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Q 증량, 식량자급률 낮추는 정책이다

  • 입력 2023.05.28 18:00
  • 수정 2023.05.29 07:05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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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5월의 서울 아스팔트 위에는 지역에서 상경한 양파, 마늘 농민들로 가득 찼다. 농민들은 정부의 수입의존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 위해 일 년 중 가장 바쁘다는 성출하기를 앞두고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저율관세할당(TRQ) 증량에 대한 예고는 9개월 동안 피땀 흘린 농민들의 노고를 짓밟는 것과 마찬가지다.

며칠만 있으면 전국의 신선한 햇양파가 시장으로 쏟아져나올 예정이다. 작황이 좋지 않은 지역도 있지만 TRQ를 증량해서 들여와야 할 만큼 국내 양파 생산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농민들은 지난해 폭등한 생산비를 감당해내며 농사를 이어왔다. 성출하기를 잘 끝내고 좋은 성과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정부는 농산물 수입을 통해 국내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가능성을 차단했다.

우리나라는 63개 품목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TRQ를 운용하고 있다. 2015년 가장 마지막으로 관세화로 전환한 쌀은 40만8,700톤이 TRQ로 100% 이행돼 들어오고 있다. 저율관세의 농작물 수입은 국내 수급상황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반드시 정해진 물량을 모두 들여와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행률이 낮은 품목도 많다. 그만큼 국내 상황을 보면서 운용을 조율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된 양보다 더 많이 수입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1995년 WTO가 출범한 지 28년이 지났다. 다자간무역협정인 WTO는 출범 이후 첫 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을 통해 WTO의 방향을 설정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괄 타결하고자 했던 방식은 계획대로 잘되지 않았고 2001년 출범 이후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농업보조금 감축 수준 등 쟁점에 대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그룹과의 이견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종적인 합의가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상은 DDA가 무력화됐다고 대다수가 판단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주장했던 TRQ 증량과 관리 방법에 대한 규범 강화는 농산물 수입국 입장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증량을 통해 저율관세의 물량을 늘리는 것은 국내 농가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

‘시장접근물량 증량에 관한 규칙’에서는 증량이 생산농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해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수입농산물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국내산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것이 핵심이다. 가격 차이로 외식업계에서는 수입산을 선택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만큼 국내 농산물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경쟁력에서 수입농산물이 국산보다 더 앞서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줄 필요는 없다.

농산물 수입자유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농민들에게 수입 문제는 생존이 걸린 민감한 문제다. 외국 농산물이 무분별하게 수입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권장하는 분위기는 국내 농산물을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목표하고 있는 식량자급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 농업 여건이 개선되고 농민들이 건재해야 가능하다. 식량자급률 향상은 농지보전을 통해 안정적으로 생산기반을 증대시켜나가는 것이 기본이지 수입량 증대는 정답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정녕 식량주권 실현을 이루고자 한다면 수입의존이 아닌 국내 생산안정에 힘써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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