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늘 농가 “‘마이너스 농사’ 피할 길 없다”

  • 입력 2023.05.26 10:00
  • 수정 2023.05.28 21:04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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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3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일원의 포전에서 마늘 수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농민들은 생산비 폭등과 생산량 저하, 농협 수매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올해 ‘마이너스 농사’가 불가피할 거라 내다봤다.
지난 23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일원의 포전에서 마늘 수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농민들은 생산비 폭등과 생산량 저하, 농협 수매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올해 ‘마이너스 농사’가 불가피할 거라 내다봤다.

 

“통장에 들어오는 건 없고, 나가는 것뿐이다. 생산비는 오르고 이상기후로 수확량은 30%가량 줄었는데, 농협 수매가격마저 지난해보다 낮아 수확을 하면서도 한숨밖에 안 나온다.”

지난 23일 막바지 수확 작업이 한창인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원의 한 마늘밭에서 농민이 허탈함을 털어놨다. 이날 만난 제주 마늘 재배 농민들은 정부의 단편적인 수입 중심 수급대책과 농협의 소극적인 수매가 결정 등을 비판하며, 제주 마늘 산업 사수를 위한 장기적인 시각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정읍 영락리 일원에서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30년 경력의 농민 김문택(64)씨는 “마늘 농사만 1만2,000평 정도 짓고 있는데 싹이 나올 땐 잠도 못 자고 밤새 작업을 할 정도다. 마늘은 수확할 때까지 사람 손이 12번도 더 들어가는 품목이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고용하는 농민이 오히려 을이고, 외국인력들이 갑인 상황이다. 갑과 을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제때 인력을 구하려면 부르는 대로 값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라며 “인건비가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생산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 것도 무시무시한 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마늘이 커야 할 시기에 폭우가 내리는 등 올해 유독 이상기후가 심해 수확량이 줄고 품질도 떨어졌다. 가격이 지난해랑 똑같아도 본전치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농협 수매가가 지난해보다 떨어져 농민들은 수확과 동시에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김씨는 “정부에선 소비자 물가를 얘기하면서 마늘을 비롯해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수입하고 비축 물량 풀어버리고 하는데, 농산물 가격이 떨어질 때의 대책은 전혀 내놓질 않는다. 값이 오른다고 농민들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떨어질 때의 손해는 오롯이 농민들이 다 보는 구조다”라며 “결국 농민만 계속해서 피해를 보는 거다. 제주 농민들은 1년 농사가 마늘 농사고 이걸로 생계를 꾸리는데, 마늘값은 생산비에도 못 미치고 마늘 대신 심을 만한 작목도 마땅치 않아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한 지경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17일 제주 대정농협은 수매단가를 kg당 3,200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1,200원 낮게 책정했다. 대정농협 관계자는 “생산비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한 금액이다”라고 설명했지만, 농민들은 kg당 3,200원으론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귀포시 대정읍에선 제주 마늘의 70%가 재배되고, 제주도는 전국서 가장 먼저 마늘을 수확하는 지역이다. 이에 대정농협의 수매가는 도내 농협의 수매가는 물론 전국 마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농민들이 요구한 적정 수매단가는 kg당 4,000원이었다. 평당 2,000원에 달하는 토지 임대료를 비롯해 농약·비료값, 유류비, 전기료 등 안 오른 것이 없는 생산비도 문제지만,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에 부르는 게 값이 돼 버린 인건비를 고려해 농가 생계를 위한 최저가격인 셈이다.

강경택 제주도마늘생산자협의회장은 “생계유지를 위한 최저가격으로 kg당 4,000원을 보장해달라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수매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농민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농협이 이사회를 통해 수매가를 정하는 만큼 농민들이 재논의를 요청해도 이사들의 고유 권한이라 해버리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것이다”라며 “농협의 수매가 결정에도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 인력난에 생산비 폭등, 이상기후 등으로 인해 제주 마늘 농가의 상황이 극한에 치달은 만큼 산업 사수 차원에서 마늘 가격 지지를 위한 농협의 적극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다. 농가들이 직접 제주도에 물류비 및 저장보관료, 가격 하락 시 손실보상금 지원 등을 요구 중인데 비계약물량 수탁을 받아들인 농협에선 수탁 외에 아무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더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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