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승인 GMO 호박 종자, 8년간 시중 유통

미국서 수입·위해성 심사 과정 안 거쳐 … “투명한 정보공개 절실”

  • 입력 2023.04.02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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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18년 12월 14일 충북 청주시 식품의약품안전처 앞에서 열린 ‘농민 생존권 말살, 국민 먹거리안전 위협 식약처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단상에 오른 농민·소비자단체 대표들이 “GMO 감자 수입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18년 12월 14일 충북 청주시 식품의약품안전처 앞에서 열린 ‘농민 생존권 말살, 국민 먹거리안전 위협 식약처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단상에 오른 농민·소비자단체 대표들이 “GMO 감자 수입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위해성 평가 과정을 거치지 않은 미승인 유전자조작 쥬키니호박(돼지호박) 종자, 즉 GMO 호박 종자 2종이 2015년 이래 국내에서 유통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검역절차를 밟지 않은 채 미국에서 수입한 GMO 쥬키니호박 종자가 육종 과정을 거쳐 시중에 판매된 것이다. GMO 반대 시민사회는 8년간 GMO 쥬키니호박이 유통돼 온 상황을 규탄하며 정부에 △투명한 정보공개 △책임자 문책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 식약처) 등 관계부처의 지난달 26일 합동 발표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된 쥬키니호박 종자 중 일부가 승인되지 않은 GMO로 판정됐다.

지난해 국립종자원(원장 김기훈)이 외국산 쥬키니호박 종자 수입 검역절차를 밟던 중 GMO가 발견되자, 국립종자원은 올해부터 국내에서 신품종 등록을 위해 출원하는 쥬키니호박 종자들에 대한 GMO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국내 A 기업이 새로 개발해 출원한 쥬키니호박 종자가 GMO로 판정됐다.

이에 국립종자원이 쥬키니호박 종자 121종, 애호박 종자 126종에 대한 GMO 검사를 실시한 결과, (주)홍익바이오의 쥬키니호박 2종이 GMO로 확인됐다. 해당 GMO 종자 2종은 홍익바이오가 미국에서 승인된 종자를 수입해 국내 검역절차를 밟지 않고 육종한 것으로, 2015년부터 최근까지 판매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에서 승인됐지만 한국에선 승인된 종자가 아닌 만큼, 원래대로라면 장기간에 걸친 위해성 심사 과정을 거쳐야 했으나 그런 과정이 없었다는 뜻이다.

일단 국무조정실·농식품부·식약처·농림축산검역본부·국립종자원 등 관계 기관 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거쳐, 농식품부는 해당 GMO 호박 종자의 판매 금지 및 회수조치를 단행했으며, 농가에서 재배 중인 쥬키니호박에 대해선 출하를 잠정 중단하고 전수조사해, GMO 검사결과 음성으로 확인된 물품만 3일부터 출하를 재개한다. 소비자 또는 유통업체가 보유한 쥬키니호박에 대해선 식약처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량 수거·매입했다.

농식품부와 식약처는 쥬키니호박을 구매한 소비자·소매상에 대한 반품·보상조치를 실시하기로 했는데, 구매 영수증 단가를 기준으로 보상하나 영수증이 없을 시 쥬키니호박 한 개당 1,000원을 기준으로 보상한다.

한편 농식품부는 쥬키니호박 재배농가를 대상으로 ‘현황조사’에 참여할 것을 통보했다. 쥬키니호박 재배 농민은 국립종자원으로부터 GMO 검사를 받은 후, 음성일 시 3일부터 출하가 가능하며 양성일 시 폐기해야 한다. 또한, 지역농협에서 실시 중인 현황조사에 반드시 참여해야 폐기·출하 지연에 따른 피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농식품부의 방침이다.

이상과 같은 미승인 GMO 호박 종자 유통 방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정부 당국이 GMO 종자 유통 및 안전성 문제와 관련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문제, GMO 안전성과 관련한 대(對)국민 메시지를 경솔하게 내보내는 ‘소통 과정의 문제’ 등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26일 발표한 미승인 GMO 호박 종자 발견 관련 보도자료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동식물검역국(APHIS), 캐나다 보건부 등의 발표를 인용하며 “해당 LMO(GMO)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일반 호박과 같은 수준”이라 판단한다고 밝힌 뒤 “국내 전문가 자문에 따르면 미국·캐나다에서도 1995년 이후 안전성이 확보돼 승인·섭취하고 있으며, 성분 등에 있어서도 일반 호박과 차이가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섭취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정작 보도자료에선 그 ‘국내 전문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GMO반대전국행동·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환경농업단체연합회·전국먹거리연대 등 GMO 반대 농민·시민사회단체들은 27일 발표한 성명에서 GMO 쥬키니호박이 시중에 8년간 유통된 사실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부가 GMO 호박 종자 확산을 대응하는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했다.

GMO 반대 농민·시민사회단체들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정보가 공개되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대표적으로 종묘회사 명칭과 호박 품종 공개를 하지 않은 점이 그렇다”라며 “(이로 인해) 현장 농민과 유통시설, 급식시설 등이 스스로 확인해 GMO 쥬키니호박을 격리할 골든타임을 놓치게 됐다. 추가피해도 우려된다. 이 중요한 보도자료를 모두가 잠든 일요일(26일) 밤 10시에 배포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단체들은 특히 정부가 GMO 쥬키니호박의 ‘안전성’을 굳이 강조한 것을 강하게 규탄했다. 실체가 불분명한 ‘국내 전문가’들이 한 자문을 구실로 “섭취해도 문제가 없다”는 말을 쉽게 한 것 자체가 “국내 검역체계를 (정부) 스스로 무시하는 일이며 대한민국의 검역주권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해당 단체들은 “GMO 쥬키니호박의 인체 섭취 위해성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라며 ‘국내 전문가’의 실명 거론 및 안전하다는 주장의 근거를 밝히라고 강조하며 정부에 △GMO 쥬키니호박 유통 사건의 책임성 있는 해결 △GMO 쥬키니호박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책임자 문책 및 농민·국민에 대한 보상대책 수립 △GMO 유통 발생에 대한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식약처 측은 GMO 쥬키니호박에 대해 자문한 ‘국내 전문가들’이 누구인지 실명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식약처 자문위원 중 GMO 관련 전문성을 가진 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함과 함께, 1995년 이래 미국·캐나다에서의 GMO 쥬키니호박 관련 안전성 확보 사례를 확인해 (보도자료에)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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