업비를 편성하라고 권고한다.
참고로 지난해 전체 농축협의 매출총이익 대비 교육지원사업비 집행 비율은 평균 9.9%였는데, 농협중앙회에선 최소 6.5% 이상은 교육지원사업비 예산으로 책정하라고 권한다. 아무리 낮아도 지역농협 매출총이익의 6.5% 이상은 교육지원사업비로 책정해, 농민에게 도움 되는 사업을 제대로 집행하라고 권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각종 교육지원사업 중에서도 실익성 사업, 예컨대 숙원시설설치지원비·유통지원비·재해지원비·영농자재지원비 등 영농 과정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사업의 집행 비율이 높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작 전체 농축협의 실익성 비용 집행 비율은 2021년 65.1%를 기록했다가 2022년 61.6%, 지난해 60.2%로 점점 줄었다.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둔 해엔 각종 선심성 지원 등으로 실익성 비용 집행률이 높아졌다가, 선거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집행률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교육지원사업비 항목은 영농지도 사업비(농약 방제 기술교육, 농민 소득증대를 위한 지원사업, 귀농·귀촌자 정착 지원, 농촌인력중개센터 신규 개설 등)부터 생활지도사업비(이민여성 직업교육, 농촌왕진버스 운영, 다문화가족 자녀교육 지원, 영농도우미·행복채우미 활성화 지원 등), 홍보선전사업비, 복지지원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큼, 각 지역 실정에 맞게 필요한 사업을 농협중앙회에 신청하면 된다.
지역농협 PF대출 인한 부실 심화 예상
이번 교육에서 이 위원장이 추후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으로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지역농협들의 부동산·건설 분야 고위험 공동대출로 인한 부실 심화 문제였다. 예컨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의 고위험 대출에 지역농협들이 공동으로 나섰는데, 최근의 건설 경기 악화로 인해 해당 농협들이 그대로 ‘폭탄’을 떠안을 상황이란 뜻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슬슬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적자가 심화되는 지역농협들이 늘어났다. 내년엔 (PF대출로 인해) 지역농협들로선 가장 어려운 시기가 도래하리라 본다”라며, 지역농협들이 향후 사업계획을 정말 잘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특별성과급 등 임직원 이익과 직결되는 판관비를 건드려야 하는 문제 때문에 조합장들이 이에 대한 고민을 안 하거나 알아도 나서지 않는다는 게 이 위원장의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