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공공성, 이 당연한 가치의 훼손을 막아라

먹거리 공공성 사수 나선 농민·먹거리운동단체들

  • 입력 2023.02.02 19:1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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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먹거리 공공성 강화,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추경예산 편성 촉구’ 기자회견에서 범친환경농업계와 먹거리운동단체 회원들이 윤석열정부가 전액 삭감시킨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예산과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예산의 복원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먹거리 공공성 강화,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추경예산 편성 촉구’ 기자회견에서 범친환경농업계와 먹거리운동단체 회원들이 윤석열정부가 전액 삭감시킨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예산과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예산의 복원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먹거리예산 삭감으로 시민 먹거리 공공성은 내팽개쳐 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푸드테크·그린바이오 정책만 내세우는 윤석열정부. 2018년 이탈리아 밀라노 먹거리정책 우수도시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등 세계가 인정한 지역산 친환경먹거리 공급 정책인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의 ‘폐기처분’을 공식화하는 서울시.

먹거리 공공성·도농상생 등의 ‘당연한 가치’가 훼손되는 가운데, 농민·먹거리운동 진영이 가치의 훼손을 막기 위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농상생 포기’ 공식화한 서울시

서울시(시장 오세훈)는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에서 ‘도농상생’ 기조의 삭제 및 사업대상 축소를 공식화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도농상생 공공급식에 참여하는 12개 자치구에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엔 서울시가 구상한 ‘공공급식 조달체계 통합’ 계획이 담겼는데, 핵심내용은 아래와 같다. 일각에서 거론했던 서울시 내부기조가 그대로 공식화됐다.

△운영 : 산지 지자체와 연계되는 자치구별 공공급식센터 운영 → 서울친환경유통센터로의 기능 통합

△공급대상 : 어린이집·아동센터·사회복지시설 → 어린이집으로 축소

△공급 식재료 : 농·수·축산물 및 가공식품 → 농·수·축산물로 축소

△공급방식 : 산지 공공급식센터-자치구 공공급식센터 간 계약 → 농·수·축산물 각 분야별 공급업체-서울친환경유통센터 간 계약

△사업 개편시기 : 2023년 7월 1일

서울시는 이상의 내용을 통보하며 7월 1일 개편 뒤의 사업 참가 여부를 자치구에 물었다. 참가 의사가 있는 자치구(즉 서울친환경유통센터로의 기능 통합을 수용하는 곳)는 참여에 따른 건의사항을 적도록 했고, 미참여 자치구는 자체 공공급식센터 운영 및 사업종료 여부 표시, 미참여 사유를 적게 했다. 공공급식 조달체계 통합 ‘안’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사실상 기존 공공급식 체계를 서울친환경유통센터로 통폐합하는 기조는 자체 확정한 상태였다.

이 내용이 현실화될 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을 통해 서울 관내 어린이집에 농·축·수산물을 공급해 온 산지들은 판로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일례로 모 산지 공공급식센터는 지난해 매출 30억원 중 약 45%인 13억5,000만원 가량이 도농상생 공공급식 공급으로 기록한 매출이었는데, 이 45%의 판로를 그대로 잃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서울 먹거리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서울먹거리연대(상임대표 이명)는 지난 1일 농민과의 논의 없이 밀어붙이려는 도농상생 공공급식 중단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성토했다.

서울먹거리연대는 이날 성명서에서 서울시가 “지난달 17일 담당 공무원회의에서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의 문제점을 편파적으로 기술하고, 영·유아에 맞지 않은 서울친환경유통센터 통합안을 추진하며 6년 동안 추진한 공공급식 해당 주체들에겐 설명·논의조차 않은 채 일방적 계약해지를 종용하고 있다”며 “회의 문건에선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을) 수요자 중심 사업이 아닌 ‘생산자 중심 사업’이라며 농민들과 공공적 역할을 해 온 실무자들을 비용의 논리로 재단해 종사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규탄했다.

서울먹거리연대는 이어 초·중학교 중심 대규모 급식조달체계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이 높은 가정어린이집 등 소규모 급식 운영시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데,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이 이 역할을 해 왔음을 강조했다.

서울먹거리연대의 설명에 비춰볼 때, 학교급식에 맞춰 대규모 공급체계를 운영하는 서울친환경유통센터가 어린이집을 위한 소규모·소포장 공급체계를 갖출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서울친환경유통센터의 학교 중심 공급체계가 맞지 않다 보니, 영·유아 시설 중에선 해당 센터를 유치원 30군데(단설 20군데, 민간 10군데)만 이용 중이다. 사업개편으로 인해 지난 5년간 어린이집 등 소규모 시설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생산·조달·공급체계는 필연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다.

“양대 먹거리복지예산 복원하라”

한편 범(凡)농민·먹거리운동진영은 윤석열정부가 전액 삭감시킨 먹거리복지예산(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예산 157억8,000만원,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예산 72억원)의 복원을 위해 나섰다.

환경농업단체연합회·전국먹거리연대·GMO반대전국행동·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등 농민·먹거리운동 연대체들은 지난 2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먹거리 공공성 강화,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추경예산 편성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본청 앞 계단을 가득 채운 150여명의 농민·도시민들은 ‘먹거리예산 복원’ 및 ‘먹거리 공공성 보장’, ‘쌀값 안정화 방안 마련’ 등을 주장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양대 먹거리복지사업을 없애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 2025년 ‘농식품바우처 사업’에 해당 사업들을 편입시키겠다는 기획재정부(장관 추경호, 기재부)의 논리에 대해, 저소득층 먹거리돌봄을 위한 농식품바우처 사업과 달리 임산부·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 성격의 양대 먹거리복지사업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저소득층 가구를 지원토록 설계한 농식품바우처 사업에 나머지 사업들을 통합할 시 지원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개별 사업 대상자와 사업 고유의 특성을 외면한 채 인위적으로 통합하겠다는 건 해당 사업에 대한 몰이해 내지 ‘삭감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예산 삭감과 관련해, 기자회견 참가자 중 여럿이 저출생 문제 해결을 이야기하는 정부가 오히려 임산부 복지예산을 없앤 역설적 상황을 지적했다.

장현례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상임이사는 “기재부는 지난해 0~1세 아동 양육가구 지원예산을 6조원에서 7조4,000억원으로 늘리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했지만, 다른 한쪽에선 임산부 먹거리기본권 확보를 위한 친환경농산물 지원예산을 걷어찼다”고 한 뒤 “힘든 여건에서도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청년들에게 이런 정책을 펼치는데, 누가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겠나. 행정이 걷어찬 예산을 복원하기 위해 국회가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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