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여건 속 농가와 농협·도정 간 ‘동상이몽’ 지속

대정농협 등 계약농가 ‘비계약 물량’도 수탁하기로 결정했지만
낯선 방식•미흡한 판매 계획 탓에 농가 참여 망설이는 분위기
마늘생산자 비상대책위 “최저가격 보장•정부 수매 비축” 요구

  • 입력 2023.05.26 10:00
  • 수정 2023.05.26 11:42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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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열악한 여건 속 햇마늘이 가장 먼저 수확되는 제주에선 농가들이 선제적으로 나서 농협이 계약농가의 비계약 물량까지 전량 수매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를 수탁으로 거래한다는 점과 수탁받은 마늘의 판매 계획 등이 미흡한 점, 가격 하락과 생산량 저하가 충분히 예견됨에도 어떠한 대책도 강구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농가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농협과 정부, 제주도를 향한 농민들의 분노 또한 거세지는 상황이다.

수탁은 농협이 농민의 농산물을 ‘맡아’ 판매하는 개념으로, 농협이 해당 농산물을 판매해야만 남은 잔금이 정산되는 특징이 있다. 시장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농협이 해당 농산물을 오랜 기간 판매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이 경우 잔금을 바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농가들 사이에선 참여를 망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관련해 강경택 제주도마늘생산자협의회장은 “여러모로 어렵고 힘든 상황이 계속되는 만큼 (계약)농가의 비계약 물량을 전량 수매해달란 농가 요구가 받아들여진 건 안도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농협의 수탁 판매 계획에 대해 전혀 공유되는 바가 없어 농민들은 여전히 불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농협이 수탁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농민들이 망설이자 상인들이 벌써 일부 개입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농가 입장에선 수확한 마늘을 오래 보관할 수 없어 빨리 팔아야 생산비도 갚고 이자도 갚을 수 있기 때문에 수탁 판매 일정이 불확실할 경우 가격이 낮더라도 상인에게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좀체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제주 마늘 주산지인 대정읍을 중심으로 마늘생산자 비상대책위(임시의장 오창용, 비대위)가 꾸려졌고, 지난 18일 비대위는 대정농협과 제주도청 앞에서 ‘마늘 생산비 보장과 제주농업 사수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농민들은 대정농협의 kg당 3,200원 수매가 결정을 규탄함과 동시에 △농협 미계약 물량에 대한 제주도 차원의 별도 수매 대책 마련 △최저가격 보장 △수급조절을 위한 3만톤 정부 비축 등을 요구했다. 지난 23일 만난 오창용 비대위 임시의장은 “협동조합이라는 본질을 잊고 농협이 조합원인 농민을 우롱해 수매가를 kg당 3,200원으로 지난해 4,400원보다 훨씬 낮게 책정한 것도 모자라 계약농가 비계약 물량을 수탁으로 판매한다는 건 힘없는 농민의 고혈을 짜는 것밖에 안 된다. 농민을 무시하는 행위인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덧붙여 오 임시의장은 “물론 지금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지난해 수입으로 올해 마늘 농가를 위험에 빠트린 농림축산식품부에 있지만, 제주도와 농협 역시 자유로울 순 없다”면서 “가격이 낮을 때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다가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수입하고, 저율관세할당(TRQ)을 늘리고 또 비축물량을 풀어버리는 정부 행태가 계속되다 보니 농협도 소극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일부분 이해는 하지만 농협은 결국 농민을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최저가 보장과 농가 보호, 마늘 산업 사수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농협 측에선 수탁 물량의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은 데다 계약재배 물량을 받느라 상황이 여의치 않아 수탁 판매처나 계획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주도 또한 소극적인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농민들이 최저가격 보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요구한 △물류비 지원 △저장보관료 지원 △손실보전금 지원 △미계약 물량 별도 수매 등에 대해 제주도청 관계자는 “지금 현재 상황(가격 폭락)이 발생하진 않았기 때문에 시장과 유통 실정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볼 예정이다. 농협 수매가는 결정이 됐지만 시장 가격이 어떻게 형성될지, 실제 작황이 어떨지 전국적으로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한편 폭등한 생산비에 이상기후로 인한 수확량 감소도 모자라 수매가 하락까지 제주 마늘 농가를 힘들게 하고 있다. 아울러 햇마늘 수확기가 도래했으나 지난해 정부가 수입한 마늘 탓에 유통·가공업자 재고량이 상당히 남아 있는 상태고, 통계청이 발표한 마늘 재배면적·생산량 증가 예측이 더해져 시장 거래까지 그 어느 때보다 저조한 실정이다. 농가와 농협·지자체·정부 간 ‘동상이몽’이 계속되는 가운데, 선제적인 수급 대책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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