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GMO 문제 대처 ‘총체적 난국’ … 시민들 분노 거세

  • 입력 2023.04.21 14:1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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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유전자조작체(GMO) 관련 국가 검역·관리체계 붕괴가 야기한 ‘쥬키니호박 GMO 검출 사태’의 후폭풍이 끝도 없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보상책 마련, 사태 원인 규명 및 정보공개, 대국민 사과 등 모든 조치가 불충분하거나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농민·시민의 비판이 거세다.

정부, GMO 종자개발 지원한 꼴

GMO반대전국행동·전국먹거리연대·환경농업단체연합회는 지난 14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LMO(GMO) 국가검역·관리시스템 붕괴 규탄, 정보공개 및 피해보상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특히 쥬키니호박 GMO 검출 사태의 근본 원인 및 경과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정보공개를 해야만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6일 정부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보도자료에선 2015년 ㈜홍익바이오(정부는 현재까지도 업체명 익명 처리)가 미승인 GMO 쥬키니호박 종자를 정부 승인 없이 국내에 반입한 후 이를 상품화해 보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종자(홍익바이오 ‘대금’, ‘가야금’)가 어떻게 국내에 반입됐으며, 품종의 생산·수입판매 신고 과정은 어떠했는지, 해당 종자의 2015~2023년 생산량 및 판매량, 작물 시중 유통량 등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은 만큼,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이다.

석연치 않은 점 또 하나는, 이번에 미승인 GMO 쥬키니호박 종자로 거론된 ‘가야금’ 종자의 경우 농식품부와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농기평)이 2011년 이래 5년간 시설재배에 적합한 내병성 쥬키니호박 개발을 지원한 결과물로서 나온 종자라는 점이다. 당시 농기평 주관 ‘농생명산업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내병성 쥬키니호박 개발연구사업’이 진행된 바 있는데, 여기엔 홍익바이오와 강원도농업기술원, 경희대학교 등이 참가했다. 그 결과물로서 2018년 개발된 가야금 품종에 대해, 농기평은 기존 쥬키니호박 대비 농약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고 30일간 장기 수확이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당시 홍익바이오는 ‘바이러스 및 흰가루병 저항성 계통 개발’이란 주제의 연구를 맡았다.

1990년대 이래 국제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에 등재된 GMO 호박은 2종으로, 미국 업존(Upjohn)사의 바이러스 저항성 호박, 미국 애스그로우(Asgrow)사의 쥬키니황화모자이크바이러스(ZYMV) 저항성 호박이다.「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제9조에 따르면 시험·연구용으로 GMO를 수입할 때도 정부 승인이 필요한데, 미국에서 개발된 저항성 GMO 종자가 모종의 경로(홍익바이오 측은 2010~2011년 미국에서 국제특송으로 들여왔다고 밝힘)로 국내에 입수되고, 정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농식품부·농기평의 지원 아래 GMO 종자를 활용해 새 종자가 개발됐다고 볼 수 있는 형국이다.

속출하는 피해자들 … 보상안은 언제?

지난 14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LMO(GMO) 국가검역·관리시스템 붕괴 규탄, 정보공개 및 피해보상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재배하던 쥬키니호박에서 ‘GMO 양성반응’이 나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농민 송용식씨가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4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LMO(GMO) 국가검역·관리시스템 붕괴 규탄, 정보공개 및 피해보상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재배하던 쥬키니호박에서 ‘GMO 양성반응’이 나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농민 송용식씨가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자는 한두 명이 아니건만, 여전히 이들에 대한 구체적 보상책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14일 농식품부 앞 기자회견엔 재배하던 쥬키니호박에서 ‘GMO 양성반응’이 나와 졸지에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충북 옥천 농민 송용식(78, 한살림 생산자)씨가 참석했다. 송씨는 “농장에서 GMO가 발견된 뒤 국립종자원 직원들은 농장 입구에 ‘출입금지 및 식물채취 금지’라 쓰인 팻말을 붙였다. 농사를 못 짓게 된 것”이라며 “종자원 직원들은 쥬키니호박 몇 개 땄는지만 확인하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갔다. 지금까지도 쥬키니호박을 어떻게 폐기하겠다는 건지,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송씨는 이어 “원래 자가채종한 씨앗으로 유기농 호박농사를 지어왔으나, 2021년 사상 유례없는 폭우로 인해 농장이 물에 잠겼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쥬키니호박 종자를 구입해 농사짓다가 이번과 같은 피해를 겪게 됐다”며 “수십년 동안 친환경농사를 짓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졸지에 소비자와 국민 앞에 죄인이 된 기분이다. 여러분께 죄송하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송씨의 사연을 듣던 참가자 상당수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으며, 몇몇 참가자들은 송씨에게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다”, “힘내시라”며 격려했다.

지난 19일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강은미·윤미향 의원 주최로 열린 ‘GMO 쥬키니호박 유통 및 정부 부실대처에 의한 소비자·농민 피해대책 간담회’에 참석한 전주환 진주시농민회 사무국장은 가격 폭락 및 쥬키니호박에 대한 소비자 인식 악화로 향후 농사전망이 불투명한 경남 진주시 쥬키니호박 농가들의 상황을 알렸다.

전 사무국장은 “3월 26일 일부 쥬키니호박에서의 GMO 검출에 따른 출하정지 조치가 있고서 1주일 뒤 출하가 재개됐을 때(4월 3일), 3월 27일 이전엔 10kg 한 상자당 2만2,000원 나오던 쥬키니호박 한 상자가 1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그나마 그건 상품성이 좋은 ‘상(上)’품 기준이고, 중간이나 그 이하 물품은 한 상자당 2,000원 선까지도 떨어졌다. 지금까지도 가격은 회복되지 않는 상황이며, 이러한 가격 양상은 최소 1년은 갈 것”이라며 “진주에서만 1주일간 (상품성을 잃거나 GMO 양성판정을 받아) 폐기 처분한 물량은 추산 상 1만 상자 가량 된다”고 증언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쥬키니호박 상(上)품 10kg 한 상자의 평균 도매가격은 1만420원이었다. 1개월 전 2만880원 대비 정확히 절반 가격이며, 1년 전 같은 시점의 1만3,040원 대비 20.1% 하락한 가격이다. 19일 기준 중(中)품 10kg 한 상자의 평균 도매가격은 7,282원으로, 1개월 전 1만7,630원 대비 58.7%, 1년 전 1만564원 대비 31.1% 하락한 가격이다.

전 사무국장은 당면한 가격 폭락도 문제지만, 중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이 쥬키니호박에 대해 가질 부정적 인식으로 농민들이 쥬키니호박 농사를 지속할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사무국장은 “지역에서 쥬키니호박을 재배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고령의 영세가족농이다. 타 작목 전환도 쉽지 않다”며 “피해보상도 중요하나 정부·관계기관에서 쥬키니호박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살림연합(상임대표 권옥자, 한살림)은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 식약처)가 GMO 검사를 진행했던 쥬키니호박 함유 한살림 볶음밥 4종에 대해 재검사를 진행한 결과, GMO 성분이 발견됐다고 지난 7일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문제없다고 한 쥬키니호박 함유 가공품에 GMO가 함유됐다는 걸 알게 된 한살림 조합원들은 충격에 빠졌으며, 한목소리로 정부의 피해보상 및 대국민 사과를 촉구 중이다.

지난 19일 한살림이 개최한 ‘국내 LMO 쥬키니호박 생산·유통사고 해결을 위한 한살림 긴급토론회’에서 발표된 데 따르면, 이번 쥬키니호박 및 그 가공품에서의 GMO 성분 검출로 인한 한살림 전체 피해액은 약 19억9,646만원(지난 달 조합원 공급가 기준)이다. 2021년 해당 볶음밥들이 출시된 이래 조합원에게 공급된 물량(즉 이미 조합원들이 섭취한 물량), 물류센터에 저장 중인 폐기 예정 물량, 사태 발생 후 매장에서 회수하거나 반품받은 물량, GMO 양성판정을 받은 농가로부터 공급된 물량 등을 합쳐 계산한 피해액이다.

곽현용 한살림 전무이사는 “정부는 피해보상 범위를 ‘예산한도 내’로 한정했기에 피해에 대한 온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피해보상 대책이 나올 시 이를 확인한 후, 필요에 따라 국민집단소송 등을 검토하고자 한다”며 “특히 피해 농민·농지에 대한 대책을 속히 제시해야 한다. 2017년 GMO 유채·면화 오염사태 당시와 동일하게 피해농지 주변 환경영향조사를 최소 2년간 진행함과 함께, 2023~2024년 쥬키니호박 재배농가 전체를 대상으로 파종 전 무상 GMO 검사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9일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강은미·윤미향 의원 주최로 열린 ‘GMO 쥬키니호박 유통 및 정부 부실대처에 의한 소비자·농민 피해대책 간담회’에 참석한 전주환 진주시농민회 사무국장(왼쪽 세번째)이 가격 폭락 및 쥬키니호박에 대한 소비자 인식 악화로 향후 농사전망이 불투명한 경남 진주시 쥬키니호박 농가들의 상황을 알리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강은미·윤미향 의원 주최로 열린 ‘GMO 쥬키니호박 유통 및 정부 부실대처에 의한 소비자·농민 피해대책 간담회’에 참석한 전주환 진주시농민회 사무국장(왼쪽 세번째)이 가격 폭락 및 쥬키니호박에 대한 소비자 인식 악화로 향후 농사전망이 불투명한 경남 진주시 쥬키니호박 농가들의 상황을 알리고 있다.

한편 19일 국회 간담회에 참석한 조경규 국립종자원 종자산업지원과장은 “농가 피해보상 방안은 마련됐으나 예산 확정이 안 돼서 답변을 못 드리는 상황이다. 조만간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보상 관련 논의상황을 밝힌 뒤,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해선 “홍익바이오 측을 고발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간담회를 주최한 윤미향 의원이 “한살림처럼 소비자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돼 온 조직이 이번 사태로 입은 피해에 대해선 어떻게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라고 질문하자 조 과장은 “거기까진 고민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강혜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이 “GMO 쥬키니호박임을 모른 채 이미 섭취한 사람들에 대해선 정부 관계자들 모두 아무 말도 없다”고 질타할 때도 정부 관계자들은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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