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초래한 ‘GMO 쥬키니호박 사태’, 이대로는 반복된다

  • 입력 2023.04.06 19:4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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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정부의 유전자조작체(GMO) 관리·통제 부실이 ‘GMO 쥬키니호박 사태’로 이어졌다. 난데없이 농장에서 GMO가 발견돼 애써 농사지은 쥬키니호박이 전량 폐기되고 올해 농사를 못 짓게 된 농민, 지난달 말 정부의 출하정지 조치로 졸지에 호박 출하가 멈췄다가 출하재개 뒤 ‘상자값도 안 되는 호박값’을 마주한 농민, ‘우리가 먹는 것 중 무엇이 GMO일까’라는 새로운 근심거리를 떠안은 소비자. 우리 모두가 ‘GMO 쥬키니호박 사태’ 피해자다.

한 상자당 2만원이었던 쥬키니호박, 500원으로 폭락

지난 4일 경남 진주시 금곡면 농민 류연현씨가 GMO 쥬키니호박 종자 발견으로 인한 정부의 지난달 말 출하정지 조치에 출하 시기를 놓친 채 쌓여있는 쥬키니호박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4일 경남 진주시 금곡면 농민 류연현씨가 GMO 쥬키니호박 종자 발견으로 인한 정부의 지난달 말 출하정지 조치에 출하 시기를 놓친 채 쌓여있는 쥬키니호박들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 2만원은 나왔던 쥬키니호박 10kg 한 상자가 500원으로 폭락했다. 상자값이 1,100원이고 (가락시장 운반을 위한) 운임비가 900원이다. 이대로 출하하면 상자값과 운임비를 물어내야 한다. 정부는 출하를 재개했다지만 이건 출하하지 말라는 거다.”

지난 4일, 경남 진주시 금곡면에서 30여년간 쥬키니호박 농사를 지은 류연현씨는 이 말을 하며 기자에게 손전화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엔 전국에서 가락시장으로 온 쥬키니호박 한 상자(10kg)당 경매가가 떠 있었다. 같은 경남 의령군의 쥬키니호박도 상자마다 1만2,000원에서 1,500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충남 공주시 호박은 한 상자당 가격이 500원이었다. GMO 쥬키니호박 종자 발견으로 인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쥬키니호박의 출하를 정지했다가, 지난 3일 출하재개가 이뤄지자마자 시장에 쥬키니호박이 한꺼번에 풀려나와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류연현씨는 “호박 주산지인 진주 금곡면 호박도 현 시점에선 내봤자 500원밖에 못 받는다”며 “3월말 정부의 (GMO 발견으로 인한 쥬키니호박 출하정지) 발표 전까지만 해도 그나마 시세가 나았는데, 이런 날벼락이 떨어지니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경매제 자체의 제도적 한계를 고려해도 ‘쥬키니호박 한 상자당 500원’은 사상 초유의 현상이라는 게 류연현씨의 설명이다.

가격이 그나마 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쥬키니호박은 보존 가능 기간이 극히 짧다. 류연현씨는 바로 직전 농장에서 갓 수확한 쥬키니호박 하나, 그리고 출하정지 시점이었던 지난달 26일부터 농장에 적체된 쥬키니호박 하나를 꺼냈다. 갓 수확한 호박은 단단했으나 열흘간 적체된 쥬키니호박은 물컹물컹했다. 류연현씨는 “요즘은 날씨가 더워서 쥬키니호박을 3일만 출하 못 한 채 둬도 호박이 물컹물컹해지고 색깔도 변색돼 상품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리되면 파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중에 폐기도 힘들어진다”고 밝혔다.

이 말을 하는 류연현씨의 뒤엔 적정 출하 시기를 놓친 쥬키니호박이 쌓여있었다. 적체량이 해결되지 않으니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해야 할 쥬키니호박도 수확하지 못하고 있다. 류연현씨는 “쥬키니호박은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쥬키니호박이 자라는 줄기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줄기에서 다음 호박이 아예 안 자라나 농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라며 “보상조치건, 폐기조치건 정부가 뭔가 대책을 내놓아야 적체된 걸 치우고 새 호박을 수확할 거 아니냐. 이대로 가면 우린 농사 못 짓는다”고 호소했다.

한편 금곡면의 ‘새내기’ 농민 류안열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쥬키니호박 농사를 시작했다. 쥬키니호박 농가들은 한 작기 당 2회에 걸쳐 수확하는데, 2차 수확을 하면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는 체계다. 류안열씨는 바로 그 2차 수확을 눈앞에 두고 정부의 출하정지 조치를 당했다. 출하재개 직후, 류안열씨는 수확량 144상자 중 83상자만 한 상자당 4,000~5,000원대 가격으로 겨우 출하했다. 남은 61상자까지 그 값으로 낼 순 없었기에 일단 적체시킨 상태다.

진주시농민회(회장 김복근)는 이상과 같은 쥬키니호박 농가 상황과 관련해 지난 5일 발표한 대(對)정부 성명에서 “최소 1주일 이상 유통이 안 된 농산물은 신선도 측면에서나 시장 상황에 맞춰봐도 시장격리가 답”이라며 “(정부는) 대책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선제적 발표를 통해 농민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고 시장에도 안정감을 줘 가격폭락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적절한 대책을 조기에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류연현씨가 손전화 화면을 가리키며 전국의 쥬키니호박 한 상자(10kg)당 경매가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경남 의령군의 쥬키니호박도 상자마다 1만2,000원에서 1,500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충남 공주시 호박은 한 상자당 가격이 500원이었다. GMO 쥬키니호박 종자 발견으로 인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쥬키니호박의 출하를 정지했다가, 지난 3일 출하재개가 이뤄지자마자 시장에 쥬키니호박이 한꺼번에 풀려나와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류연현씨가 손전화 화면을 가리키며 전국의 쥬키니호박 한 상자(10kg)당 경매가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경남 의령군의 쥬키니호박도 상자마다 1만2,000원에서 1,500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충남 공주시 호박은 한 상자당 가격이 500원이었다. GMO 쥬키니호박 종자 발견으로 인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쥬키니호박의 출하를 정지했다가, 지난 3일 출하재개가 이뤄지자마자 시장에 쥬키니호박이 한꺼번에 풀려나와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졸지에 농사 자체를 못 짓게 된 ‘GMO 양성반응 농가’들

GMO 쥬키니호박 사태의 최대 피해자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승인 GMO 호박 재배농가’로 낙인찍힌 열일곱 농가의 농민들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농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오락가락한다는 게 현장의 증언이다. 김상통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생산지원본부장은 “지역마다 농식품부·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국립종자원 등 정부기관들의 지침이 엇갈린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지역에선 농관원 직원들이 (GMO 종자 발견 농가에 대해)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1년간 농장에 못 들어간다’고 하고, 또 어떤 지역에선 농지에 (문제의 GMO 종자로 거론된) ㈜홍익바이오 ‘가야금’ 품종이 심긴 밭은 제대로 전수조사도 안 한 채 ‘여긴 GMO 필지’라며 전량 폐기조치를 취했다. 한 농가에선 쥬키니호박과 같이 심긴 애호박도 덩달아 폐기당했다”고 현장에서 모은 증언을 소개했다.

한살림에 쥬키니호박을 공급하던 농가 중에도 두 곳이 ‘GMO 양성반응 농가’로 규정됐다. 해당 피해농가 중 한 곳의 농민은 “오랫동안 유기농 인증받아 쥬키니호박 농사를 지어왔고 농지에 대한 애착도 컸는데, 이번에 GMO가 발견돼서 최소 1년간은 농사를 짓기 어려울 듯하다”고 밝혔다.

김상통 본부장은 한편으로 정부 및 언론의 대응과 관련해 “왜 문제의 GMO 호박 종자가 홍익바이오의 ‘대금’, ‘가야금’이라고 못 밝히는 거냐. 어느 회사의 어느 종자가 문제인지 정확히 안 밝히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대금’, ‘가야금’ 종자를 소유한 농민이 ‘이 종자가 언급되지 않았으니 딱히 문제 없겠지. 내년에 심자’고 여기며 보관 뒤 농사짓다가 억울하게 ‘GMO 양성반응 농가’가 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정부 보상대책과 관련해, 특히 친환경농가에 대한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친환경농가는 일반농가 대비 생산비가 더 많이 들고, 기본 가격 또한 일반농산물보다 높게 책정되기에, 그에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승인 GMO 검출 농가에 대해서도 단순히 생산물 폐기조치만 취할 게 아니라, 피해농가의 기존 작물 생육사항 및 출하·작황 등 각종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이를 기반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게 김 본부장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정부의 GMO 친화적 기조

합당한 보상조치 마련도 중요하나, 궁극적으론 GMO 자체에 대한 규제·관리조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게 시민사회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GMO 관련 기조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GMO법)」자체를 개정해 △신규 GMO에 대한 위해성 심사 등의 면제(프리패스) △GMO 개발·실험 관련 규제 완화를 추구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말할 것도 없고, 농식품부 또한 ‘종자산업 육성’ 미명으로 GMO 개발 기술의 일종인 유전자가위 기술을 대안으로 내민다.

농식품부는 신육종 기술의 효율성 증대 명목으로 △작물별 유전자가위 △가이드 RNA 라이브러리(재해·질병에 견딜 수 있도록 작물 형질에 관계되는 유전자를 정밀하게 유도해 교정하는 기술) △식물 재분화 조절기술(세포에서 식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식물생장호르몬제 등을 활용하는 배양기술) 등을 개발하겠다고 올해 초 ‘종자산업 육성 5개년계획’에서 언급했다.

농식품부는 이와 함께 산자부가 추진 중인 GMO법 개정에 맞춰, 유전자가위 기술이 적용된 바이러스 저항성 토마토 및 대체육 전용 콩 품종의 상품화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형 GMO인 유전자가위 품종의 상품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인데, 이에 그치지 않고 농식품부는 국내 기업이 보유한 유전자교정(유전자가위) 기술을 콩·옥수수 등의 종자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외정세도 GMO 문제를 심화시킬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이 가담 중인 미국 주도 반(反)중국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관련 논의는 현재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는데, 미국은 IPEF를 통해 가담국에 규제절차 개선을 압박 중이다. 미국이 비공개적으로 한국정부에 GMO 규제완화를 압박해 온 상황에서, IPEF도 미국 등 각국의 GMO에 대한 한국의 ‘문호개방’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상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한, 제2의 쥬키니호박 사태는 언제든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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