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인사들, 과연 국가 존립 위협했나? “국민참여재판으로 가야”

검찰자료 1만쪽 이상, 재판 준비는 열흘 남짓 … 제주지법 연기 요청 '묵살'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건 법률 아닌 정치적 판단, 다양한 사회적 판단 필요”

  • 입력 2023.04.25 12:23
  • 수정 2023.04.26 17:3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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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혐의로 지난 5일 기소된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과 진보당 제주도당 전·현직 위원장의 방어권 보장과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울러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의 쟁점인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할 수 있나'에 대해 각계의 다양한 판단이 중요한 만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제주대책위원회와 소위 ‘제주 간첩단’ 조작 사건 변호인단이 지난 24일 1차 재판이 열린 제주시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참여재판 수용 △헌법상 방어권 보장 △간첩조작과 날조 자행하는 국정원과 검찰 규탄 △간첩 조작 중단 및 국정원 대공수사권 철저 이관 △국보법 위반 혐의 수감자 모두 석방을 촉구했다.

세 사람은 지난 5일 기소됐으나 첫 재판이 약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 12일에서야 공소장을 전달받았다. 변호인단은 방어권 보장을 위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재판 연기를 신청했으나 재판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는 불허했고, 국민참여재판 진행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사건 담당 고부건 변호사는 “재판부가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어 걱정이 많다”면서 “변호사가 둘인데, 이 사건과 관련해 서울에서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 겹치지 않게 일정을 조절해 달라 했으나 묵살됐다. 재판권 남용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고 변호사는 “검찰 기록이 1만쪽이 넘는다. 그래 놓고 우리더러 재판 지연 운운하며 빨리 하라고 한다”면서 “재판 지연은 오히려 검찰이 하고 있다. 6년간 수사하고 50일간 구속 수사를 했으면 자료를 압축해서 내야 피고인도 방어하고 재판부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1만쪽을 제출해 놓고 ‘뭐하나 얻어 걸려라’ 하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할 수 있는가인데, 이는 법적 규정이 아닌 정치적 해석이자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재판부의 일방적 판단이 아닌 국민 배심원들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입장이다.

제주지방법원 전경. 제주지방법원 홈페이지
제주지방법원 전경. 제주지방법원 홈페이지

이날 재판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변호인과 이를 반대하는 검찰 측의 논리가 맞섰다.

고부건 변호사는 검찰이 '법적 쟁점이 많아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아주 어려운 사건이다', '배심원들이 직장에 나가야 하니 재판하러 모이기 어렵다', '국정원 수사관의 신분이 노출된다' 등의 이유로 국민참여재판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고 변호사는 “주가조작, 회계부정 같은 사건이면 대단히 어렵겠으나 이 사건은 단체 활동가들이 캄보디아에서 북한 사람을 만났는지 여부, 이들의 활동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한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라 대단한 법적 지식은 필요 없다”면서 “배심원들이 직장에 나가서 어렵다는 것도 전혀 앞뒤 안 맞는 주장이다. 신분 노출이 우려된다던 국정원 수사관은 심지어 이날 재판 방청까지 참여했다”고 반박 내용을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보법이 문제 삼는 회합, 통신, 동조행위 등은 분명히 국가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해치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직업 법관들은 그런 행동 자체가 무조건 자유민주적 질서와 국가 존립을 위협한다고 수학 공식처럼 판단하곤 하지만 대한민국이 행동만으로 무너질 만큼 허술한 나라는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고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설령 그런 행동을 했어도 그것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해치는지를 건전하고 평균적인 국민의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거다”라면서 “직업 법관이 특정 행동에 대해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을 해친다고 하면 국민은 그런 줄 알아야 하나, 그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보법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조항이 없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대법원 판례다. 2023년 현재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북한을 단체가 아닌 국가로 봐야 한다, 북한과 남한은 적대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갈등관계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변호사는 “이는 법률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볼 것인가. 어떤 행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나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냐는 법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으론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라면서 “몇몇 사법 엘리트가 판단해 국민에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제주지방검찰청 형사제2부(부장검사 오기찬)·국가정보원·제주경찰청이 발표한 ‘제주 이적단체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보면, 세 사람은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이적단체구성, 간첩, 편의제공 등’ 국보법 위반죄로 각각 기소됐다.

수사당국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 지령과 암호통신 장비를 수수해 북한 지령에 따라 국내정세를 수집, 보고하고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노선을 추종하는 이적단체를 적발”했다면서 제주 이적단체의 강령과 규약, 지령문 및 보고문 주요 내용 등 수사결과를 공개했다. 특히 이 단체는 진보당·농민단체 등을 활용해 반정부·반미 활동, 노동·농민 등 정세 보고, 국가기밀을 전달했다고 혐의사실을 밝혔다.

현직 전농 사무총장의 공소사실은 △제주 이적단체 구성 △2022년 12월~23년 1월 북한 지령에 따라 전국민중대회 및 한미 국방장관 회담 규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정부 활동 선동(이적동조) △2022년 2월~5월 진보당 전 제주도당 위원장에게 북한 대북보고에 반영할 농 부문 보고서 등 제공(편의제공)이다. 고 사무총장은 제주 이적단체의 농 부문조직 책임자로서 지난해 2월부터 전농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반정부 활동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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